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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원청 처벌 강화를 촉구하고 있는 노동자들.
 지난 1월 부산지방고용노동청 앞에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원청 처벌 강화를 촉구하고 있는 노동자들.
ⓒ 김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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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들어서 조선소에서 중대재해가 잇따르고 있다. 1월 12일 한화오션에서, 1월 18일 삼성중공업에서, 1월 24일 다시 한화오션에서, 2월 5일 HSG성동조선에서, 2월 12일 HD현대중공업에서 중대재해로 노동자가 목숨을 잃었다. 모두 하청노동자였다.

한편, 같은 시기인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이 50인 미만 사업장까지 확대 적용됐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사회적 쟁점이 될 때마다 경영계와 그 입장을 대변하는 사람들은 '처벌을 강화한다고 중대재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반대 주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중대재해를 막는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성립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꼭 필요하고 지금보다 수사도 처벌도 더 강화돼야 하지만, 법만으로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그렇다면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 함께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조선업의 경우에는 '다단계 하청고용 금지'가 가장 중요하다. 하청업체의 한 부서 정도에 불과해 이름도 '팀'인 물량팀은 자체적인 안전관리 능력은 거의 없으며, 당장의 작업량이 돈과 직결되므로 안전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

또한 물량팀 노동자는 원청의 안전관리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잦다. 원청이 아무리 수백억 원의 예산을 투자해서 안전관리 시스템을 갖춰 놓더라도 그 시스템의 작동 범위 밖에 있는 노동자가 늘어나는 한 중대재해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17년 문재인 정부가 구성했던 '조선업 중대산업재해 국민참여 조사위원회'에서도 "다단계 재하도급 원칙적 금지와 제한적 허용"을 가장 중요한 대책으로 제언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제언이 담긴 보고서는 휴짓조각이 됐고, 조선업 호황기를 맞아 인력난을 이유로 물량팀, 아웃소싱 등 다단계 하청고용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 2024년 들어 조선소에서 중대재해가 잇따른 것도 이 같은 다단계 하청고용 확대의 결과이다.

그냥 작업만 해야 하는 하청노동자

또 하나, 중대재해를 막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노동조합의 안전활동 참여다. 특히, 하청노동자가 직접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그래서 중대재해의 대다수가 하청노동자에게 집중된 조선업에서는 하청노동조합의 안전활동 참여가 매우 중요하다. 현장의 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고, 현장의 위험을 가장 잘 알고 있고, 중대재해 방지를 위해 현장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하청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계에서는 원청의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정규직노동조합과 더불어 하청노동조합의 참여를 계속 요구해왔다. 그러나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이를 보장하지 않고 있으며, 원청 사용자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하청업체에서도 법에 따른 산업안전보건위원회를 운영하고 있긴 하다. 그러나 실제로 현장을 안전하게 바꾸기 위해 하청업체가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공장도, 설비도, 작업도구도 모두 원청 것이고 전체적인 작업장 안전관리와 생산관리를 원청이 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재는 하청노동자의 의견과 요구가 원청에 전달돼 실질적인 현장 안전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제도적인 통로가 없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는 경우에 사고조사와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는 과정에서도 하청노동조합은 철저히 배제된다. 중대재해로 목숨을 빼앗긴 사람도 하청노동자이고, 재해 현장에서 함께 일해왔고, 이후에 계속 일할 사람도 하청노동자인데 사고를 조사하거나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는 데 하청노동자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는 것이다.

작업중지명령의 축소와 해제과정

중대재해로 인한 노동부의 작업중지명령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전에는 중대재해가 발생할 경우 전면 작업중지명령을 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해왔다.

그러나 2019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이후에는 '해당 작업 또는 동일한 작업'으로 작업중지 명령 범위를 축소했다. 그러면서 작업중지명령 해제 과정에서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원청 사용자는 정규직노동조합의 의견만 청취하고 하청노동조합의 의견은 전혀 청취하지 않고 있으며 노동부도 이에 대해 문제 삼지 않고 있다.

작업중지명령 해제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의견을 청취하는 이유는 사용자가 제출하는 서류와 말만 가지고 현장 안전이 확보됐다고 믿을 수 없으므로 노동조합을 통해 그것을 재확인하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정규직 노동조합보다 그 현장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하청노동조합의 의견을 청취하는 일이 더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원청 사용자뿐만 아니라 노동부 역시 하청노동조합은 배제하고 있다.

노동부는 하청노동조합이 아니라 그 현장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 개개인의 서명을 작업중지명령 해제 서류 중 하나로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하청노동자 개개인은 중대재해가 난 현장이 안전해 졌든 여전히 위험하든 회사에서 서명을 하라고 하면 서명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자신이 일하는 현장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고 여전히 위험하다고 해도 노동자 스스로 현장이 안전해졌다고 확인 서명을 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고 있다.

또한, 중대재해가 발행하면 노동부와 산업안전공단이 산업안전보건 특별감독을 실시해 법 위반사항을 적발하고 과태료를 부과한다. 그러나 그 결과를 원청 사용자와 정규직노동조합에만 설명하고 하청노동조합은 역시 배제한다. 문제가 지적된 사항의 개선을 점검하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중대재해 예방을 위한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운영에 있어서도, 중대재해 발생 시 사고조사와 재발방지대책 마련에 있어서도, 작업중지명령 해제 과정에 있어서도, 특별감독 결과와 그 실질적인 개선 점검에 있어서도, 중대재해의 가장 큰 피해자이고 현장의 안전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하청노동조합의 참여는 전혀 보장되지 않고 있다.

경영계의 주장처럼 중대재해처벌법으로는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중대재해처벌법만으로는 중대재해를 막을 수 없다. 위험의 외주화의 근본 원인인 다단계 하청고용이 건설업과 마찬가지로 조선업에서도 금지돼야 하며, 무엇보다 하청노동조합의 안전 활동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법과 제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노동자의 권리다. 현장에서 안전을 위한 하청노동자와 하청노동조합의 권리가 확보되지 않는 한, 조선소에서 하청노동자 죽음의 행렬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태그:#김용균재단, #이김춘택, #중대재해, #하청노동조합, #안전활동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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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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