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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곡의 어머니 묘지
 전곡의 어머니 묘지
ⓒ 이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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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청명과 한식이 지나고 이후엔 어머니 산소 제초작업과 나무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이 시기를 놓치면 잡초가 무성해지고 나무들이 웃자라 추석 전에 하는 벌초가 애를 먹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업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항암치료차 일주일에 한 번 병원에 가야 하고 체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일하려면 작업시간을 포함해 오가는데 최소 반나절이 걸린다.  
    
지난해에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도 두어 번 산소를 찾았다. 병으로 생긴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을 잠시 잊으며 위로받는 시간이었다.
     
성묘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다. 자식은 어머니 앞에서 병이 하루빨리 낫기를 빌었다. 이후 어머니 덕인지 차도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프고 나니 묘지관리와 성묘가 쉽지 않다 

귀가하면서 어머니에게 절기에 맞춰 다시 오겠다고 다짐했지만 허언이 되고 말았다. 사실 지난 한식에도 성묘하지 못했다. 모든 일정이 병 치료에 우선하다 보니 공염불에 불과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어머니가 그립고 보고 싶어 진다. 병중에도 가장 떠오르는 사람이 돌아가신 어머니다. 부질없는 일이라 치부하지만 사무치는 그리움은 나도 모르게 생기는 감정이다.
      
나를 병간호하는 아내는 물론 한걱정이다. "산 사람이 중요하지 왜 급하지 않은 일에 신경 쓰냐"라며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그러나 어머니 산소에 대한 관리는 미룰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다.
     
돌이키면 성묘와 벌초 등 어머니 묘지관리는 병을 얻기 2년여 전만 해도 식은 죽 먹기였다. 아니 재미 삼아하던 일과였다.
      
산소 가는 길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애들이 어렸을 때 어머니 산소에 자주 데리고 갔다. 애들은 할머니 산소 앞에서 놀이동산에 온 마냥 들떠 놀았다.  
    
시간만 나면 묘지에 가니 친구들이 날 찾아 산소에 찾아올 정도였다. 친구들은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보다 내가 더 효도한다'고 농을 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생전의 어머니 속을 적잖이 썩였다. 어머니 말은 무조건 반대하고 내 인생은 내 멋대로 두고 절대 간섭하지 말라며 대치한 적이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어머니가 못난 자식을 용서하시고 구덩이에 빠진 아들의 시련과 좌절을 늘 감싸 지켜주고 있다고 믿고 싶다.
     
한편 병중이라 엊그제는 대행업체에 제초작업을 맡겼다. 작업을 마치고 그 결과를 사진으로 보내주는 식이다. 지난해 추석 전에도 벌초를 의뢰한 적이 있다.
     
과거 같으면 남의 손을 빌려 산소를 관리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직접 내 손을 거치지 않으니 미더운 데가 없지 않지만 밀린 숙제를 한 기분이다.
     
그러나 속마음은 결코 편하지 않다. 마치 처삼촌 벌초하는 느낌이랄까. 업체가 조만간 작업을 마치면 점검차 시간 내 산소를 들러볼 계획이다.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데 어머니 묘소를 돌보고 가꾸는 나의 욕심도 이젠 서서히 바꿀 때가 온 것 같다. 내가 사라진 후 자식들에게 할머니 묘소를 내가 하듯 관리해 달라고 할 수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후손들의 '조상 모시기'는 우리 세대가 마지막일 듯싶다. 전문가들은 저출산과 고령화로 장묘문화가 급변하고 무연고묘지도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산에 가면 주인이 없거나 알 수 없는 무연고묘지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관리할 후손이 없거나 후손들이 방치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새 세상은 많이 변했다. 매장문화는 거의 사라지고 있다. 묘지관리는 남에게 맡기고 성묘 자체도 없어지는 추세다.
     
엊그제 한 지인은 이러한 세태에 맞추어 "가족묘지를 파묘해 '평장묘'를 조성했다"고 한다. 자신은 아예 그곳에 '수목장'으로 치러달라고 자식들에게 유언했단다.  
   
어머니 묘지관리와 성묘를 제대로 하지 못해 걱정하는 사이 또 다른 고민과 과제가 내 앞에 놓였다.
     
인생을 마무리하면서 기존의 산소관리 대신 새로운 묘지 방안을 모색해야 할 듯싶다. 이게 자식들에게도 부담을 줄이는 조치라 생각한다.
     
장차 어떤 결정이 나오든 어머니는 내 마음을 이해하실 것이다. 우선 푸른 5월이 시작되면 어머니 산소를 찾아갈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릴 것이다.
     
"어머니, 제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자주 찾아뵙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태그:#한식, #성묘, #산소, #묘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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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메모와 기록으로 남기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과 다른 오마이뉴스를 통해 새로운 시각과 영감을 얻고 있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남북한 이산가족과 탈북민 등 사회적 약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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