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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기다리는 종부세 납부안내통지서 서울 강남우체국 직원이 28일 오후 각 가정에 배달할 종합부동산세 납부안내 통지서을 분류하고 있다.
ⓒ 연합뉴스 조보희
재산세, 양도소득세, 종합부동산세 등 집에 대한 세금문제가 지난 몇 년간 온 나라를 시끄럽게 하고 있다. 세금문제는 고상한(?)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아니라 당장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각 계층 간의 이해가 크게 엇갈리게 마련이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도 매우 복잡하고 시끄러울 수 밖에 없다.

국가의 경영은 '누구로부터 세금을 거두어 무엇을 위해 쓸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따라서, 세금문제를 잘 해결하는 국가는 흥하고 세금문제를 잘 해결하지 못하여 계층 간의 갈등이 커지는 국가는 망하기 마련이다. 외국의 사례를 볼 필요도 없이 우리나라의 역사를 보면 금방 이해가 간다.

세종대왕의 업적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연분9등법 전분6등법'을 도입한 것은 재정학적 측면에서의 업적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풀이하면 조세법률주의를 확립하여 세리(稅吏)들의 부패를 없애고 양민들의 고통을 줄이면서 국가의 재정을 튼튼히 한 획기적인 조세개혁이었다. 이로써 조선시대 번영기의 재정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조선후기는 삼정문란을 사회적 특징으로 한다. 삼정문란은 일종의 세제세정의 문란을 뜻한다. 임진왜란 이후 피폐해진 국가재정을 회복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 조세개혁 방안이 거론되고 시도되었다. 이 중 대표적인 것이 양반에게도 군포를 징수토록하는 호포제의 시행 여부였다. 당시 양반은 군역의 의무가 없었는데, 양반이 전 인구의 70%에 가까울 정도로 증가하자 국가 재정은 극도로 악화되었다.

숙종 때 호포제 도입을 시행하려다 양반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조선 후기에 가장 강한 왕권을 갖고 있던 영조마저도 이를 도입하려다 양반들의 반대를 못 이기고 포기하였다. 결국, 조선이 망하기 직전인 흥선대원군때 도입되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지만, 만약 호포제가 좀 더 일찍 도입되어 국가재정이 안정되고, 이로써 빈민구제정책을 펴 민란을 해결하고 국방을 튼튼히 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상상해본다.

만약 조선후기 호포제가 시행됐더라면...

이야기를 종합부동산세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둘러싼 논쟁은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도입의 정당성을 둘러싼 논쟁이고, 두 번째 단계는 세금이 부과된 현재의 논쟁이다.

종합부동산세는 재산세를 일부분 대체하는 세금이다. 재산세는 기초자치단체의 지방세다. 서울을 기준으로 보자면, 자치구가 거두어 자치구가 전액 쓰는 세금이라는 것이다. 반면, 종합부동산세는 국세로서 어떻게 쓸 것인가의 권한은 중앙정부에 있다.

'우리 주민에게 세금을 거두어 우리 주민을 위해 쓰겠다는데 왜 중앙정부가 간섭하느냐?'가 당시 가장 강력한 반론이었다. 논리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강남의 재정이 풍부하여 재산세를 인하하겠다는데 무엇이 문제냐? 괜히 질투하지 말고 강북도 강남만큼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면 된다. 그러려면 강북 주민에게 세금을 더 거두어라.' 형평성과 지방자치 간의 가치충돌이 일어났다. 그런데, 여기에 한 가지 비밀이 있다.

강남구의 경우, 자치구세의 80% 이상이 부동산보유세(건물분 재산세 + 종합토지세)이다. 그런데, 종합토지세의 50%는 개인이 아닌 법인으로부터 거둔 것이다. 법인은 강남주민이 아니다. 법인의 주인은 주주이므로 법인이 낸 부동산보유세는 전국 각지에 사는 주주들이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강남에 위치한 포스코 본사가 낸 종합토지세는 강남주민이 낸 것이 아니라 포스코의 주주들이 낸 것이다.

결국, 강남을 살기 좋은 자치구로 만든 재정의 상당부분은 강남 주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국에 산재한 법인 주주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다. 그리고, 강남에 각 회사가 몰릴 수 있도록 훌륭한 인프라를 마련한 것은 국세이다. 이제 '우리 주민에게 세금을 거두어 우리 주민을 위해 쓰겠다는데 웬 참견이냐?'의 항변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 강남 주민이 누리는 혜택의 상당부분은 남의 돈 덕분이기 때문이다.

강남 주민이 누리는 혜택 상당 부분이 '남의 덕'

▲ 자치구세의 80% 이상이 부동산보유세(건물분 재산세 + 종합토지세)이다. 그런데, 종합토지세의 50%는 개인이 아닌 법인으로부터 거둔 것이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밸리 야경.
ⓒ 연합뉴스
이제 종합부동산세가 부과되는 단계에 이르자 서민이 피해본다는 '서민론'으로 반발한다. 조세제도 왜곡의 역사는 항상 '서민론'에서 출발하였다. 서민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부자들이 더 혜택을 보는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그것이다. 영세자영업자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도입된 간이과세제도가 실제 고소득자영업자의 탈세에 이용되는 경우가 그렇고, 서민들의 재산형성지원을 명목으로 도입된 각종 저축에 대한 비과세감면제도가 실제로 금융자산가의 재산형성에 더 큰 기여를 하는 것이 그렇다.

