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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7월 화계사에서 찍은 사진
▲ 한글맞춤법 통일안 제정위원들과 함께 1933년 7월 화계사에서 찍은 사진
ⓒ 신명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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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의 본분은 연구하고 가르치고 글 쓰는 것이다. 이희승은 이 세 가지 역할 중 어느 것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두 차례 정년 퇴임을 거친 뒤에도 여전히 대학과 대학원에서 후학들을 가르치고, 연구한 성과를 책으로 펴냈다.

1968년 2월에 <새문법>(일조각)을 펴내고, 1978년 3월에는 동양학연구소에 펴낸 <한한(漢韓)대사전>의 편찬계획을 주관했으며, 1982년 11월에는 <국어대사전>(민중서림)의 수정증보판을 펴내고, 1987년 8월에는 안병희와 함께 <한글맞춤법 강의>(신구문화사)를 펴냈다.

나이가 들어가도 그의 필력은 조금도 졸아들지 않았다. 1975년 6월에 수필집 <먹추의 말참견>(일조각), 1976년 3월에 수필집 <딸깍발이>(법문사), 1977년 12월에 자서전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능력개발), 1988년 3월에 수필집 <메아리 없는 넋두리>(인물연구소)를 출간했다.

한글 관련 저서는 전문가로서 축적된 산물이라 치더라도, 쉼 없이 이어지는 수필집은 그의 사유의 폭과 깊이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 잘 보여 준다. 책이 출간될 때마다 '낙양지귀(洛陽紙貴)'(낙양의 종잇값을 올렸다는 뜻으로, 많이 팔린 저작을 가리킬 때 쓰는 말) 현상이 나타났다. 이를 따를 이는 흔치 않았다.

지금까지 <벙어리 냉가슴>, <소경의 잠꼬대>, <먹추의 말참견> 등의 이름으로 수필집이 되어 나왔었다. '벙어리', '소경', '먹추'는 병신이다. '불견(不見)·불문(不聞)·불언(不言)' 이란 말을 상징하는 원숭이 조각을 나도 어렸을 적에 본 일이 있다. 그릇된 일을 보지도 말고 듣지도 말고 말하지도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일석 선생의 수필집 세 권이 각각 다 해서 이 삼불(三不)에 해당하는 불구자를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일석 선생이 평소에 어린 제자들 앞에서도 나타내고 있는 겸허한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선생께선 '벙어리 냉가슴'이라고 하면서도 혀를 깨물고 참는 한은 있어도 늘 몸을 사리고 약삭빠르게 살아간 많은 사람들이 볼 때엔 항상 할 말을 다 하셨고 지나칠 만큼도 하신 것이다. (주석 1)

그는 여든한 살이던 1977년 12월에 자서전(<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을 썼다. 제자들의 도움을 받아 구술한 것을 풀어서 쓴 책으로, 담담한 어조로 생애를 돌이켜 본다. 자서전 서두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인생이란 싫든지 좋든지 간에 파란 중첩한 인생 행로를 걸어가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나도 그와 같은 인생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날까지 내가 지향하는 길을 걸어왔다고는 하지마는 내적·외적인 여러 가지 제약과 원인으로 말미암아 흡족하지는 못하나마 내 나름대로 오늘날까지 그 길을 걸어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당대의 문장가였다. 나이가 들면 글도 생각도 고루해지게 마련인데 그의 글은 항상 새롭고 감미롭고 감칠맛이 났다. 몇 대목을 감상해 보자.

"눈이 소복이 덮인 초가집 온돌방에서 이러한 얘기 꽃이 피어오르는 것이다. 그 꽃은 해당화나 장미와 같이 요염한 백합꽃도 아니다. 박꽃 같은 얘기, 면화 송이 같은 얘기다. 아무리 해도 푸근하고 특수한 얘기 꽃이다"(<설야(雪夜)>).

"(…) 눈은 꽃으로 통하고 꽃은 미인으로 통한다. 따라서 눈과 미인은 서로 통하지 않을 수 없다. 미인의 마음을 빙심(氷心)이라 하고, 그 살결을 설부(雪膚)라 하였으니, 눈·꽃·미인은 결백미의 삼위일체라고도 할 수 있다. 자태뿐 아니라 그 기질에 있어서, 그 넋에 있어서 더욱 그러하다"(「눈(雪)」).

"종다리를 은실 같은 목소리로 봄 하늘을 수놓는 새라 한다면, 꾀꼬리는 샛노란 금실로 녹음을 호고 감치고 공그르는 새라고나 할까. 달을 쳐다보고 피눈물을 흘려 가며, 구성진 넋두리로 밤을 새는 두견을 단장의 애물이라 한다면, 폭양이 작렬하는 신록의 홍수를 찬미하는 꾀꼬리는 이 철의 발랄한 소프라노임이 분명하다.

먼 산의 뻐꾸기같이 사람을 환상으로 유인하는 새도 아니요, 새벽 서리에 기러기처럼 야윈 상사몽을 소스라치게 깨우는 새도 아니다. 카나리아의 새가 아무리 보드랍다 할지라도, 꾀꼬리의 목청처럼 교묘하게 맑고 둥글지는 못하리라"(<꾀꼬리>).

"완성은 종말을 의미하고, 종말은 곧 사별 그것이 된다. 오히려 미완성에서 완성을 향하여 매진하는 데 의미도 있고, 의욕도 생기며, 따라서 흥미도 솟아오르는 것이다. 이상이라든지 완성이란 것은 발전의 목표가 되는 데 의미가 있는 것이요. 일단 그것을 수중에 획득하고 보면 죽은 물건이 될 것이다"(<정와(井蛙)의 우주관·인생관>).

"사랑이 충만하고 사랑이 발산되는 곳에는 항상 평화가 깃들고 행복이 피어오른다. 이 반면에, 미움은 반복과 질서와 갈등과 투쟁을 가져오게 된다. (…) 사랑은 평화와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요, 미움은 파멸에 빠지는 함정이다. 그리하여, 인류애를 가장 고도로 발휘하는 사람이 진정한 의미의 위인인 것이다"(<자비>).

그가 눈을 감은 뒤인 1996년 6월에 회고록 <딸깍발이 선비의 일생>이 간행되었다.


주석
1> 김우종, <한국어가 형성하는 문화유산>, <딸깍발이 선비>, 196쪽.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딸깍발이 선비 이희승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이희승, #이희승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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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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