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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화순군과 장흥군을 가르는 곰치재를 넘어 839번 지방도를 타고 약 4km 정도 남쪽으로 길을 줄이면 왼편으로 너른 들이 펼쳐진다.

들이 끝나는 동쪽 지점에는 낮게 흐르는 구릉성 산지가 북에서 남으로 길게 자리 잡고 있고, 그 구릉성 산지는 30-40가구 규모 수준의 4개 마을 ‘기동-석정-선정-마산리’(장평면)를 차례로 거느리고 있다. 마을 앞에는 보성강→섬진강으로 흘러드는 장평천 상류의 샛강이 약 40여m 폭으로 흐른다.

▲ 실제 사업주를 알기 어려운 골프장 예정지 표시판
ⓒ 이정우
<알림… 공사명: 장흥다이너스티 골프장 조성공사… 대주그룹(주) 광주일보사 대표이사>

839번 지방도에서 선정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안내 표시판의 일부 내용이다. 골프장 조성공사를 위해 분묘를 신고해 달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같은 내용의 안내표시판은 골프장 예정지의 북쪽 시작점인 기동리 인근에도 세워져 있다.

광주일보 전담사업에 '대주그룹' 표기 왜?

장평면골프장반대대책위의 한 관계자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언론사를 앞세워도 되느냐”며 건설업체와 언론사의 유착을 성토했다. 하지만 ‘유착’이 아니다. 장평면골프장은 정확히 ‘광주일보’의 사업이다. 안내표시판의 사업자 부분을 보통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풀어서 표기하면 ‘대주그룹 계열사인 (주)광주일보사’가 된다.

▲ 마을 뒤쪽 선명하게 보이는 산자락이 골프장 예정지. 강은 광주광역시의 상수원인 주암댐으로 흘러든다. 천연기념물 수달이 살고 있는 강이기도 하다.
ⓒ 이정우
장흥군이 올해 3월 제작 배포한 주민설명자료에도 사업자는 ‘대주그룹(주) 광주일보사’로 표기되어 있다. 그룹 다음에 '(주)' 글자가 붙은 기묘한 표기법에 대해 군 관계자는 “대주그룹이 그렇게 쓰길래"라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광주일보 측은 “주식회사 광주일보의 사업이다. 그래서 대주그룹 (주)광주일보사가 맞다”고 확인해 주면서도 “아마도 안내판 제작업체의 실수일 것”이라면서 ‘오기’에 특별한 의미를 두지는 않았다.

의문점은 왜 ‘대주그룹’이 표기되었는가, 이다. 예컨대 대주건설의 사업장에는 ‘대주그룹 (주)대주건설’과 같은 문구가 등장하지 않는다. 국내의 다른 사례에서도 그룹 이름을 앞에 두고 계열사를 뒤에 표시하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사업의 성격을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면 ‘시행사 (주)광주일보사, 시공사 대주건설주식회사’가 맞을 것이다. 골프장 조성사업을 대주건설이 맡을 경우 그렇다는 것이다.

지역민, "광주일보 살리기 위해 주민들 죽이느냐"

지난달 광주전남지역을 대상으로 한 <시사저널> 여론조사에서 광주일보는 '가장 영향력 있는 언론 1위'로 뽑혔다. 광주일보는 이를 자사의 1면 머리기사뿐만 아니라 광고지면을 통해서까지 '광고'했던 터. 광주일보의 지명도가 대주그룹에 비해 떨어진다고 볼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혼돈’을 주는 사업자 표기는 왜일까. '1등 언론사'가 교열도 보지 않았단 말일까.

까닭은 “언론사를 앞세운다”는 골프장반대대책위 관계자의 성토와는 정 반대의 이유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시행자로서 광주일보가 전면에 등장하는 것을 부담스러워 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광주일보 사업부 관계자는 “평범한 사안조차 인허가 관청에서 원칙을 더 따지고, 다른 언론들의 감시도 심하다”면서 “차라리 광주일보를 표시하지 않는 게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주그룹을 함께 표기하는 것은, 골프장 조성이 광주일보의 전담사업이라는 점을 희석시키기 위한 눈속임 아니냐는 지적을 우회적으로 시인한 셈이다.

▲ 짓다만 채 방치된 개인사업자의 '골프연습장' 예정지. 바로 앞 산자락이 광주일보의 골프장 예정지이다.
ⓒ 이정우
광주일보가 골프장 사업에 뛰어든 때는 지난해 대주건설이 광주일보를 인수하면서부터. 광주일보는 현재 함평다이너스티클럽을 운영하고 있으며, 장평골프장이 완성되면 이 역시 광주일보의 수입원으로 관리될 예정이다.

이에 대해 광주일보측은 “적자에 허덕이면서 강압적인 광고 등으로 신문사를 유지해나가는 것보다는 부대사업을 통해 적자분을 보충하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을 보였다.

