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4.21 11:39최종 업데이트 24.04.21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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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섬 모래톱, 해가 질 무렵 민물가마우지들이 해를 바라보고 서 있는 풍경. ⓒ 성낙선


한강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새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지난 2월 말에는 한강 수면 위를 새카맣게 뒤덮은 물새들을 보았다. 겨울철새인 흰죽지, 물닭 등이 재갈매기들과 한데 어울려 노닐고 있었는데, 한강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그렇게 많은 새 떼는 그때 처음 보았다.

어디서 한꺼번에 그 많은 새들이 한강으로 날아들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이라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다. 그지없이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그 새들이 잔잔한 수면을 박차고 날아올라 푸른 하늘 위를 떼지어 날아가는 광경도 장관이었다.


한강에서는 요즘 어딜 가든 돗자리를 깔고 앉아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한강을 북적이게 만드는 게 비단 사람들뿐만은 아니었다. 한강이 온갖 동새들이 깃들어 살아가는 생명의 터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런데 세상 참 얄궂다. 철새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사가 허공중을 부유하는 먼지만큼이나 가볍다. 어떻게 보면, 참 간사하기 짝이 없다. 언제는 한강에서 새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한탄을 하더니, 이제는 새들이 너무 많아 골치라는 소리들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한강 수면을 뒤덮은 철새들. ⓒ 성낙선

 
한강으로 날아드는 철새들

한강은 한때 '죽음의 강'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서울 시민들이 날마다 쏟아내는 생활하수로 한강이 심하게 오염됐다. 1960년대 말부터 시작된 한강 개발도 한강을 생물이 살기 힘든 곳으로 만드는 데 크게 일조했다. 모래사장과 습지가 사라진 곳에서 심한 악취가 풍겼다.

강물 속이 한치 앞이 바라다보이지 않을 정도로 혼탁해졌다. 산소가 부족한 강에서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던 물고기들이 흰 배를 드러낸 채 검은 수면 위를 둥둥 떠다녔다. 그랬던 강이 언제부턴가 다시 여러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공간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한강의 수질이 좋아지기 시작한 게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도 한강을 그렇게 깨끗한 강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래도 예전에 비하면 상당히 양호한 상태로 변했다고 할 수 있다. 한강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이 떠다니며 연신 자맥질을 하는 철새들이 그런 사실을 말없이 입증한다.
 

한강 위를 떼지어 날아가는 민물가마우지들. ⓒ 성낙선


한강의 생태 환경에 일정한 변화가 생기면서 늘기 시작한 철새들 중에 하나가 '민물가마우지'다. 10여 년 사이에 그 수가 엄청나게 불어난 것으로 보인다. 민물가마우지는 한국에서 겨울을 나는 대표적인 겨울철새 중의 하나로, 원래 서식지는 연해주나 사할린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민물가마우지가 계속 늘고 있어,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민물가마우지들이 늘어나는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우선 기후변화가 한몫했다. 기후가 변하면서, 철새들이 굳이 위험천만한 장거리 이동을 감수하면서 원래의 서식지를 고집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 와중에 철새인 민물가마우지가 텃새로 변하는 게 가장 큰 문제다. 한국에서는 특히 먹이가 풍부하고 독수리 같은 천적을 찾아보기 힘든 점이 텃새가 되기 좋은 조건으로 작용했다. 그 결과, 지금은 한강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를 가든 민물가마우지를 볼 수 있게 됐다.

한강에서는 서강대교가 가로질러 지나가는 밤섬이 민물가마우지들이 모여 사는 대표적인 서식지 중에 하나로 꼽힌다. 한때는 구경조차 힘들었던 철새를 이제는 가까운 한강에만 가도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게 됐으니, 박수라도 칠 법한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밤섬, 민물가마우지 배설물로 하얗게 변한 나무들. ⓒ 성낙선

밤섬, 백화현상을 보이고 있는 나무들. 그 위에 민물가마우지들이 앉아 있다. ⓒ 성낙선


'유해야생동물' 낙인을 찍다

지난해 말, 환경부가 민물가마우지를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환경부가 끝내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민물가마우지가 사람들과 기존 생태계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같은 결정은 그다지 합리적이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민물가마우지는 강이나 호숫가, 습지 근처의 나무 위에 둥지를 짓는다. 그러면서 나무 위에 배설을 하게 되는데, 그때 배설물로 뒤덮인 나무가 죽을 수도 있다. 사람들은 그걸 '백화현상'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민물가마우지를 제거할 명분이 분명치 않다.

