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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이 주최한 '사학수호 한국교회 목회자 비상기도회 및 십자가 행진'이 19일 오후 서울 저동 영락교회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 주최로 열렸다. 비상기도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십자가를 앞세우고 서울시청앞 광장까지 행진을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 지난 1월 6일 오후 사학비리 척결과 개정 사학법을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 주최 '사학수호 한국교회 목회자 비상기도회 및 십자가 행진'이 열리는 서울 저동 영락교회앞에서 기도회를 열었다. 기도회 도중 일부 한기총 행사 참가자들이 '빨갱이 물러가라'며 행사장으로 뛰어들어 피켓을 부수고 욕설을 퍼붓기도 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907년은 한국기독교에 있어 특별한 해이다. 이 때를 기점으로 해서 기독교 교세는 기하급수적인 팽창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후대는 이를 이른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기념하고 있다.

올해는 그 1907년으로부터 100년 되는 해이다. 기독교 기관과 교회에서는, 그래서, 다양한 기념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부흥회·기도회·문화행사·리셉션·학술회의 등 예정된 것만 따져도 그 많은 수를 한 번에 헤아리기 힘들 지경이다.

한국 기독교가 1907년의 100년을 기념하는 배경은 사실 이런 것이다. 기독교의 사회적 위상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1300만' 운운하던 개신교인의 인구는 860만으로 나타났고, 반면 불교와 가톨릭 인구는 하락세의 개신교와는 달리 증가세가 두드러진 것으로 드러났다. 어쩌면 수적 소외감에 대한 절박감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닐 부분이다. 무엇보다도 대사회적 영향력이 추락하고 있는 점은 기독교로 하여금 '부흥'에 대한 갈급함을 부추기는 동인이다.

'대박'이여, 다시 한번?

그래서 한국교회는 'Again 1907'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고 있다. '1907년이여, 돌아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1907년의 무엇이 돌아와야 한다는 것일까. 860만이 모자라니, 또 그마저도 줄어드니, 다시 '대확장'을 해야 한다는 것일까. 1907년 그 때 신자수가 불어났듯 그 때처럼 다시 한 번 '대박'을 터뜨리자는 것일까.

기독교에서 자주 쓰는 말 가운데 '선교'라는 것이 있다. '교리를 펼치다'는 뜻이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는 '선교'라고 하면 '교세 증가'와 등치된다. 이는 틀림없는 오독이다. '교세 증가'는 선교의 부산물이지 본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는 '신자 수'로 선교 실적의 척도를 삼는다. 철학의 빈곤이자 신학의 빈곤을 엿보게 하는 부분이다.

2004년... KBS 1TV <한국사회를 말한다> '선교 120주년, 한국교회는 위기인가'가 기독교를 비판했다는 이유로 2004년 9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 기독교신자 1천여명이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사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의 의미 또한 오독한다. 그 운동의 본질은 '교세 확장'이 아니다. '회개'였다. 그해 1월 6일, 훗날 한국 장로교 최초의 목사가 될 길선주 장로가 장대현교회당에서 설교를 각설하고 자신의 잘못을 회개하는 기도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때 어떤 일이 일어났던가. 교인들이 앞 다퉈 나와 울며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께 털어놓기 시작한 것이다. "축첩했다" "장사에서 폭리를 취했다"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런 회개운동은 평양을 넘어 서울은 물론 만주까지 퍼져나갔다. 그 사건을 계기로 교회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사람 수도 사람 수지만 무엇보다도 교회를 바라보는 민중들의 시각이 달라졌다. 결국 국권을 피탈 당했던 암울했던 시대상과 맞물려 기독교는 당대 민중들의 피안(彼岸)이 됐다. '회개'의 소산이었다. '부흥'은 거저 온 것이 아니었다.

'회개'여, 다시 한번!

한국교회의 'Again 1907'은 가능한가. 충분히 실현될 수 있다고 본다. 왜냐? 회개할 거리가 콘테이너 박스로 부산항을 가득 채울 분량의 곱절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교회를 사유화한 죄 ▲교인 주머니 돈을 쌈짓돈처럼 여겼던 죄 ▲남보고는 '똑바로 살라'라고 해놓고 자기는 그 반대로 살아 온 위선과 거짓의 죄 ▲성(聖)과 속(俗)을 멋대로 구분지어 예수가 무너뜨린 장벽을 다시 쌓고 사람과 사람을 가른 죄 ▲교회를 정치 투쟁의 장으로 오염시켜 혹세무민한 죄 ▲기독교를 그래서 냉소와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죄 ▲'교회개혁'을 외치면서 자기 스스로 도덕적 우월주의에 사로잡힌 채 자기 개혁을 소홀히 하고 결국 자기가 비판하는 대상과 동화돼가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 죄 등등.

