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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날씨에 무척 둔감한 편이다.

더운 여름날 "더워, 더워"를 남발하지도 않고 추운 겨울이라고 해서 "추워서 죽겠어"라며 징징대지도 않는다. 그저 땀이 나면 '여름이니 덥구나', 소름이 돋으면 '겨울이니 춥구나'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곤 한다.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은 '곰도, 곰도, 저런 곰은 없을 것'이라며 혀를 차지만 덥다고 운다 하여 여름이 내 눈치를 볼 것도 아닌데 에너지를 쏟아가며 화를 낼 필요가 있을까?

그저 더운 날엔 밖에 안 나가고 방 안에서 병아리 숨을 쉬면서 냉커피나 묵묵히 마시는 게 최고라는 나름의 방식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나의 곰다운 성격도 가끔은 한계에 다다를 때가 있다.

너무 더워서 울어본 적이 있는가?

▲ 옥탑방의 바깥 풍경들.
ⓒ 박봄이
자취를 하다 보니 집을 구할 때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집세다. 금액이 어느 정도 맞고 구조도 그럭저럭 살만하다면 큰 망설임없이 계약을 하고 이사를 한다. 물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동네도 따지게 되긴 하더라만.

아무튼 가격이 좀 맞고 구조까지 마음에 든다면 최상이지만 어디 사람 사는 게 내 맘대로 떡 주무르듯 되느냐 말이다. 보통, 가격이 맞으면 집의 구조나 위치 등과 관련해서는 반은 포기하고 들어가게 된다.

그리하여 처음 살아봤던 반지하. 반지하 생활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반지하라는 동양권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주택구조에 살다보면 우리나라의 사계절 중에서도 여름이라는 계절이 얼마나 살인적인지 몸소 체험하게 된다. 이름하여 '체험, 찜통 현장'.

'반지하'는 대부분 다세대 주택이고 주택가 밀집 지역에 있는 탓에 환기뿐만 아니라 바람도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일전에도 '사는이야기'로 쓴 적이 있지만 옆집에는 조폭, 밤에는 귀신, 여름에는 수해, 이 환상의 3박자를 고루 갖춘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반지하방에 살던 시절이 있었다.

밤에는 옆집 조폭들의 계속 되는 싸움질로 방문을 열어놓고 살 수가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어떻게 아리따운 여인 혼자 산다는 건 알았는지(우호호~) 새벽마다 파리떼를 가장한 도둑들이 "아가씨, 물 좀 줘", "잠깐만 문 열어봐요"라며 데이트 아닌 데이트를 신청하는 일들이 벌어져 안 그래도 더운 여름에 짜증이 복받쳐 오르곤 했었다. 창문만이라도 열 수 있었으면 좋았으련만, 창문도 건물 안의 복도로 나 있어 그럴 수도 없는 막막한 상황.

마치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방안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 채 숨만 할딱할딱 쉬어가며 눅눅한 바람을 머금은 선풍기만 돌려댔다. 샤워, 하루에 최소 5번. 그러나 아무 소용없었다. 샤워를 하고 몸을 닦을라치면 다시 흐르는 땀. 더워서 울어본 자가 있던가. 난 그때 처음으로 더워서 울어봤다. 낮에는 잠깐 잠깐 문을 열어뒀으나 더운 여름 날, 들어오는 건 지나가던 길 잃은 파리뿐이고 다닥다닥 붙은 다세대 반지하 내 방까지 들어올 바람은 애당초 있지도 않았다.

탈진, 급기야 아이스커피를 타기 위해 부엌에 서 있던 나는 갑자기 몸을 가눌 수 없는 현기증과 구토가 밀려와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눈앞이 까맣게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때 알았다.

귀신 바람도 있고 옆집 조폭도 있고 도저히 이곳은 사람 살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이사를 결심하게 된다. 어디든 좋다, 반지하만 아니면 된다!

옥탑방으로 각종 벌레가 날아들다

▲ 자그마한 평상, 밤에 누워 하늘을 보노라면…. 별은 없다.
ⓒ 박봄이
그리하여 옮기게 된 곳이 서울 가락동의 빌딩 옥탑. 탁 트인 넓은 옥상, 가끔 주인아저씨가 청소하러 올라오는 것 외에는 올라오는 사람도 없었고 빌딩 옥상이라 듬직한 철문만 잠가버리면 도둑 걱정도 없었다. 그것뿐이랴, 이젠 가족으로 '강세이(강아지)' 녀석들도 입양해서 옥상에 풀어놓으며 살 수 있는 그야말로 환상의 섬, 나만의 파라다이스였던 것이다. 물론 이건 '집 계약'을 했을 때의 생각이다.