광주일보 "언론 역할 제대로 하려면 수익사업 필요하다"

조선대 김성재 교수(신문방송학과)는 “골프사업이 진정한 적자보존 사업이라면 나무랄 사안이 아니다”면서 “그러나 문제는 골프장의 수익이 광주일보의 질을 높이는 데 투자가 되느냐 인데 꼭 그런 것 같지는 않다”고 비판적인 입장을 제시했다.

골프장반대대책위 위두환 위원장은 좀 더 원칙적인 문제점을 제기했다. 위씨는 “소위 1등신문의 유지 근거가 골프장이라면 차라리 신문 사업을 접는 게 낫다”면서 “여론을 좇고 또 계도해야할 신문이 찬반이 뚜렷하게 갈리는 골프장 사업으로 유지된다는 것부터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나무 장사를 한 흔적이 곳곳에 보이는 '실패한' 골프연습장. 주민들이 골프장의 '허상'을 깨닫게 된 계기가 되었다.
ⓒ 이정우
실제로 장평면골프장 조성사업은 현지민들의 반대가 어느 곳보다 심한 실정이다. 골프장 예정지의 오폐수를 받아 안게 될 장평천에는 천연기념물인 수달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돼 환경문제로 인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평천은 광주광역시의 상수원인 주암댐으로 흘러든다. 반대대책위의 주장처럼 장평면골프장은 단순히 1개 면의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1등 신문'의 유지 근거가 골프장이라면 차라리 신문사업 접어야

인근 주민들은 골프장이 조성돼 운영될 경우 ‘지하수가 고갈될 것이다’는 새로운 논쟁점 또한 내 놓았다. 선정 1구와 선정 2구는 현재도 물 사정이 좋지 않아 공동관정을 개발해 함께 쓰고 있는 실정. 주민들은 “몇 해 전 수목갱신을 위해 나무를 베었는데 곧바로 가뭄이 들 정도로 물이 잘 빠지는 토질”이라고 골프장예정지의 물 사정을 설명했다.

2002년 환경부 통계에 의하면, 18홀 크기의 골프장에서 하루에 사용되는 물의 양은 약 2000명 정도가 하루 동안 사용하는 물의 양과 같다. 이 숫자는 장평면 전체 인구와 맞먹는 크기이다. 장평면골프장의 예정 크기는 27홀. 골프장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있는 마을의 경우 180가구 300명 정도가 생활하고 있다. 지금도 물이 부족한데 골프장이 건설되면 농업용수까지도 말라버릴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 배경이다.

골프장를 두고 벌어지는 몇몇 ‘윤리논쟁’은 저만치 두고서라도, 장평면골프장은 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문제와도 곧바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주민 김경열씨는 “광주일보를 살리기 위해 우리들은 죽어도 좋다는 것이냐”며 광주일보의 경제논리를 일축했다.

문제는 더 있다. 광주일보가 추진하는 골프장예정지 지척에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산자락이 보이는데, 광주의 개인 사업자가 지난해 4월 착공했다가 가을께 공사를 중단해버린 ‘골프연습장’ 예정지이다.(장평면 기동리 산 108번지, 110-1번지) 약 8000평 규모로 조성될 계획이었으나 사업주의 사정으로 중단, 지금은 ‘원상복구명령’을 받고 방치되어 있는 상태이다.

골프장 예정지 지척에서 확인되는 골프장사업의 '허구'

지난 2003년 12월 장흥군과 광주일보가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후 1년여 기간 동안 장평면 주민들은 골프장 건설 문제로 극심한 주민분열상을 겪어왔다. 이후 주민들은 벌건 속살을 드러낸 실패한 골프연습장을 목격했다. 반대대책위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심각한 환경문제를 비롯하여 골프장이 몰고 올 총체적인 피해에 비해 극히 미미한 경제적 효과를 지속적으로 홍보했다.

결국 광주일보의 골프장 건설과 관련, 장평면의 여론은 초기 찬반양론에서 현재 반대가 절대적으로 우세한 상태로, 반대대책위는 내다보고 있다.

장평면 선정, 기동리 일원 약 44만평의 임야에 27홀 규모로 지어질 예정인 ‘광주일보골프장’의 현재 진척 상황은 6월20일 전남도 도시계획시설위원회를 통해 ‘조건부 통과’인 상태. 조건부는 수달보호대책을 포함해 사전환경성 검토 및 진입로 등 주변 지역 정비계획 보완을 뜻한다.

한편 반대대책위는 여름이 가기 전에 ‘골프장찬반주민투표’를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광주일보와 주민들의 대립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광주일보의 선택은 언론일까, 사업일까. 답은 뻔히 보이지만, 해보고 싶은 질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광주지역 주간신문 <시민의소리>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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