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9.24 11:35최종 업데이트 23.09.24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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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납나들목(송파구), 천장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특이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 성낙선


강변 진출입로로 사용되는 한강 나들목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한강 나들목은 대개 한강의 제방 위를 지나가는 도로 밑으로 구멍을 내서, 자동차나 사람들이 한강 둔치를 드나들 수 있게 만든 시설이다. 예전에는 이 시설의 내부가 무척 비좁고 어두워, '길'이라기보다는 '동굴'에 더 가까웠다. 그래서 '토끼굴'이라고 불렀다.

십여 년 전만 해도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사이에 토끼굴의 위치를 공유하는 일이 잦았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으로 진입하려면, 지천을 타고 내려가거나 한강 제방을 가로지르는 토끼굴을 이용해야 하는데, 토끼굴의 위치를 잘 몰라 헤매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위치를 알려줘도 토끼굴을 못 찾아 헤매는 일이 잦았다.
 

현석나들목(마포구), 예전 토끼굴의 모습이 언뜻 보인다. ⓒ 성낙선


요즘처럼 안내판이 허다하게 널려 있는 시절도 아니고, 토끼굴 같은 작은 구멍이 금세 눈에 띄는 구조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 앞을 그냥 지나쳐 가기 일쑤였다. 토끼굴 개수도 몇 개 안 돼, 손에 꼽을 정도였다. 토끼굴의 위치를 알아두는 게 그만큼 중요했다.

이제는 그럴 일이 별로 없다. 어느 시점에서부터, 토끼굴이라는 이름 대신 나들목이라는 명칭을 쓰기 시작하고, 갑자기 그 수를 늘려 나가더니 이제는 그 숫자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한강에서 개벽을 하는 일을 종종 보곤 하는데, 나들목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던 거다.
 

압구정나들목(강남구), 그라피티로 장식된 내부 벽면과 출구 쪽으로 보이는 한강. ⓒ 성낙선

 
나들목, 토끼굴의 화려한 변신

요즘 나들목은 토끼굴 이미지를 완전히 벗어났다. 한강 나들목 중에는 강변도로 위를 하늘다리 형태로 가로질러 지나가는 것도 많다. 무엇보다 형태면에서 더 이상 토끼굴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어렵게 됐다.

뿐만 아니라, 나들목의 기능면에서도 상당한 변화를 볼 수 있다. 예전에 토끼굴의 기능이 단순히 한강둔치를 드나드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면, 지금의 나들목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는 데 필요한 시설을 제공하려는 목적이 더 커 보인다. 
 

토정나들목(마포구), 나들목을 빠져 나가기 직전의 풍경. 앞에 여의도가 보인다. ⓒ 성낙선


그런 연유로, 한강 나들목은 일반도로에서 보는 것과는 달리 자동차보다 사람들이 더 많이 이용하는 시설로 변모했다. 그리고 형태와 기능 면에서만 변화가 있었던 게 아니다. 우리가 한강 나들목에서 발견하는 변화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나들목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미적인 측면도 중요시하게 됐다. 그 결과 예전 토끼굴처럼 '굴'이나 '구멍'이 줄 수 있는 삭막하고 답답한 분위기도 많이 사라졌다. 토끼굴은 비좁고 어두운 동굴을 연상시킨다.
 

염창나들목(강서구), 반사경에 비친 나들목 전경과 자전거도로. ⓒ 성낙선

  
현재 한강 나들목에서 그런 분위기는 느끼기 힘들다. 이제 나들목을 보고 토끼굴을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최근에 새로 만들어지는 나들목들은 훨씬 더 세련된 모습이다. 넓고 밝은 분위기에 깨끗하고 산뜻한 이미지를 더했다.

개중엔 엘리베이터 같은 시설을 갖춘 곳도 있다. 그런 새뜻한 나들목들을 보게 되면, 나들목이 입구에서부터 마치 사람들에게 '어서 오세요, 당신을 나들목의 세계로 초대합니다'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염창나들목(강서구), 어둠이 내려앉고 가로등이 켜졌다. 최근에 리모델링을 마쳤지만,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다. ⓒ 성낙선

 

염창나들목(강서구)에서 바라본 밤풍경. 멀리 조명이 켜진 월드컵대교가 보인다. ⓒ 성낙선


나들목이 보여주는 다양한 세계

그런 점에서 보면, 한강 나들목은 확실히 도로에서 흔히 보는 인터체인지(IC)와는 많이 다르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강 나들목은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넘어가는 관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길'이 아니라 '문'의 역할을 수행한다.

