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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선 지금 한 풀뿌리 시민운동 단체가 정치 광고를 둘러싸고 보수주의자들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무브온 (MoveOn.org)’이라는 유권자 단체가 그 주인공입니다. 지난해 말부터 ‘무브온 유권자 기금(MoveOn Voter Fund)’을 결성, 인터넷을 통해 <30초 속의 부시(Bush in 30 Seconds)>라는 정치 광고 컨테스트를 개최했습니다.

▲ <30초 속의 부시> 출품작 "Human Cost of War"의 한장면
ⓒ MoveOn.org
12월 31일 공모기간이 마감되기까지 무려 1512개의 작품이 출품될 만큼 큰 호응을 받았는데, 응모자는 대부분 전문 광고 제작자들이 아닌 일반 시민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부시 행정부의 실정에 초점을 맞춘 텔레비전 광고 스타일의 30초짜리 정치 광고를 제작, 온라인으로 응모했습니다.

이와 함께 주최측은 무브온 회원들에게 인터넷 접속을 통해 작품들을 감상하고 평가해 주도록 요청했는데, 한 회원이 최고 20개 작품에 대해 점수를 매길 수 있게 한 결과 지난달 말 현재 투표수는 290만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30초 속의 부시>가 들불처럼 번져나가자 미국내 보수주의자들은 안절부절했던 것 같습니다. 참다못해 미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먼저 딴지를 걸고 나왔지요. 예선을 통과한 1500여 작품 중에 부시 대통령을 독일의 독재자 히틀러에 비교한 작품이 있다면서 무브온을 걸고 넘어진 것입니다.

▲ <30초 속의 부시> 출품작 "Bring Them On"의 한 장면
ⓒ MoveOn.org
그 작품의 스크립트를 보면 이렇습니다. (작품 자체를 올리면 더 좋겠는데, 출처 사이트의 원본 화일이 삭제되어 구할 수가 없게 돼 스크립트만 올립니다)


화면: 히틀러 사진
히틀러: (독일어 연설)
내레이션: 우리 영토를 지키기 위해 새 방법을 마련했습니다.
내레이션: 나는 내가 전능하신 창조주의 뜻대로 행동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내레이션: 하나님은 내게 알 카에다를 치라고 말씀하셨고 난 그렇게 했습니다.

화면: 부시 사진
히틀러: (독일어 연설)
내레이션: 하나님은 내게 사담을 치라고 하셨고 그래서 그렇게 했습니다. (이상 내레이션은 모두 부시 연설문 중에서 발췌한 것임.)

내레이션: 많이 듣던 소리 아닙니까?
배경: 환호하는 독일 군중


부시 대통령의 이라크전 개전을 히틀러의 2차대전 개전에 비교하면서, 전쟁을 하나님의 뜻으로 합리화하는 것을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지요.

이에 대해 에드 길레스피(Ed Gillespie) 공화당 전국위원회 의장은 어떻게 감히 부시를 히틀러에 비교할 수 있느냐고 핏대를 올렸습니다. 보수언론 폭스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불평도 하고 또 별도로 성명서도 냈습니다. 그는 또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자들에게 그 광고 덕 볼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비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 <30초 속의 부시> 출품작 "Bush's Repair Shop"의 한 장면
ⓒ MoveOn.org
공화당이 총대를 메고 나서자 이번에는 유태인들과 보수언론이 나섰습니다.

전미 유태인 의회의 잭 로젠(Jack Rosen) 의장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낸 기고문에서 “무브온이 유태인 학살에 대한 일반인들의 기억을 이용해 정치 선전을 일삼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민주국가의 최고지도자를 살인적인 독재자 히틀러와 비교하는 것은 역사를 호도하는 것일 뿐 아니라 도덕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맹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컨테스트 주최측인 무브온의 반응은 생각보다 냉담합니다. 공화당 전국위원회의 성명에 대해서는 일단 반박 성명을 냈지만 기타 언론을 통한 비난에는 그다지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습니다.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1500여개에 달하는 출품작의 내용을 어떻게 주최측이 일일이 검토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 그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결과적으로 부시를 히틀러에 비교한 그 두 작품은 무브온 회원들로부터 그다지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해 본선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무브온과 행사 담당자들은 급기야 우익들이 뒤늦게 ‘부시-히틀러’ 광고를 문제삼는 저의를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째서 이제서야 문제를 제기하느냐고 반문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 <30초 속의 부시> 출품작 "Wake Up America"의 한 장면
ⓒ MoveOn.org
문제의 두 작품은 12월 내내 <30초 속의 부시> 홈페이지에 게재되어 있었지만 그때는 공화당이나 보수언론으로부터 아무런 반응도 없었습니다. 지난달 말로 공모기간이 끝나면서 결선 진출 작품 15개를 제외하고는 다른 1500개의 작품은 홈페이지에서 사라졌습니다. 따라서 1월1일부터는 문제의 두 작품이 전시조차 되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공화당과 유태인 단체와 보수언론은 1월4일이 되어서야 그 문제를 제기한 것이냐는 것이지요.

