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6.24 16:29최종 업데이트 23.10.06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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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항 여객선터미널을 떠나 한산도로 향하는 배 위에서. ⓒ 성낙선


통영종합여객선터미널. 13일 오전 9시 30분. 한산도행 배와 욕지도-연화도행 배가 나란히 육지를 떠난다. 이 시간에 한산도행 배에 탄 사람들은 대략 50명. 그에 반해 욕지도-연화도행 배에 탄 사람들은 대략 100명이 넘는다. 한산도행 배에는 관광객보다는 지역 주민들이 더 많이 탄 것으로 보인다. 욕지도-연화도행 배에 올라탄 승객들은 대부분 등산복 차림의 관광객들이다.

두 배에 탄 사람들의 구성이 극한 대비를 이룬다. 그러니까 한산도는 이 시기 욕지도나 연화도에 비해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섬은 아닌 것이다. 배가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 위를 미끄러지듯이 지나갈 때, 사람들 역시 각자 객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객실 마룻바닥에 누워서 조용히 시간을 보낸다. 갑판에 나가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은 드물다.

이날 아침, 한산도행 배 위에서 배를 타는 사람들의 흥분 같은 건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덩달아 이날 처음 한산도 여행에 나선 나까지 마음이 차분해진다. 이날 배에 오른 사람 중 자전거를 가지고 온 사람은 나 혼자다. 오늘 한산도 자전거여행은 평소보다 더 외로운 싸움이 될 것 같다. 잠시 후, 배가 한산도 제승당여객선터미널 부두에 닿는다. 통영에서 한산도까지 배로 약 30분 정도 걸린다.
 

한산도로 향하는 배. ⓒ 성낙선

 

제승당을 오가는 길. ⓒ 성낙선

 
제승당에서 시작하는 한산도 여행

한산도 여행은 '제승당'에서 시작된다. 자전거 여행자도 자동차 여행자도 예외는 없다. 배에서 내리면 오른쪽으로 바로 이충무공유적지 입구가 보인다. 그 안으로 바닷가를 따라서 제승당 가는 길이 나온다. 제승당은 겉보기엔 다른 유적지에서 보는 옛 건물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이 건물이 지닌 역사성은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제승당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을 지휘하던 건물이다. 제승당의 원래 이름은 '운주당'이다. 이순신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한 그해 7월 한산도 앞바다에서 '한산대첩'을 치렀다. 이듬해인 1593년 전라좌수영을 여수에서 한산도로 옮기고, 그해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면서 이곳에 집무실 겸 작전지휘 본부인 운주당을 짓고 삼도수군통제영을 설치했다.

이순신 장군은 이곳에서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던 전략을 짰다. 이순신 장군이 난중일기를 쓴 곳도 이곳이다. 하지만 1597년 원균이 지휘한 칠천량해전에서 조선수군이 대패하면서 운주당도 폐허가 되었다. 그 후 1739년에 건물을 중건하면서 명칭을 '제승당'으로 바꿨다. 지금 우리가 보는 건물은 1930년대에 중수한 것이다. 운주는 '지혜로 계책을 세운다'는 뜻을, 제승은 '제압하여 승리를 이끈다'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한산도 충무공유적지 내 제승당 건물. ⓒ 성낙선

 

제승당 내부. 정면에 한산대첩도가 걸려 있다. ⓒ 성낙선


'수루'를 눈앞에 두고 보는 감회

제승당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수루'가 눈에 들어온다. 이 수루가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홀로 앉아..."로 시작하는 시조 속에 등장하는 그 수루다. 물론 현재의 수루는 옛 문헌에 근거해 새로 지은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학창 시절 누구나 외워야 했던 시 한 수가 이곳에서 탄생했다. 그 시에 이순신 장군의 복잡한 심경과 수루를 둘러싼 주변 정경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다.

그래서인지 그 시를 읊을 때마다, 내 평생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수루가 머릿속에 그림처럼 떠오르곤 했다. 오늘 제승당 옆에서 한시 속에서만 보던 그 수루를 눈앞에 두고 보는데 머릿속에 그려지던 그 풍경 그대로다. 마침 수루에 아무도 없다. 수루에 올라서서 한산도 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본다. 가슴이 뭉클하다. 진작에 와 봤어야 했다. 장군의 얼굴을 보기가 부끄럽다.
 

한산도 충무공유적지 내 수루.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이같은 수루에서 적의 동태를 파악했다. ⓒ 성낙선

 

수루에서 바라다본 한산도 앞바다. ⓒ 성낙선

 
제승당으로 들어가는 길이 보기 드물게 아름답다. 바닷가 호젓한 길가에 '아왜나무'가 죽 늘어서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와 남부도서에 자생하는 나무라고 한다. 아왜나무의 활짝 핀 하얀 꽃 무더기가 육지와는 다른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이곳 유적지에서도 안팎으로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안에서는 장애인들의 자유로운 출입을 돕기 위해 돌계단 옆으로 나무 데크를 깔고 있다.
 

한산도 제승당 가는 길, 하얗게 꽃이 핀 아왜나무. ⓒ 성낙선

 
처음부터 언덕길... 섬은 '산'이다

제승당에서 나와 본격적으로 자전거여행을 시작한다. 선착장에서 보면 제승당 반대편으로 아스팔트 길이 보인다. 그런데 비탈길이다. 처음부터 경사가 진 길을 오르는데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전해진다. 섬에서 자전거를 타려고 했을 때 이미 각오를 했지만, 다리 근육이 채 풀리기도 전에 이건 좀 아니다 싶다. 그나마 경사가 그렇게 급한 편은 아니어서, 끝까지 페달을 밟고 오른다.
 