한강 나들목을 통과하는 순간, 우리는 뒤에 두고 온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계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그 순간 누군가는 땅의 세계에서 물의 세계로, 누군가는 수직의 세계에서 수평의 세계로, 또 다른 누군가는 자동차의 세계에서 자전거의 세계로 이동하는 놀라운 체험을 하게 된다. 
 

망원나들목(마포구), 망원한강공원으로 연결된다. ⓒ 성낙선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나들목 중에 망원나들목, 반포나들목, 뚝섬나들목 등이 있다. 망원나들목은 망원한강공원으로 들어가는 관문에 해당한다. 이곳에서 맞이하게 되는 풍경이 마포구를 대표하는 풍경 중에 하나로 꼽힌다. 망원시장과 멀지 않고 주변에 카페와 음식점이 많아 식도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명성이 높기로는 반포나들목, 뚝섬나들목 등도 망원나들목 못지않다. 이들 나들목은 유원지로 통하는 입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말이 되면, 나들목으로 소풍을 나온 젊은 연인들이 구름처럼 몰려든다.
 

압구정나들목(강남구), 벽면이 온통 그라피티로 장식돼 있다. ⓒ 성낙선

 

압구정나들목(강남구)에서 바라보는 한강 풍경. 강물이 노을에 물들어가고 있다. ⓒ 성낙선


염창나들목, 풍납나들목 등은 최근 새단장을 마쳤다. 현대적인 디자인을 도입해, 기존의 나들목들과는 상당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들 나들목들을 보면, 앞으로 한강변에 새로 개설되는 나들목들이 어떤 방향으로 가게 될지 짐작할 수 있다.

압구정나들목은 나들목 벽면을 가득 채운 그라피티로 유명하다. 압구정나들목은 길고 어두운 '터널'이다. 그런 칙칙한 분위기를 그라피티를 이용해 화려하게 뒤바꿔 놓았다. 그 외에도 수많은 나들목들이 다양한 변화를 꾀하고 있다.
 

염강나들목(강서구), 경사를 내려가 나들목을 드나들 수 있게 했다. ⓒ 성낙선

 

염강나들목(강서구), 나들목을 빠져나오면 바로 한강이 나온다. 강 건너로 노을공원과 하늘공원이 보인다. ⓒ 성낙선


인터체인지를 순화한 말, 나들목

'나들목'은 원래 평면상 서로 교차하는 도로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차량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만든 시설을 말한다. 자동차들이 신호대기 없이 지나다닐 수 있게 하고, 교차로에서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줄이는 게 주기능이다. 인터체인지라는 외국말을 우리말로 순화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도로 표지판 등에는 인터체인지의 약자인 'IC'를 그대로 표기하고 있다. 인터체인지를 나들목으로 순화해 사용한다면서, 표기는 IC로 하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도로표지판에는 영어 약자를 쓰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망원나들목(마포구) 내부, 벽면을 이용해 미디어아트를 전시하고 있다. ⓒ 성낙선


그런 이유로 도로 위에서는 여전히 나들목이라는 용어를 찾아보기 쉽지 않다. 이런 식이면 나들목이라는 단어는 금방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들목은 그렇게 쉽게 사라질 운명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인터체인지를 대체할 용어로 만들어져서, 이제는 한강의 강변 진출입로를 지칭하는 용어로 더 많이 사용되고 있다. 도로에서 홀대받던 우리말 '나들목'이 한강에 와서 그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고 있다.

한강사업본부는 앞으로 한강변 나들목의 수를 계속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그 나들목들이 한강에 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궁금하다. 주의할 점 하나. 나들목을 빠져나가면, 바로 일반도로나 자전거도로와 마주칠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까 나들목 안에서는 뛰거나 자전거를 타면 안 된다.
 

망원나들목을 빠져나오면 볼 수 있는 망원한강공원 강변 풍경.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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