사실은 민물가마우지가 가진 남다른 식성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민물가마우지들이 너무 많은 양의 물고기를 잡아먹는 바람에, 어부들이 막심한 손해를 입고 있다는 주장이다. 그런데 그로 인해, 어부들에게 실제 어느 만큼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밤섬 모래톱에 까맣게 내려앉은 민물가마우지들. ⓒ 성낙선


민물가마우지들로서는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다. 그게 다 저들도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고, 새끼 낳아 기를 생각으로 하는 단순한 생태적 활동일 뿐인데 말이다. 특정 야생동물에 '유해' 딱지가 붙으면, 그때부터는 그 동물들의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생존을 위협받는다.

동물들에게 그게 어느 정도로 위급한 사건이냐면, 추운 북쪽나라에서 따듯한 남쪽나라로 귀순한 사람에게 '그가 남쪽 나라 생활 방식에 익숙하지 않고, 달리 하는 일 없이 그저 남쪽나라 식량을 축낸다'는 이유로 그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여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과 같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안정적인 생태계 운운하는 사람들의 과거 행적도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 사람들은 이미 한강은 말할 것도 없고, 4대강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강가 습지를 대대적으로 파괴한 전력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과연 우리 생태계를 걱정해 옳은 판단을 내렸을까?

급기야 지난 4월 초, 일부 지자체에서 엽사들을 동원해 민물가마우지를 총기로 쏴서 잡아들이는 일을 시작했다. 물론, 한강에서까지 엽총으로 민물가마우지들을 사냥하는 장면을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많은 도심이나 관광지에서까지 총을 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법에 따라 민물가마우지를 포획하는 일이 가능해진 이상, 한강에 사는 민물가마우지들 또한 어떤 식으로든 개체 수를 줄여야 한다는 압박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민물가마우지들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민물가마우지들의 앞날이 불투명하다.
 

밤섬, 찰랑이는 얕은 강물 속에 발을 담그고 서 있는 철새들. ⓒ 성낙선


철새들은 아무 잘못이 없다

사람들은 이미 민물가마우지를 '소리 없이' 잡아들이는 방법들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방식대로 둥지를 제거하거나 포획 틀을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민물가마우지의 생태를 연구하는 등 개체수 조절을 위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제거 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 과연 민물가마우지가 사람에게 끼치는 '해악'을 제거하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수를 제거해야, 민물가마우지가 더 이상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착한 동물'이 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사실은 그 모든 게 다 주먹구구다.

단지 민물가마우지를 제거한다고 해서 그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본래는 이 모든 게 지구 생태계가 정상이 아닌 데서 비롯됐다. 그리고 지구 생태계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범인은 따로 있다. 그 범인이 적어도 민물가마우지는 아니다. 민물가마우지는 억울하다.

애초, 특정 동물을 유해야생동물로 지정하는 기준 자체가 참으로 애매하다. 그 동물을 유해야생동물에서 벗어나게 하는 기준은 더 더욱 애매하다. 그런 기준이 있다고 해도, 그게 가능한지도 알 수 없다. 한 번 딱지를 붙인 동물에게서 그 딱지를 뗀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한강, 한겨울 깨진 얼음 사이를 떠다니며 먹이를 찾는 철새들. ⓒ 성낙선

철새들이 강가에 모여서 깃털을 다듬고 있다. 물닭, 흰죽지 등이 보인다. ⓒ 성낙선

  
그동안 한국에서 평화롭게 살아가던 민물가마우지들에게 난데없는 시련의 세월이 시작됐다. 그 시련이 언제쯤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지금은 다만 그 시기가 민물가마우지들이 유해야생동물에서 '멸종위기동물'로 분류되는 시점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최근에는 물닭 같은 철새들도 텃새로 변해간다는 소식이다. 이런 경우가 민물가마우지나 물닭에서 그치지 않는다. 철새들이 집단으로 푸대접을 받을 날이 머지않았다. 이러다 한강이 이러저러한 철새들의 도래지가 아니라, 그 철새들의 사냥터로 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우리가 한강에서 찾아볼 수 있는 철새로는 민물가마우지와 물닭을 비롯해 흰죽지, 재갈매기, 청둥오리 등 수십 종이 있다. 그중에는 흰꼬리수리, 큰기러기 같은 멸종위기종도 있다. 철새가 더 이상 철새가 아닌 세상에, 다함께 평화롭게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강물 위를 유유히 헤엄치는 물닭 한 마리.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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