이번에도 다르지 않다. 강남에서 1주택을 소유하고 10년 이상을 거주한 월급쟁이와 퇴직자의 예가 종부세 피해자의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종부세 대상 세대는 전체 세대의 1.3%인데 이 중 71.3%는 다주택 보유자라고 한다. 그렇다면, 위의 예에 해당하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 것일까?

위의 예에 해당하는 사람이 몇 백명인지 몇 천명인지 알 수는 없지만, 이들의 사정 때문에 종부세 자체를 없애거나 무력화시킬 수는 없다. 이런 식이라면 우리나라 조세제도 중 남아 있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세금을 내야 할 이유는 한두 가지에 불과하지만 세금을 낼 수 없는 이유는 우리나라 인구 수만큼 많기 때문이다.

올해 초 기준으로 기준시가가 8억원 정도 하는 아파트의 경우, 약 140만원의 종부세가 부과될 것으로 예상되는데 재산세 세액공제를 고려하면 실제로 추가적인 세부담은 80만~90만원 정도로 예상된다. 기준시가와 실거래가의 차이,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의 가격 상승분을 고려하면 시가 약 15억원 정도의 아파트를 보유하는 경우 80만~90만원 정도의 추가 세부담이 예상되는데, 이러한 상황이 '서민론'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자녀의 교육 때문에 또는 다른 이유 때문에 벅차게 강남에서 견디는 서민형(?) 강남주민의 입장에서는 수십만원도 큰 부담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분들께는 빨리 강남을 탈출하여 여유롭게 사시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 이유는 이렇다.

우리나라 부동산보유세의 실효세율은 2005년 0.20%에서 2017년 0.61% 달성을 목표로 계획된 것이다. 그런데, 세금에 있어서는 부자들의 천국으로 알려진 미국의 경우 평균실효세율은 1.15%로 우리나라의 6배에 달한다. 일본의 경우 GPD 대비 보유세 비율이 2.1%(2001년 기준)로 0.6%인 우리나라에 비해 3배가 넘는다.

우리나라 입장에서 보기에는 무지막지한 선진국의 부동산보유세가 선진국 국민으로 하여금 능력에 걸맞지 않는 부동산을 보유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장기적으로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으며, 보유세 강화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종부세가 없어질까?

▲ 강남구 포이동 266번지 자활근로대 마을. 거리부랑아와 극빈층의 자활과 근로의욕 고취라는 명분으로 군사독재 시절 정부에 의해 반강제적으로 만들어진 이 판자촌은 공교롭게도 타워팰리스로 상징되는 초고층 아파트와 양재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서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한나라당이 집권하면 종부세가 없어지지 않을까? 그러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지금은 책임 없는 야당이니까 감세를 자유롭게 주장하지만, 막상 집권하고 나서 재정을 직접 운용하다보면 감세를 실천하기가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어차피 소수의 부유층과 다수의 서민층으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사는 지역 역시 부자 동네와 서민층 동네로 나누어지게 된다. 집값이 양극화될수록 부자 동네와 서민층 동네에 대한 보유세 부담의 차이는 더욱 더 벌어지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다. 선진국으로 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욱 더 뚜렷해진다. 좋고 싫고를 떠나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흐름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서민의 소득으로 부자 동네에 사는 것은 경제적으로 큰 고통이 따른다. 이제는 개인의 선택이 남아 있다. 강남에 사는 것은 구체적인 혜택 외에도 여러 가지 정신적인 만족감을 준다고 한다. 필자가 아는 한 분은 자녀의 교육 때문에 20년전부터 강남에 살았다. 자녀 모두 직장을 구한 지금도 강남에 사는 이유는 강남에 살아야 자녀의 혼처가 좋은데 들어온다고 한다.

이와 같은 이유로 강남에 살고자 고집한다면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나 그로 인한 경제적 고통 역시 개인이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이를 멀쩡한, 아니 선진국에 비하면 물러터진 종부세 탓으로 돌리지 마라.

집값이 올랐다는 이유만으로 왜 정든 집을 떠나야 하냐고? 여러분 아파트가 지어지기 전에 그 터에서 살다가 재개발 때문에 이사비 몇푼 받고 떠나야 했던 사람들의 피눈물을 생각했으면 한다.

강남에 사는 게 죄는 아니다. 남의 돈으로 온갖 혜택을 다 누리며 자기들만의 성을 쌓고서는 세금낼 때만 서민으로 돌변하는 이율배반적인 행태에 분노를 느낄 뿐이다.

이 기사를 쓰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불편하다. 수백만원의 세금 정도는 별 부담 없는 부자들보다 어느 정도 심정적으로 이해가 되는 소위 서민형(?) 강남주민에게 주로 쓴소리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진짜 부자들이 서민형(?) 강남주민을 핑계로 종부세를 무력화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세금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보수언론들은 이렇게 부자들을 못 살게 굴면 다들 외국으로 나간다고 협박하곤 한다. 제발 나가라. 그래서 배우고 와라. 미국의 세금이 부자들에게 얼마나 엄격한지, 그리고 부자들이 세금을 어떻게 보는지.

50년 후, 누군가 '50년 전 1.3% 상류층에게 부과되는 종부세가 폐지되어 조세제도가 왜곡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쯤…'라는 한탄조 기사가 신문에 실리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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