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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상미당'으로 시작, 1968년부터 '삼립식품'으로 우뚝 선 종합식품기업으로 'SPC그룹'(삼립-파리크라상-회사)이 있다. 그 이름만 보면 건설 시행사처럼 일시적 사업 수행 후 이름을 바꿔 다는 SPC(특수목적법인)와 혼동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SPC그룹의 SPC는 Samlip & Shany, Paris Croissant, Companies의 약자다. 회사는 이 SPC를 달리 풀어, A Superb company with Passionate and Creative people (열정인과 창의인이 뭉친 최고 회사)라 부르기도 했다. 상당히 창의적(!)인 해석이다.

전자공시시스템(DART)에 따르면 SPC그룹은 최근 3년(2021~2023)만 해도 매년 매출액 약 1조 5천억 내외, 순이익(이윤) 매년 400억 원 이상을 기록했다. 이런 성과를 올리는 데는 생산직 약 2천 명, 영업직 1천 명의 피, 땀, 눈물이 토대였다(2017년 9월, 노동부 근로감독 결과 불법파견 노동자가 5378명이었는데, 그 사이 인력이 40% 이상 줄었음. 그 배경은 다음을 보라).

그런데 이 SPC그룹의 허영인 회장(1986년 파리크라상 창립자)이 얼마 전(4월 21일), '인권 지킴이'를 자처하는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됐다. 허 회장이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소속 조합원들에게 노조 탈퇴를 지시·강요한 혐의다.

검찰은 노조 와해 사건이 SPC그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졌으며 허 회장이 범행 전반을 지시했다고 본다. 검찰은 이 사건에 연루된 SPC 전·현직 임직원과 노조 관계자 등 총 18명을 기소했다.

현행 노동법(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 81조)에 따르면 회사는 ①노조원 불이익 취급, ②불공정 고용계약, ③단체교섭 거부‧해태, ④노조 지배‧개입, ⑤노조 활동 보복‧징계 등 부당노동행위(unfair labor practices) 시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천만 원 이하의 벌금 등 형사 처벌을 받는다.

허 회장 주도의 노조 탈퇴 지시‧강요(2021년 2월부터 2022년 7월까지 민주노총 조합원 570여 명을 상대로), 그리고 허 회장 및 SPC 임직원 10명이 2021년 5월자 승진 인사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에게 인사 저평가로 불이익을 준 것, 또 2019년 7월경 민주노총계 지도부가 서자 이를 와해하고자 조합원들에게 급히 '어용노조'로 소속 변경 강요, 노조 운영에 개입한 것 등이 전형적 부당노동행위다.

피비파트너즈 설립 뒤에도 계속된 갈등
 
증여세를 회피하려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지난 2월 2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증여세를 회피하려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팔도록 지시한 혐의로 기소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지난 2월 2일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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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회사는 왜 이런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하게 되었나? 그 가까운 뿌리는 2017년으로 거슬러 오른다. 당시 파리바게뜨는 11개 협력업체를 통해 고용한 제빵기사 5378명을 각 매장에 배치했는데, '불법 파견'이라는 사회적 비판이 일고 당시 고용노동부도 이를 인정해 과태료 162억 원을 부과했다.

이에 SPC그룹이 '사회적 합의'를 통해 상황을 타개하려 했다. 그 내용은 불법 파견 관련 유감 표명, (불법 파견 아닌) 자회사를 통한 직접 고용, 본사 직원과 3년 내 동일임금 약속, 부당노동행위 시정 등이었다. 이 맥락에서 2018년 1월 11일, '피비(PB)파트너즈'라는 새 회사가 섰는데, SPC그룹과 양대 노조, 가맹점주, 국회, 시민단체 간 사회적 합의의 결과물이자, '친(親)노동'적 혁신 노력이었다.

그러나 '친노동'은 포장에 불과했고, '피비파트너즈' 설립 뒤에도 사회적 합의 관련 갈등이 계속됐고 오히려 부당노동행위가 벌어졌다. 즉, 과거의 불법파견 직원을 직고용하기 위해 자회사 피비파트너즈를 설립할 때(2018.1.) 함께 자회사로 넘어온 파견업체 관리자 전씨가 문제였다.

