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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도 십자가에 바퀴를 달았을까 한국기독교총연합(한기총)이 지난 1월 19일 저동 영락교회에서 주최한 '사학수호 한국교회 목회자 비상기도회 및 십자가 행진'. 기도회를 마친 참석자들은 십자가에 바퀴를 달아 끌면서 서울시청앞 광장까지 행진을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사학법 재개정 찬성 입장이 주요 뉴스가 되고 있다. 보수언론은 KNCC의 이 같은 방침에 대해 '진보적 교계단체까지 찬성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더 짚어볼 대목이 있다. 그렇다면 '진보적 기독교인'까지 모두 사학법 재개정에 찬성한다는 것일까.

KNCC가 사학법 재개정 지지한 속내

한국 기독교계에는 대표적인 두 연합단체가 있다. 바로 KNCC와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이다. 청와대에서 종교 지도자를 부르면 대개 KNCC 한 명, 한기총 한 명 이렇게 부르는 경향이 있다.

KNCC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한기총을 언급할 필요가 있다. 이 단체는 고 한경직 목사(영락교회 원로)를 필두로 1989년 KNCC의 시국 성향에 뜻을 같이 하기 힘든 몇몇 유력 목사와 교단들이 만든 별도의 교단 연합체이다. 2006년 현재 대형 군소교단 모두 합해 111개가 가입돼 있다.

눈치챘겠지만 이 단체는 보수성향이다. 한 목사가 속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통합)도 당연히 한기총에 가세했다. 사실 이렇게 되면 통합은 KNCC를 탈퇴해 한기총에 가입해야 옳다. 그러나 통합은 현재 KNCC와 한기총에 동시 가입돼 있는 상태이다.

어디 통합뿐인가. 기독교대한감리회와 한국기독교장로회, 구세군대한본영, 대한성공회, 기독교대한복음교회를 제외한 웬만한 교단은 대부분 한기총에 가입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래서 KNCC 회장을 한 박종순 목사(충신교회, 통합)와 최성규 목사(순복음인천교회,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이후에는 한기총 대표회장을 맡는 일도 벌어졌다.

@BRI@결국 KNCC는 세와 규모 면에서 한기총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에 기하성의 가맹을 결의한 것 말고는 회원수 불리기에 적극적이지 않다. 지금은 모두 8개에 그친다.

하지만 적어도 그 영향력만은 국민의 정부가 들어설 시점까지는 한기총보다 앞섰다. 왜냐. 한기총의 활동 공간은 대체로 한국교회 내부에 그쳤기 때문이다.

가끔 유명 외국 가수의 공연을 반대하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폄훼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대중들은 KNCC에 대해 알아도 한기총이 뭐하는 단체인지 잘 몰랐다. 좋은 말로 이야기하면 복음 전파와 교회 연합활동에 전력했던 것이다.

국민의 정부 이후 보수 목소리 내기 시작한 한기총

국민의 정부 이후 보수 목소리 커진 한기총 지난 2003년 1월 19일 서울시청 앞에서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주최한 '제2차 나라와 민족을 위한 평화기도회' 현장. 참가자들은 성조기와 영어로 적힌 팻말을 들고 기도회에 참석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이 집권하고 시대가 남북 화해일치 쪽으로 진전되면서 한기총의 노선은 조금씩 외향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대북 정서'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보수적 정서 특히 반공이념은 북쪽(특히 극우파들의 주 무대였던 서북쪽)에서 신앙 생활하던 이들이 한국전쟁 시점에 남쪽으로 내려와 삶의 토대를 마련하면서 자연스럽게 굳어졌다. 한 목사가 그런 신앙인의 대표적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은 그런 DJ정권이 노무현 대통령으로 계승되자, 취임 전인 2003년 1월부터 아예 친미성향의 시국집회를 공개적으로 여는 등 갈수록 우파적 양상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4년 9월 국회 다수당인 열린우리당이 국가보안법 폐지와 사학법 개정을 필두로 한 4대 개혁입법안을 마련하자 그 때부터 '나라가 망한다'는 극언도 쏟아내며 본격적으로 세를 합하기 시작해 지금은 가장 강력한 '반 정권 세력'의 결집체가 돼버렸다.