<부시아웃>이라는 이름의 인터넷 TV에 ‘루크(look)’라는 이름으로 실린 기고문은 이 의혹을 본격적으로 제기했습니다.

“이것만은 확실히 해 두자. 이건 분명히 우익 언론들과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무브온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위해 교묘하게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점 말이다. 문제의 광고들은 1월1일부터는 온라인에서 사라졌다.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그 광고를 1월4일까지 저장해 두었다가 컨테스트 결선 작품이 발표되기 직전, 호응이 높은 이 행사에 대한 바람을 빼기 위해 그걸 터뜨린 것이다. 그들이 무슨 말로 호도하든 넘어가지 말기 바란다.”

게다가 공화당 전국위원회와 유태인 의회의 발표문을 보면 거짓말과 사기의 냄새까지도 물씬 풍긴다는 지적입니다. 예컨대 1월 5일자 공화당 전국위원회 홈페이지에는 ‘부시-히틀러 광고는 하나가 아니라 두개였다’는 내용의 성명문이 발표됐습니다.

그러나 1월4일과 5일사이에 그런 '새로운 발견'은 불가능했다는 말입니다. 그 광고는 이미 주최측 홈페이지에서 1월1일부터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공화당 전국위원회는 친절하게도 그 광고의 스크립트까지 게재해 놓았습니다. 아마 미리 저장해 두었던 것이겠지요.

더구나 문제의 작품들이 무브온 회원들로부터도 낮은 점수를 받아 예산에서 탈락해 버렸는데도, 한 극우 언론인은 “부시를 히틀러에 비교한 광고가 15편의 결선작 중의 하나에 올랐다”고 왜곡까지 해 버렸습니다. 결국 그는 다음날 자기 실수를 사과하기는 했습니다만.

아무튼 무브온 측은 예정대로 오는 12일 뉴욕시 해머스타인 볼룸(Hammerstein Ballroom)에서 최고의 <30초 속의 부시> 작품을 발표할 계획입니다. 주최측은 온라인 투표를 통해 본선에 오른 15개 작품을 동행사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bushin30seconds.org)에 올려놓아 계속해서 일반 관람이 가능하도록 하는 한편, 20명의 전문가들을 심사위원으로 위촉해 엄격한 최종 심사를 실시 중입니다.

▲ <30초 속의 부시> 출품작 "What Are We Teaching Our Children?"의 한 장면
ⓒ MoveOn.org
심사위원 중에는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뒤 수상 연설을 통해 부시 대통령에게 “부끄러운 줄을 알아라(Shame on you)”고 일갈했던 영화제작자 마이클 무어와 한국인 2세로 미국 내 젊은층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코미디언 마가렛 조가 포함돼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12일 최고의 <30초 속의 부시> 작품이 선정되면 이 광고는 20일경부터 텔레비전 전파를 타게 되는데, 이는 그 즈음에 있을 부시 대통령이 상하 양원 합동 회의에서 연두교서를 발표하는 것과 때를 맞추기 위한 것입니다.

무브온은 1998년 클린턴 대통령 탄핵을 저지하기 위해 처음 결성된 그 이후 꾸준히 성장해 지금은 170만명의 온-오프라인 회원을 가진 막강한 시민운동 단체로 자리잡았습니다.

제대로 방향을 잡은 풀뿌리 시민단체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질 수 있는 지를 무브온이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미국내 극우 정치인과 언론들이 그 움직임을 주시하면서 꼬투리를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만 보아도 그걸 넉넉히 알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미 공화당 전국위원회가 발표한 ‘부시-히틀러’ 광고 관련 두번째 성명서>

MoveOn.org Should Apologize for Ads Comparing Bush to Hitler
Second Ad Posted on MoveOn.org Web site Also Compares Bush to Hitler 

