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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란 무엇인가> 한디디 작가.
 <커먼즈란 무엇인가> 한디디 작가.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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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먼즈'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된 건 집 앞 공원이 개발 위기에 놓이면서부터다. 서울시는 은평구 서울혁신파크 부지에 60층 높이의 고층 건물을 짓고 복합문화쇼핑몰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그 과정에서 서울혁신파크를 이용하는 시민들의 의견은 반영하지 않았다. 서울시는 서울혁신파크 입주 단체를 쫓아냈고 퇴거하지 않은 경우 명도소송을 진행했다.

돈을 쓰지 않고도 존재할 수 있는 공공의 공간이 서울시에서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은평구에 이미 쇼핑몰이 있지 않느냐는 시민들의 물음에도 서울시는 우이독경다. 서울혁신파크만이 아니다. 동작구 서달산숲속도서관 또한 기존 주민들이 10년 넘게 잘 운영하던 시설임에도 동작구청에서 갑자기 폐쇄하라는 통보가 날아들었다. 숲속도서관이 불법건축물이라는 이유지만, 10년간 문제 없이 사용해온 시민들은 황당하다. 

한디디 작가는 서울혁신파크와 서달산숲속도서관의 사례가 2019년 강제 중단된 경의선공유지의 실험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한 작가에 따르면 "경의선공유지 이후 한국에서 커먼즈와 법을 둘러싼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났다"(<커먼즈란 무엇인가>, 217쪽)고 한다. 

한디디 작가는 그간 한국 사회에 꾸준히 있어온 커먼즈 운동을 추적해 지난 2월 <커먼즈란 무엇인가>(빨간소금)라는 '커먼즈 입문서'를 냈다. 그 역시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서 진행된 '빈집'이란 커먼즈 실험을 시작한 당사자 중 한 명이다. 한 작가는 자본주의로 인해 황폐해져 가는 인류에게 아직 기회가 있다고 말한다. 지난 1일 오전 서울 마포에 있는 연구자들의 집 'R커먼즈'에서 한 작가를 만났다. 

"대안적 관계의 힘을 느끼는 일이 중요"
 
<커먼즈란 무엇인가> 한디디 작가.
 <커먼즈란 무엇인가> 한디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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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제목이 <커먼즈란 무엇인가>이다. 책에서 커먼즈가 무엇인지 270쪽에 걸쳐 소개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짧게 소개해준다면. 

"한국에서 생수가 판매되기 시작한 건 1994년이다. 이전까지 슈퍼에서 물을 사 마신다는 건 너무나 생경한 일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물은 당연히 상품이지만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을 판 걸 두고 희대의 사기로 회자된다. 이는 물이 언제나 상품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물은 누군가 소유하고, 돈으로 사고파는 상품이 되기도 하고, '높으신 분들'이 관리하며 나눠주는 자원이 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커먼즈(commons)란 사고팔거나 나주는 게 아니라 무언가를 어떻게 나눌지 함께 논의하고 결정하는 관계 속에서 구성되는 것, 혹은 그러한 관계 자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 자본주의가 점차 심화되면서 인류는 이전보다 더 많은 걸 돈을 주고 사고 있다. 

"인류는 땅과 바다, 강과 숲과 같은 세계를 누군가가 소유할 수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속에서, 그러한 환경의 일부로 살아왔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인간을 커먼즈로부터 분리하며 시작된다. 커먼즈에서 분리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몸뚱이, 그러니까 노동력을 팔아서, 임노동을 통해 생계를 유지한다. 인류의 역사를 24시간으로 환산하면 자본주의는 단 4초에 불과한 시간을 차지한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동안 자본주의는 너무나 파멸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모든 것을 상품으로 만들어 팔아치우기 위해 지구를 땔감으로 삼는 체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커먼즈는 우리 자신을 상품으로 만드는 것을 멈추고 그와 다른 삶의 방식을 구성하는 운동이다." 

- 특히 한국은 돈이 있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풍조가 강한 나라이기도 하다. 미국의 한 리서치센터(2021)가 17개국 대상으로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두느냐는 질문에 한국만이 '돈(물질적 풍요)'을 1위에 꼽기도 했다. 한국에서 커먼즈가 필요하다는 걸 설득할 수 있을까. 