다시 이야기를 KNCC로 돌리자. KNCC는 사실 수 년 동안 사회적 메시지에 대해 거의 입을 닫았다. 통일, 환경, 인권과 같은 기본 레퍼토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국가보안법, 한미FTA, 특히 사학법과 관련한 현안에 대해서 뚜렷하게 제 목소리를 내본 일이 많지 않았다. 대체로 '개인의견'이라는 단서를 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개인의견도 가맹교단의 입맛에 맞지 않으면 타박감이었다. 전임 백도웅 총무는 사학법에 대해 지지발언을 하자 총회에 '소환'되는 '굴욕'을 겪었다.

암울했던 군사정권 시절에도 큰 소리 치던 KNCC가 왜 이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일까. 혹시 가맹교단에 대한 눈치 보기 때문은 아닐까.

통합교단 눈치 볼 수밖에 없는 KNCC

논의를 사학법으로 더 좁혀보자. 구한말 그리고 일제강점기 이전 외국 장로교 선교사가 세워준 거의 모든 학교가 통합 산하에 있다. 그것이 78개나 된다. 통합(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은 사학법 때문에 창학 이념 심지어 학교의 신앙적 토대가 통째로 상실된다고 판단하고 있는 모양이다.

올해 총회장이 된 목사는 아예 삭발을 해버리더니 '순교'의 전의로 사학법을 교단의 이익에 맞게 고치겠다고 다짐했다. 한 때는 진보와 보수가 상호공존하면서 신학적 균형감각을 만들어나갔던 통합은 이렇게 한 쪽에 경도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하긴 요즘 진보에서 보수로 변신해 한참 주목받는 인명진 한나라당 윤리위원장,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합 의장, 서경석 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 등도 역시 이 교단 소속 목사이다. 이목을 끄는 부분은 인명진 위원장과 특별히 현 총회장(이광선 목사)과는 장로회신학대학교 동기라고 한다.

KNCC의 이번 찬성 입장은 어떻게 나온 것일까. KNCC는 재정의 70% 가까이를 회원 교단이 내는 분담금으로 운영하고 있고, 통합은 여기에 40% 가까이 기여한다. '가맹교단 총회장은 사활을 걸고 싸우는데 KNCC가 하는 일이 뭐가 있냐'는 변을 들을 만하다.

KNCC의 이번 사학법 재개정 지지는 그런 의미에서 보면 '교회 정서의 대변'이라기보다는 'KNCC의 고객 관리를 위한 특별 서비스'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딱 좋을 것 같다. 어쩌다 'KNCC가 저렇게 됐냐'라는 비판과는 별개로 말이다.

사학법 재개정지지, 교회 정서 아닌 고객관리 차원?

언론의 교회비판 절대불가? KBS 1TV <한국사회를 말한다> '선교 120주년, 한국교회는 위기인가'(2004년 10월 2일 오후 8시 방송)에 항의하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소속 기독교신자들이 2일 오후 서울 여의도 KBS본사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러나 이것은 꼭 언급하고 싶다. KNCC가 전향했건 훼절했건 간에 진보적 그리스도인들이 사학법 재개정을 바란다고 규정하지 말아달라고 점을 말이다. 모름지기 사학이든 공립학교든 학교는 공공재이다. '소유권' 운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 사학에 공공성을 부여하는 것을 막을 명분은 없다. 그러나 정말 명분이 없는 행동은 '학교를 폐쇄하겠다'는 농담으로도 해서는 안 될 말이다(전교조 교사들이 단체로 합법적 월차 낸다고 했을 때 '교육권 침해'라 반발했던 보수언론의 처신도 문제다. 목사들을 꾸짖는 말은 꺼내지도 않으니 말이다. 월차는 안 되고 폐쇄는 된다는 이야기인가?).