Washington, DC-Republican National Committee Chairman Ed Gillespie today made the following statement regarding a second ad posted on the MoveOn.org Web site comparing President Bush to Adolf Hitler and calls from Jewish leaders for MoveOn.org to apologize for posting the ads. Scripts from both ads are included below. 
"Yesterday, MoveOn.org said an ad comparing President Bush to Adolf Hitler that it had posted on its Web site as one the group would consider selecting for $7 million worth of paid airtime was only one of hundreds submitted and that MoveOn.org tried to screen out ads in such poor taste. 
It now turns out that the ad was one of two submissions comparing President Bush to Hitler that the organization posted, further reflecting the group's view that this despicable tactic complied with its guidelines that submissions be: ‘really creative ads that will engage and enlighten viewers and help them understand the truth about George Bush. There are some legal limits on what you can do (see below), and we're not going to post anything that would be inappropriate for television, but other than that what you put in your ads is up to you (live action, animation, personal rant, whatever!)’(Source: http://www.bushin30seconds.org/rules.html) 
Such ads are anything but appropriate for television, and MoveOn.org should apologize for posting the ads, as the Simon Wiesenthal Center today asked them to. Further, every Democrat seeking his or her party's nomination and who stands to benefit politically from MoveOn.org's efforts to defeat President Bush in November though millions of dollars in advertising should support the Simon Wiesenthal Center's request, and urge MoveOn.org to apologize for posting these ads on their Web site and deeming them appropriate for television." 
Script 1:
GRAPHIC: Nazi Flags In A Parade
GRAPHIC: Hitler 
HITLER: (Speaking In German)
CHYRON: A NATION WARPED BY LIES
GRAPHIC: German Troops Marching 
GRAPHIC: Hitler In Car In Parade 
GRAPHIC: German Troops Marching 
CHYRON: LIES FUEL FEAR
GRAPHIC: German Tanks
CHYRON: FEAR FUELS AGGRESSION
GRAPHIC: German Artillery Firing
GRAPHIC: German Planes Dropping Bombs
GRAPHIC: German Tanks Firing
CHYRON: INVASION
GRAPHIC: German Tanks Rolling Down Street
CHYRON: OCCUPATION
GRAPHIC: Hitler With Hand Raised
BACKGROUND: Sig Heil! Sig Heil!
CHYRON: WHAT WERE WAR CRIMES IN 1945
GRAPHIC: President Bush With Hand Raised At Inauguration 
BACKGROUND: Sig Heil! Sig Heil!
CHYRON: IS FOREIGN POLICY IN 2003
CHYRON: SPONSORED BY MOVEON.ORG 

Script 2:
GRAPHIC: Pictures Of Hitler
HITLER: (Speaking In German)
CHYRON: We have taken new measures to protect our homeland, 
GRAPHIC: Pictures Of Hitler
HITLER: (Speaking In German)
CHYRON: I believe I am acting in accordance with the will of the Almighty Creator,
GRAPHIC: Pictures Of Hitler
HITLER: (Speaking In German)
CHYRON: God told me to strike at al-Qaida and I struck them,
GRAPHIC: Pictures of President Bush
HITLER: (Speaking In German)
CHYRON: and then He instructed me to strike at Saddam, which I did.
CHYRON: SOUND FAMILIAR?
BACKGROUND: Cheering German Crowd
(출처: http://www.rnc.org/Newsroom/Releases/Jan04/MoveOn2.htm)


<공화당 전국위원회 성명서에 대한 무브온의 반박성명>

FOR IMMEDIATE RELEASE 
Monday, Jan. 5, 2004
ADS ATTACKED BY RNC CHAIRMAN
ARE NOT MOVEON.ORG VOTER FUND ADS
MoveOn.org Voter Fund Regrets Screening Process Allowed Ads to Slip Through
Statement by Wes Boyd, Founder of MoveOn.org Voter Fund:
The Republican National Committee and its chairman have falsely accused MoveOn.org of sponsoring ads on its website which compare President Bush to Adolf Hitler. The claim is deliberately and maliciously misleading.
During December the MoveOn.org Voter Fund invited members of the public to submit ads that purported to tell the truth about the President and his policies. More than 1,500 submissions from ordinary Americans came in and were posted on a web site, bushin30seconds.org, for the public to review. 
None of these was our ad, nor did their appearance constitute endorsement or sponsorship by MoveOn.org Voter Fund. They will not appear on TV. We do not support the sentiment expressed in the two Hitler submissions. They were voted down by our members and the public, who reviewed the ads and submitted nearly 3 million critiques in the process of choosing the 15 finalist entries.
We agree that the two ads in question were in poor taste and deeply regret that they slipped through our screening process. In the future, if we publish or broadcast raw material, we will create a more effective filtering system.
Contrast this with the behavior of the RNC and its allies when supporters of President Bush used TV ads morphing the face of Sen. Max Cleland (D-GA) into that of Osama Bin Laden during the 2002 Senate race. 
MoveOn.org and the MoveOn.org Voter Fund exist to bring the public into the political process and produce a more fact-based election process. We regret that the RNC doesn’t seem to embrace the same goals.
(출처: http://moveonvoterfund.org/smear/release.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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