막상 이사를 하고 살아보니 옥탑방, 이곳도 만만치 않은 곳이었다. 무슨 놈의 벌레는 각양각색 종류별로 기어들어와 주시는지 손바닥만한 나방이 마치 참새처럼 푸드덕 날아 들어올 때나 거짓말 조금 보태서 어른 주먹만 한 바퀴벌레가 천장에서 저벅저벅 산책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는 이곳이 나의 집인지, 그들의 서식처에 내가 세들어 사는 것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 뿐이랴, 옥탑이 '덥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막상 살아보니, 한여름 대낮의 옥탑은 마치 태양열을 저장하는 저장소처럼 햇빛의 엑기스를 뽑아 담아 놓은 곳인 듯했다. 반지하에서는 햇빛이 안 들어오더니 옥탑은 눈이 부실 정도로 햇빛도 쨍쨍하게 들어왔다. 옥상에 나가 앉아 있으면 '아… 이렇게 한 시간만 앉아 있으면 내가 수육이 되겠구나'라고 느낄 정도였다. 덥다는 표현보다 뜨겁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정도.

옥상 위에 올라와 있는 에어컨 실외기에서 뿜어대는 더운 바람은 옥상을 더더욱 달궈놓았으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찾아온 열대야는 급기야 나를 옥상 바닥에 나와 자게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모기장도 준비되지 않은 채 실행한 한여름의 옥상 수면은 온 몸에 수십 군데의 모기바늘 자국만을 남겨놓았을 뿐이었다.

그래도 참 다행이었던 것은 반지하에는 없는 그것, 바로 바람이 있다는 점이었다. 방안은 '오부지게' 더웠지만 창문과 방문을 열어놓으면 가끔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 오아시스의 물처럼 달콤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지옥과 같은 여름이 지나고 겨울. 물론 이 겨울이라는 계절도 옥탑방에서는 버티기 힘든 계절이다. 칼바람은 그대로 창문 사이사이로 저미고 들어오고 바람이 세지면 창문을 우당탕 두드려댔다. 그런 바람의 공격에 나는 자다가 깜짝깜짝 놀라 '덜덜덜' 떠는 것이 일상처럼 되어버렸다.

젊었을 때 이 정도는 뭐, 나는 '옥탑방 곰탱이'니까~

▲ 옥탑에서 바라본 거리풍경.
ⓒ 박봄이
이후 나는 '내 다시는 반지하와 옥탑에서는 살지 않으리'라고 다짐하고 4층 구조의 집에서 2년여간을 살았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 이유에서인지 아니면 고생을 덜 했던 탓인지 난 다시 옥탑으로 이사를 했고, 여전히 옥탑방은 덥다.

바람 한 점 없는 한낮이면 선풍기도 '쿨럭'대며 더운 바람만을 내뿜어놓고 미안한 듯 고개를 돌리고 만다. 또 우리집 식구들인 복댕, 삼식, 용녀(한 놈 더 들어왔다)는 바닥에 널브러져 '나 좀 살려주쇼' 포즈로 '헥헥'거리느라 혀가 바닥에 닿을 지경이다.

하지만 옥탑방에서 지낸 시간이 길어지면서 이곳에서 사는 감정도 조금씩 변하는 것을 느꼈다. 만약 다시 이사를 갈 때 '예쁜 옥탑방 있는데 한번 보실라우?' 묻는다면 난 거절하지 않을 것 같다.

물론 여름과 겨울에 또 이 전쟁을 치러야 하겠지만 개 세 마리와 처마 밑에 앉아 여름비를 바라본다거나, 옥상 청소를 하며 치는 물장난, 그리고 이 여름이 지나가고 찾아오는 가을 즈음의 시원함과 높은 하늘 등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어 뼈마디가 시리고 더위에 혈압이 올라 쓰러질 정도가 아니라면 젊었을 때 이 정도 더위는 경험해봐도 된다고 생각하는 경지에 다다랐다.

더위에 약하신 분, 추위에 약하신 분, 옥탑방에서 한번 살아보시라. 1년만 살아보면 그 어떤 계절도 여유있게 버텨낼 수 있는 '인간 곰탱이'가 될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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