언덕길 위에 올라 멀리 내려다 보는 바다. ⓒ 성낙선


섬은 바다로 둘러싸인 '산'이다. 평지는 찾아보기 힘들다. 길도 해안가를 떠나면 산길이 대부분이고, 해안도로라고 해도 해안가 절벽 위로 오르내리는 경우가 태반이다. 한산도라고 다를 게 없다. 그래도 이 섬에 자전거를 타러 오는 사람들이 꽤 있는 모양이다. 도로 곳곳에, '자전거를 위해 서행을 하라'는 교통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걸 볼 수 있다.

섬 안에 차들이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다. 그래도 도로가 휘어져 도는 구간이 많아, 무작정 속도를 내다 보면 사고가 날 가능성이 없지 않다. 어쨌든 도로는 한적한 편이다. 자전거를 타는 데 언덕이 많은 게 단점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달리 보면 도로 위를 마음 놓고 달릴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아마도 이 맛에 사람들이 한산도까지 자전거를 타러 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넘어가거나... 피해 가거나

한산도에서 자전거를 타는 방식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중에 언덕을 오르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매우 강한 근력과 인내력을 소유한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라면, 섬 북쪽에 있는 '관암항'과 '문어포항'까지 가 볼 것을 권한다. 특히 관암항 들어가는 언덕길이 상당히 높고 긴 편이다. 보통 사람들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 길이다.
 

한산도 문어포항. ⓒ 성낙선

 
섬 중앙을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로질러 넘어가는 길도 매우 가파르다. 업힐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매력적인 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웬만하면 언덕은 피했으면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의 경우엔 앞서 언급한 지역은 그냥 지나치는 게 좋다. 이때는 제승당에서부터 진두항까지 그냥 직행하면 된다. 옆길로 새면 안 된다. 이 길은 2차선 도로로 한산도 내 주도로다.

한산도에서 자전거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주로 이 길을 이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언덕이라고 해도 대체로 낮은 편에 속해서 편안한 마음으로 자전거여행을 즐길 수 있다. 길이는 약 8km다. 진두항까지 갔으면 폐교인 한산초등학교 쪽으로 나 있는 해안도로를 달려 본다. 이 길은 한산도에서도 보기 드문 평지 길이다. 길이는 짧지만, 간만에 해안선을 따라서 달리는 맛이 어떤 것인지를 느끼게 해 준다.
 

진두항, 보름달 조형물. ⓒ 성낙선

 

한산도 해안도로. 멀리 한산도와 추봉도를 잇는 다리가 보인다. ⓒ 성낙선


섬 전체가 소중한 우리 역사

한산도에 와서 알게 된 사실인데, 마을마다 모두 임진왜란과 관련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마을 입구에 세워진 역사 안내판에서 간략하게 그 내용을 읽을 수 있다. 안내판에 임진왜란 당시 마을과 마을 주민들이 맡았던 역할과 그 당시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적혀 있다. 거기에 적힌 역사들이 꽤 흥미를 불러일으킨다.
 

한산도 마을 역사 안내판. ⓒ 성낙선


'여차마을'은 '각종 전선에 필요한 노를 제작 공급'하던 곳이다. '의항마을'과 '문어포마을'에서는 '한산대첩에서 대패한 왜군의 잔적들'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하포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보급창'이 있던 곳이며, '의암마을'은 '피복창'이 있던 곳이다. 모두 섬 주민들이 이순신 장군과 함께 왜적에 대항해 싸운 흔적들이다. 그런데 그 안내판 문구들만으로는 그 내용을 잘 알기 어렵다.

한글로 적었는데 한글을 이해하기 힘든 대목도 있다. 기왕에 마을의 역사를 알려 줄 거면 그 내용을 좀 더 쉽고 자세하게 적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마을의 역사를 시청각 자료로 만들어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산도를 돌면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마을의 역사를 찾아서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훌륭한 여행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한산도에서 바라본 한려수도 국립 해상공원. ⓒ 성낙선

 
한려수도해상공원 관광은 덤

한산도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가 봐야 할 섬이다. 해안선 곳곳에서 그림 같은 풍경을 찾아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관광객들이 욕지도나 연화도 같은 섬으로만 몰려가는 걸 이해하기 어렵다. 한산도로 이순신 장군을 만나러 가는 것만으로도 값진 여행이 될 수 있다. 그 여행길에 한려수도해상공원을 둘러보는 건 덤이다.

한산도를 여행할 때, 주의할 점이 몇 가지 있다. 배를 탈 때는 신분증이 필요하다. 신분증을 제시해야 표를 끊을 수 있다. 배가 떠나기 20분 전부터 승선이 시작된다. 어디든 혼자서 여행을 할 때는 식사를 하는 데 곤란을 겪는다. 섬 안에서는 그런 경향이 더 심하다. 한산도에서는 특이하게도 출입문에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혼자 오는 손님의 주문을 받지 않는다'는 문구를 내건 음식점도 있다.

한산도의 경우 음식점이나 편의점이 섬 남쪽 진두항 근처에 몰려 있다. 그곳에 면사무소가 있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는 음식점이나 편의점을 찾는 것 자체가 힘들다. 필요한 물건은 미리 챙겨가는 게 좋다. 날이 더워지면서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진다. 생수는 필수다. 땀을 심하게 흘리다 보면, 땀에서 소금기가 사라지는 게 느껴진다. 이런 때를 대비해 소금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한산도 바닷가 풍경. ⓒ 성낙선

 

한산도 바닷가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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