그는 회사를 대변하는 노조위원장을 맡은 뒤 민주노총 노조 파괴를 주도했다. 이에 분노한 노동자들이 단결해 2019년 7월, 민주노총 계열 지회장이 당선되자 허 회장, 정 전무 등의 노조 지배‧개입 행위가 일어났던 것! 그 방식도 고약하게 과거 불법파견업체 출신인 현 '피비파트너즈' 정 전무가 2017년에 설립했고 관리자 전씨가 위원장까지 하는 어용노조를 맞불 작전으로 내세워 조합원들에게 노조를 바꾸라고 강요한 것이다. 황재복 SPC 대표이사 역시 허 회장, 정 전무와 같은 혐의로 현재 구속-재판 중이다. 회사로서는 가히 '대재앙'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재앙이 닥치기 전에 회사가 어떻게 해야 옳았을까? 그건 말 그대로 '친노동' 내지 '노동존중' 경영, '정도(正道)' 경영이 답이었다. 돈이 들더라도 사람을 존중한다면 장기적으로 좋은 회사로 소문이 난다. 그러나 자본주의 기업은 사람이라는 변수를 존중하기보다 억압하려는 경향이 있다. 말로는 존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그게 모두 '돈'을 뜻하기에, 나아가 회사의 재량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비치기에, 경영자들이 아무리 외국 유학을 하거나 경영학 박사 학위를 가졌다 해도 정도(正道)를 걷지 못한다.

심지어 자본주의 경제는 무한 경쟁 상황이니 다른 회사가 더 가혹한 방식으로 경쟁력을 높이면 정도 경영 기업은 오히려 퇴출당하기 쉽다. 바로 이런 점들로 인해 기업들은 말이 좋아 인간존중, 노동존중이지 실제로는 경영독재를 하게 된다. 그래서 누군가 그랬다. "민주주의는 공장 문 앞에서 멈춘다!"

그러나 자본주의 기업이라서 어쩔 수 없다며 이 경영독재를 계속 눈감아 줄 수 있을까? 너도 나도 그런 식으로 치닫는다면, 10년 뒤 20년 뒤엔 모든 기업들에서 노예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그건 지구적 대재앙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헌법이나 노동법조차 '최소한의 조건들'은 준수하라며 강제한다. 앞서 말한 부당노동행위를 하지 말 것, 그리고 노동3권(단결권, 교섭권, 행동권)을 보장할 것과 같은 내용들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이 곧 경영'이요, '경영은 곧 사람'이다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회원들과 민주노총 전국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본사 앞에서 <반복되는 사망사고, 확인되는 조직적 노조파괴 SPC그룹 허영인 회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SPC 계열사에서의 조직적 노조파괴와 반복되는 중대재해의 중심에 허영인 회장이 있다는 의혹이 있다며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 노조파괴와 중대재해 의혹 SPC그룹 회장 규탄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회원들과 민주노총 전국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본사 앞에서 <반복되는 사망사고, 확인되는 조직적 노조파괴 SPC그룹 허영인 회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SPC 계열사에서의 조직적 노조파괴와 반복되는 중대재해의 중심에 허영인 회장이 있다는 의혹이 있다며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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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살이를 하면서 재판을 받아야 하는 SPC 임원진들은 지금쯤 양가감정에 시달릴지 모른다. 하나는 '이렇게 될 밖에야 돈을 좀 덜 벌더라도 인간존중 경영을 하면서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걸' 하는 회한이다. 다른 하나는 '내가 나가기만 하면 이 괘씸한 자들을 더 가혹하게 혼쭐내고야 말 것'이라는 원한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노동자들이 일을 하지 않으면, 그것도 성심성의껏 일하지 않으면, 아무리 많은 돈을 투자하고 아무리 좋은 기술과 경영법을 도입해도 과연 이윤(잉여가치)이 생길까? 자연과 사물은 결코 혼자서 돈을 만들지 못한다. 피터 드러커나 제프리 페퍼 교수의 말을 인용하지 않더라도, '사람이 곧 경영'이요, '경영은 곧 사람'이다. 진정 자기 기업을 사랑한다면 자기 노동자들부터 사랑하라.

충북 청주의 우진교통(주)처럼 노동자들이 즐겁게 일하고 행복하게 산다는 느낌을 가질 때 출근길이 신바람 나지 않을까? 바로 그 신바람이 결국은 회사에 이윤(잉여가치)을 갖다 준다. 그 덕분에 임원진도, 주주들도 큰 소득을 얻는다. 이 단순한 원리를 왜 인정하지 못하는가?

역사적으로도 노동자를 존중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옛말에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 났냐?'라 했다. 달리 말해, 신석기 시대부터 농사를 지으면서 시작된 현 인류의 역사만 압축해서 보더라도 약 1만 년인데, 이 1만 년 중 세계자본주의 시대는 불과 500년, 한국은 100년도 되지 않는다. 약 50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농어촌 어른들은 두레, 품앗이, 이웃사촌, 마을공동체 개념으로 살았다. 비(非)자본주의적으로 살았다는 얘기다. 즉, 1만 년 역사에서 95% 이상은 비(非)자본주의, 단지 5%만이 자본주의 역사라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자본주의 아니어도 사는데, 자본주의는 사람(노동자, 소비자) 없으면 살지 못한다. 이 단순한 진리를 알고 나면 어느 기업도 결코 사람을 '함부로' 대할 순 없다.