토론하고 싶은 논점은 하나 더 있다. 창학 이념이 훼손된다고 주장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창학 이념의 파괴는 학생들의 고교 선택권을 완전히 앗아가 버린 박정희 정권 시절 '고교평준화' 조치가 나왔을 때 고민했어야 했다.

예배를 원치 않는 아이들에게 몽둥이와 교칙을 앞세워 강압적으로 예배실로 쑤셔 넣었던 학교나, 그런 예배 들으며 기독교에 대해 더 큰 반감을 갖게 된 학생들. 서로의 불행은 이때부터 시작됐던 것이다(간혹 고교평준화를 통해 전도의 기회가 부여됐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교목이 강단에 나와 30~40분씩 설교한다고 전도가 되는 시대인지는 의문이다. 떠들지 않고 자리에 앉아 조용히 듣는 친구들을 흡족하게만 바라보지 말고 자세히 살펴봤으면 한다. 8할은 귀에 뭘 꽂고 있을 것이다).

일제는 민족정신을 말살하고 기독교 교육의 근간을 뿌리 뽑기 위해 기독교 사학을 문 닫게 했다. 하지만 그 명맥을 끊지는 못했다. 그런데 그 사학을 음해하려는 것도 아니고, 의결 정족수도 안 되는 소수의 공공인사를 갖다 앉히자고 하는데도, '이러면 미션스쿨 망한다'는 주장은 너무 과한 것은 아닐까. '과장'이 지나치면 '혹세무민' 소리를 필연코 들을 것이다. 걱정되는 부분이다.

재산에 초연했던 그리스도 정신은 어디로

목회자 여러분께 당부한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낮고, 여당 체제가 흔들리는 이 상황에 편승해 기독교 사학의 기득권을 최대한 챙겨보려는 정략적 발상은 제발 거둬주길 바란다. 독재정권 때 귀 따갑게 들려주신 '세속 권력에 복종하라'는 말씀을 돌려드리려는 것은 아니다(잘못된 세속 권력이라면 견제해야 하는 것 역시 당연한 교회의 몫이다).

다만 사학의 기득권이 공고해야만 창학 이념이 탄탄하게 지켜진다는 식의 억설로 더 큰 냉소를 자아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다. 노 정권의 인기는 바닥이어도 사학법 제정 취지에 대한 국민적 지지세는 탄탄하다. 경험칙 때문이다. 지금 목회자들의 투쟁은 그런 의미에서 '기득권 지키기'로 비춰질 공산이 크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를 기득권을 버려야 빛이 나는 종교로 인식하고 있다. 실제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 엄청난 명함을 하늘나라에 두고 마구간에 내려오신 분 아닌가. 그 분은, 몇몇 목사들처럼 바퀴 달린 십자가가 아니라 진짜 십자가를 지고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서 인류 구원의 좁은 길을 걸으시지 않았던가.

예수 그리스도가 걸은 그 발걸음은 법과 제도, 권력체계, 재산과는 완전히 초연했던 것이다. 세속의 모든 헤게모니는 가이사에게 통째로 쾌척하시고는 '하늘의 가치'만을 택하셨던 것이다. 그 분 덕에 (성경이 가르친 원리로부터 변질된 측면도 없지 않지만) 기독교는 2000년 역사 내리 지구촌 곳곳에 양화를 구축하는 핵심적인 이데올로기가 됐다. 목회자들의 본령이 예수 그리스도의 길로 양떼들을 인도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목회자 여러분은 지금 그 길로 우리를 인도하는 것인가.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이런 노래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크리스마스에는 단식을 크리스마스에는 투쟁을' 하는 목회자들. '교회의 기득권 챙기기'라는 오해를 사면서까지, 목회자의 사회적 체면이 깎이는 부담을 자초하면서까지, 순교를 각오해도 될 만치, 사학법 재개정이 그렇게 절실한가. 공평과 정의, 사랑 그 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개독'으로 오욕돼도 상관 안 할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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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라디오와 FM, KBS1라디오에서 뉴스 브리핑을 담당하는 시사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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