"우리 집은 어려서부터 가난해서 초등학교 때 이사를 많이 다녔다. 지하방이랑 월세방을 전전하면서 다닌 초등학교만 7군데다. 그땐 잘 몰랐지만 어머니가 아주 조금이라도 돈을 모으면 부동산 투자를 하려고 노력하신 것 같다. 그런데 그것이 계속 실패하면서 점점 집착이 생겼고 지금도 부동산 투자 관련된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개인의 문제라기 보다는) 한국 사회의 경제 성장이 부동산 투기를 근간으로 하는 급격한 투기적 도시화 과정과 함께 일어난 맥락이랑 관계가 있다. 그 과정에서 공동체적 관계가 깨지고 핵가족 단위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감각이 투자 욕망을 부채질하지 않았을까. 

동시에 어머니는 손이 크고 사람들에게 무언가 해주기를 좋아하는 분이다. 사람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돈이 전부라고 믿는 사람조차 일상 생활에서 무언가를 할 때의 동기는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 다양한 동기들 가운데 무엇이 사회적으로 강하게 구축되고 활성화되는가가 중요하다. 나 또한 성인이 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어울리고 같이 토론하며 대안적 분위기를 경험했는데, 그런 대안적 관계의 힘이나 즐거움을 감각할 기회가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 한국 사회에 앞으로 커먼즈 운동이 설득되고 커머너(커먼즈를 하는 사람)가 많이 늘어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어떻게 보고 있나. 

"커먼즈는 그 개념이 없을 때도 늘 인류와 함께 해왔다. 인간은 결코 혼자 살 수 없고 공통의 삶의 단위인 공동체를 만들지 않나. 이는 결국 어떻게 노동, 즉 생산을 조직하고 나눠 아이를 낳고 기르고 늙어 죽는가의 문제다. 현재의 기후위기는 우리 삶의 기반인 지구를 연료로 성장하는 자본주의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걸 보여준다. 또한 많은 이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걸 멈추었다. 사회의 재생산 자체가 실패하기 시작했다는 거다.

우리는 왜 이렇게 이상한 삶을 지속하고 있을까.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학원을 뺑뺑이 돌고, 자기 자신을 비싼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온 젊음을 바치고, 집을 사고, 차를 사고. 삶이 전쟁터라고 여기는 세계의 법칙에서 벗어나 친구들과 함께 다른 삶을 기획하는 것에서부터 우리는 커머너가 된다고 생각한다." 
 
<커먼즈란 무엇인가> 한디디 작가.
 <커먼즈란 무엇인가> 한디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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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평구의 서울혁신파크나 동작구의 서달산숲속도서관 같은 경우 시민들이 어떻게 공공 공간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을까. 그간 전세계적으로 위기를 돌파한 커먼즈적 사례가 있으면 알려달라. 

"언급한 두 사례 모두 '관'의 태도에 의해 위기에 처했다는 점에서 <커먼즈란 무엇인가>에서 소개한 경의선공유지가 떠올랐다. 한국 사회에서 공공이라는 것이 몇몇 관료의 의지로 결정된다는 점에서 시민과 괴리돼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탈리아에서는 물 민영화에 유권자 90% 이상이 반대하면서 커먼즈가 정치적 논쟁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또 1700년대에 세워진 로마의 유명한 극장이 민영화될 계획이었는데 여러 예술가와 시민들이 이를 막기 위해 건물을 점거한다. 이들은 이 건물을 재구축하기 위해 3년간 시위를 지속했다. 개인 소유물인 사유지와 국가가 관리하는 국공유지라는 이분법을 넘어 커먼즈라는 새로운 영역을 인정하라고 주장하고 이를 관리하기 위해 '커머너들의 재단'을 설립한다. 결국 시와 극적으로 협상에 타결해 재단과 시가 극장을 공동으로 관리하게 됐다. 물론 이 사례를 한국에 곧장 적용하는 건 무의미하다. 무엇보다 이러한 투쟁의 성패는 얼마나 광범위한 지지를 얻느냐에 달려있다." 

- 현재 삶 속에서 커먼즈를 실천하고 있는 부분이 있나? 

"음, 언뜻 커먼즈랑 관계가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물건을 살 때 포인트를 적립하지 않는다. 어느 시점부터 포인트 카드가 쏟아져 나오는데 소비하면서도 포인트를 모으고 있다는 만족감을 들게 하는 자잘한 감정이 의외로 우리의 욕망을 조정하는 게 아닐까 싶다. 제 삶과 욕망을 그런 '기획'에 장악당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도 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돈이 없으니 못 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돈이 있어도 안 할 거라는 마음이 있다."   

태그:#한디디, #커먼즈, #빨간소금, #서울혁신파크, #서달산숲속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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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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