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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11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4년 연임제' 개헌안 관련 긴급기자간담회를 갖고 "이번 개정은 지금 대통령인 저에게는 해당되는 게 아무 것도 없다"며 세간에 떠돌고 있는 정략적 제안이라는 의구심을 일축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무현 대통령이 제안한 대통령 4년 연임제 개헌 제의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일고 있다.

11일 긴급 기자간담회에서 노 대통령은 예전의 국회의원, 부산시장 출마 때의 이야기를 꺼내면서까지 자신의 진정성을 내보이기 위해 애쓰는 듯 했다. 하지만 여전히 대통령의 '정략적 의도'를 경계하면서 그 시기의 부적절성을 지적하는 비판 여론이 들끓고 있다.

'정략'이란 말을 한번 생각해보자. 사전에서 찾아보니 '정치적인 책략'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우리는 정략이라는 말을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정치인의 행위 자체가 대부분 정치적 책략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예를 들어 한나라당이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일언지하에 반대하는 것은 현재 압도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는 차기 대선 전망이 어떤 요인에서든 흔들리지 않기를 원하는 정치적 책략, 즉 '정략'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개헌 발의는 대통령의 권한이다

@BRI@따라서 대통령의 제의가 정말 대통령의 정략적 의도에서 비롯된 것인지 여부를 떠나 '정략'이라는 이유로 대통령더러 제의를 철회하라는 것은 부당한 것이다. 개헌 발의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권한이다. 그 권한 행사를 누구도 하지 말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더구나 이번 개헌 제의가 종신 집권을 꿈꾸는 '유신헌법'도 아니고 간접선거를 통해 정권재창출을 보장한 '5공화국 헌법'도 아닌 다음에야 그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11일자 <경향신문> 1면의 '데스크 시각'은 "개헌 제안 '시기'가 정략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개헌 제안을 비판하는 시각도 대체로 이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번 되물어보고 싶다. 과연 노 대통령이 언제 이런 제안을 했어야 제대로 논의가 되었을까? 사립학교법 하나 개정하는데도 그 분란을 겪고도 아직도 한나라당이 재개정해야 한다고 물고 늘어지고 있다. 일개 법안 하나도 이럴진대 시기를 잘 잡는다고 해서 개헌이 과연 진지하게 논의될 수 있었을까?

지난 노 대통령의 임기동안 쉴새 없이 선거가 있었다. 국회의원 선거, 지방자치단체 선거, 재보궐 선거 등등 선거를 앞두고 있지 않은 적이 거의 없었다. 아마 개헌이라는 말을 꺼내기는 더 어려웠을 것이다. 노 대통령 임기 말에 개헌 문제를 마무리짓고 새 정권이 시작하는 것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우리의 당면 과제가 개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개혁이라는 말도 충분히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것도 지지율 10% 미만의 임기 말 대통령에게 '시기'가 문제다.

다음 대통령에게 미루라는 말도 일리는 있지만, 다음 정권이 개헌 문제부터 시작되는 것은 어찌 보면 참 어색하고 이상한 일이다. 오히려 힘있는 정권 초기에 사회·경제적 개혁에 매진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옳다. 그렇게 하다보면 또 임기 말이고, 논리적으로 또 지금과 같은 문제에 봉착하게 되는 모순이 있다. 결국 못하게 된다.

언제는 정쟁이 없었나

▲ 한나라당은 10일 국회에서 의원총회를 열고 노무현 대통령의 '4년 연임제' 개헌 제안에 대해 논의 중단을 촉구했다. 의원총회에서 강재섭 대표와 김형오 원내대표가 무언가를 논의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 내용에 대해 찬성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개헌에 대한 찬반 여부를 떠나 왜 이리 정치나 언론이 노 대통령의 정치 행위에 대해 민감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한나라당은 개헌 저지 의석을 가지고 있다. 지금대로라면 노 대통령의 개헌 제안은 국회에서 조용히 부결될 가능성이 많다. 그 과정에서 개헌에 대한 토론이나 논의는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것은 민주 정치의 필수적 과정이다. 그것을 소모적 정쟁이라고 할 수는 없다.

무슨 정략이 어떠니 시기가 어떠니, 나쁜 대통령이니, 좋은 대통령이니 시끄러울 이유가 없다. 설사 노무현 대통령이 이번 개헌 제안으로 인해 어떤 정치적 이익을 얻는다면 그 또한 대통령의 정치적 권리라 할 수 있다. 각자의 정치적 입장이나 이익을 위해 몰두하는 것은 이명박이나 박근혜나 한나라당이나 마찬가지가 아닌가? 문제는 정치적 행위가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를 의사결정 과정을 통해 검증해 내는 것이다.

문제는 대통령의 정치 행위마다 과도하게 스스로 정치적 논란에 몰입하는 정치권과 언론이다. 개헌 문제도 그렇다. 민주적 정치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성패를 결정하면 되는 것이다.

흡사 언제는 우리 정치권에 소모적 정쟁이 없었던 것처럼 포장하지 말자. 개헌한다고 해서 다른 일을 못하는 것도 아니다. 대통령이 국회의원이 일이 많아서, 바빠서 할 일을 못하는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시기니 정략이니 의도니 하는 말로 또 다른 정쟁을 부추기지 말아야 한다. 그 동안 정치권이 한 일 너무 없다. 국회의원들 소모적 정쟁 말고 한 일이 뭐가 있는가? 차라리 이번 기회에 그 동안 그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어 온 4년 대통령 연임 개헌을 진지하게 논의해서 텅빈 일거리 목록에라도 올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태그:#개헌, #정략, #개헌 발의, #4년 연임제, #개헌발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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