이런 것들을 회개하면 된다.

2003년... 서울지검 동부지청은 2003년 8월 30여억원의 교회 자금을 유용한 혐의(업무상 배임.횡령 등)로 서울 금란교회 김홍도(65)목사를 구속 기소했다. 구치소로 향하는 김홍도 목사.
ⓒ 오마이뉴스 권우성
실례를 들어볼까? A목사는 강단에서 자신의 성추문과 횡령, 혹세무민을 참회하면 된다. B목사는 아들에게 교회 돈으로 아들 돈벌이 시켜준 점에 대해 통렬하게 자복하면 된다. C목사는 아들에게 교회를 세습한 점을 충심으로 회개하면 된다.

이것 뿐인가. 봉헌을 신앙의 척도로 왜곡했던 메시지를, 축첩 및 불의한 거래로 점철된 추악한 사생활을, 하나님 아닌 세속권력에 의지한 반역사적 행각을 하나도 남겨서는 안 된다. 단 1%의 앙금도 말이다.

이렇게만 한다면 하나의 사건이 될 것이다. 한국교회의 'Again 1907'은 가능하다. 그렇게만 하면 2007년은 기독교 부흥의 새로운 변곡점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전망은 우울하다.

대형교회 목사들은 오매불망 "1년만 지나라, '장로 대통령'의 시대가 곧 열린다, 과거의 영광이 재현된다"며 여전히 세속권력과의 결탁을 꿈꾸고 있다. 어떤 목사들은, 많은 시민들의 냉소 속에서도 꿋꿋이 사학의 기득권 사수를 목놓아 주장하고 있다. 또 어떤 대형교회 목사들은 교회를 한 손에 쥐고 사유화하며 '땅의 것'에 대한 집착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들의 변태적 회개가 두렵다

그들의 회개를 그리 크게 기대하지는 않는다. 실현 가능성이 적기 때문도 있다.

다만, 저들이 1907년을 이야기하는 것만은 말리고 싶다. 행여 '회개'한답시고 "세속 권력을 상대로 더 강하게 투쟁하지 못해 기독교 사학을 이 지경까지 만들게 해서 죄송하다"라거나 "예전 같으면 세속 권력이 목사들 앞에서 꼼짝도 못했는데, 이제는 우습게보게 내버려둔 점 죄송하다, 우리가 힘을 기르지 못한 탓이다"라며 소위 변태적 반성을 할까 두려운 것이다.

▲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주최로 '북한동포의 인권과 자유를 위한 촛불기도회'가 열린 지난 12월 10일 저녁 서울시청 앞 광장에 성탄 트리가 점등돼 불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국교회 도처에서 1907년 기념행사가 준비된다고 한다. 1907년의 본질인 '회개'가 없다면,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다같이 지은 귀책'이라며 어영부영 중언부언 넘어가는 요식적 반성에 그치는 것이라면, 안 하느니 못한 '회개'가 되리라.

교체되지도 않은 기득권, 깨어있는 소비자(신자)의 파워가 여파를 미치지 않는 권력, 꽁꽁 갇혀있는 인의 장벽인 성역. 교회는 이런 빗장을 모두 거둬야 한다.

예수가 인류의 죄값을 통째로 다 지던 순간 하늘의 하나님은 성전의 강단과 예배실 의석 사이를 막았던 휘장을 갈라버렸다. 그로부터 하나님과 인류 사이를 가로막았던 모든 장벽은 허물어졌다. 하지만 인간의 죄, 특히 교회의 내부적 모순이 다시 그 휘장을 복원했다. 이제 다시 하나님과 세상은 '트인 사이'가 돼야 한다.

'도덕성'이라는 종교적 양심의 근간마저 황폐화된 교회에서 더 무슨 '부흥'의 샘이 있을 것이라 보는가. 이제 땅을 기경할 샘은 기독교인 눈으로 나와 얼굴을 통해 땅에 닿을 반성과 통회의 눈물 뿐이다. 그 눈물이 땅을 촉촉하게 적셨을 때, 하나님은 이 땅의 교회에 부흥의 열매를 일궈주시리라. 비단 기독교인만의 복락이 아닌 온 사회의 평화와 행복, 번영을 만드는 인류보편적 부흥을 말이다.

기독교인이여, 목회자들이여, 1907년 그 초심으로 돌아가자.

태그:#기독교, #교회, #1907년, #평양,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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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라디오와 FM, KBS1라디오에서 뉴스 브리핑을 담당하는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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