더 중요한 점은 인간 노동만이 이윤(잉여가치) 창출의 원천이란 점이다. 물론 상품 가치를 형성하는 데는 자연의 가치(기계 및 원료의 가치)와 노동력의 가치가 다 들어간다. 그러나 아직 가치가 없던 자연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도, 또 원래 노동력 상품에 투입된 가치(임금)보다 더 많은 가치(잉여가치)를 불려주는 것도 인간 노동의 힘이 아니던가? 기계조차 사람의 힘이 없다면 만들어지지도 가동되지도 않는다. 만일 모든 공장이 완전 자동화가 된다면 그리하여 노동자도 없고 소비자도 없다면, 과연 기업가는 어디서 이윤을 얻을 것인가?

진실을 알수록 무섭다. 사실, 자본주의는 무한 이윤을 추구하면서도 (알게, 모르게) 그 토대인 자연 생태계와 인간 노동력이 가진 생명력을 무한 파괴한다. 자원 고갈, 기후위기, 자연 오염, 쓰레기 대란 등 생태계 상 한계는 갈수록 뚜렷하게 다가온다. '6차 대멸종'도 남의 일이 아니다.

더 중요한 건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회원들과 민주노총 전국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본사 앞에서 <반복되는 사망사고, 확인되는 조직적 노조파괴 SPC그룹 허영인 회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SPC 계열사에서의 조직적 노조파괴와 반복되는 중대재해의 중심에 허영인 회장이 있다는 의혹이 있다며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 노조파괴와 중대재해 의혹 SPC그룹 회장 규탄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회원들과 민주노총 전국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이 1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본사 앞에서 <반복되는 사망사고, 확인되는 조직적 노조파괴 SPC그룹 허영인 회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SPC 계열사에서의 조직적 노조파괴와 반복되는 중대재해의 중심에 허영인 회장이 있다는 의혹이 있다며 규탄 발언을 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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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각 기업들이 경쟁력 향상을 위해 신기술 도입 등 경영혁신을 가속화할수록 단위 상품 속에 들어가는 인간 노동의 양은 줄어든다. 적은 노동량으로 더 많은 상품을 생산하는 것, 이것이 '생산성 향상'이다. 그래서 만일 생산성이 10배 오른다면 역설적으로 단위 상품 하나에는 인간 노동량이 1/10밖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니 단위 상품의 가치 역시 줄어들고(상품의 가치는 투입되는 평균 노동량이다!), 이에 비례해 이윤(잉여가치) 역시 줄어든다.

경쟁력을 올릴수록 단위 상품의 잉여가치가 줄어드는 역설, 바로 이것이야말로 자본주의가 영원히 해결할 수 없는, 운명적 딜레마다. 물론, 이는 장기적 경향성, 본질적 모순성을 지적한다. 당장 위기에 봉착해 멸망한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오늘날 자본주의가 그 끝 지점에 근접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다. 우리가 살아 있는 동안이라도 최대한 사람을 존중하고 자연을 경외하며 살아야 한다. 노조를 존중하고 열린 소통을 강화하며 각 개별 직원의 고충에 귀 기울이면 된다. 요컨대, '존경신'(존중, 경청, 신뢰)이 정도(正道) 경영의 핵심이다. 회사가 '존경신'으로 정도 경영을 하면 직원들은 감동으로 일할 것이다. 앞의 우진교통(주)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그리 되면 SPC가 소망하는 바, "열정인과 창의인 뭉친 최고 회사" 역시 저절로 이뤄질 것이다.

이런 눈으로 앞의 부당노동행위 문제를 되돌아보면, '어리석음의 극치' 내지 '근시안의 대가'는 참혹하다. 돈벌이에 눈이 멀어 자유(自由)를 잃는다면 그 무슨 소용인가? 이는 비단 SPC그룹만의 얘기가 아니다. 삼성전자 등 전국의 모든 기업, 나아가 모든 자본주의 기업에 해당하는 얘기다.

당장은 부당노동행위 등과 관련, 법적 판단과 그에 상응하는 책임이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다. 이 눈을 제대로 바꾸지 않으면, 설사 '억만장자' 내지 '세계 일급 부자'가 된다 한들 진심으로 사람답게, 행복하게 살긴 어려울 것이다. 그것도 대(代)를 이어 가며 말이다. '부의 의미'와 '시스템 전환'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절박한 시간이다. 열정, 창의, 혁신은 그런 성찰이 있어야 그 위에서 비로소 빛이 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고려대 융합경영학부 명예교수입니다. 이 기사는 대전충청인권연대에서 발간하는 소식지에도 게재됩니다.


태그:#SPC, #부당노동행위, #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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