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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오후 3시, 70여 명의 부천시민들이 부천시의회 앞에서 '의료 정상화 및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촉구 부천시민 300인 선언'을 개최했다.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 주최로 열린 이번 행사에서 참가자들은 전공의 집단행동에 이은 의대 교수들의 사직서 제출 사태, 이를 촉발한 정부의 일방통행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하며 조속한 의료 정상화 및 진정한 의료 개혁을 촉구했다.

부천시에는 순천향대 부천병원,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이 있다. 전공의 집단행동은 물론이고, 최근 이 두 대학 의대 교수진도 집단 사직 의사를 표명하기 시작하면서 시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부천시에는 공공병원이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의료대란이 발생했을 때 이에 대응할 공적 의료시스템이 전무하다.

20년 경력 전직 대학병원 의사의 외침

이날 모두발언에 나선 조규석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 상임대표는 의사들의 집단 진료거부가 실질적으로 가능하고, 또 정치적 힘을 발휘하는 이유가 현재 한국의 의료시스템이 민간의료 중심으로 편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는 공공병원이 전체 의료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민간 영역의 의사가 마음대로 진료거부를 할 수 없는데, 한국은 공공병원 비율이 전체 병원의 5%밖에 되지 않아 의료의 공공성이 확보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순천향대 부천병원에서 20여 년 외과의사로 재직한 조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선후배 및 동료 의사들을 향해 "잘못된 보건의료 정책을 바꾸기 위해서는 의사들이 국민과 함께 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환자 곁으로 돌아와 국민과 함께 진정한 의료개혁을 위해 함께 주장하자"고 호소했다.
 
발언 중인 조규석 상임대표
 발언 중인 조규석 상임대표
ⓒ 부천시공공병원설립시민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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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발언 외에도 경기장애인부모연대 허혜영 부천지회장, 보건의료노조 인천부천본부 오명심 본부장, 부천시민연합 백운성 대표의 발언이 이어졌다.

"지역 주민들의 건강권과 의료 접근성 보장을 위해 소방서와 경찰서처럼 동네마다 좋은 공공병원이 필요하다" - 경기장애인부모연대 허혜영 지회장 발언

"지금 의료진의 집단행동으로 인해 가까운 지인들이 실제로 피해를 입는 것을 목격하고 있으며 모두 '이럴 때 아프면 큰 일'이라며 조심하고 있다." - 보건의료노조 인천부천본부 오명심 본부장 발언

"코로나19 당시 부천시민들은 타지역의 공공병원으로 보내져야 했기에, 부천 시민들은 공공병원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 부천시민연합 백운성 대표 발언

 
300인 선언에 참가한 부천시민들
 300인 선언에 참가한 부천시민들
ⓒ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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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참가자들은 기자회견 마지막 순서로 공동성명문을 낭독했다. 이 성명문에서 시민들은 "이번 의료 대란을 정부가 나서서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의료진이 하루빨리 집단행동을 멈추고 병원으로 복귀하기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또, "현재와 같은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공의료 강화"라면서, 공공병원 설립 논의에 꼬리표처럼 따라 붙는 "'경제적 타당성' 논리와 '적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부천시민들은 2023년 10월부터 2024년 1월까지, 부천시민 8300명의 서명을 받아 '부천시 공공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를 주민발의 조례 형식으로 부천시의회에 제출했다. 5월께 해당 조례안이 부천시의회에 상정될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부천시의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날 발표된 공동선언문의 전문은 아래와 같다. 

의료 정상화 및 부천시 공공병원설립을 촉구하는 부천시민 300인 공동성명

전공의들의 집단 행동에 이어, 이제 전국 의과대학 교수들이 집단 사직 방식으로 저항하고 나섰다. 부천에 있는 순천향대 부천병원,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도 예외가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불의의 사고와 질병이 닥쳤을 때 마음 편히 갈 병원 하나 없는 것이 지금 이 시각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우리는 이번 의료 대란을 정부가 나서서 책임져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의료진이 하루빨리 집단행동을 멈추고 병원으로 복귀하기를 촉구한다. 또한 우리는 현재와 같은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공공의료 강화임을 주장한다. 우리의 구체적인 요구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 의료 대란의 근본 원인은 민간병원의 수익 창출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시장중심 의료체계에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공공병원을 중심으로 한 공적 의료체계 강화를 요구한다.

현재의 의료 위기는 고질적인 시장 중심 의료체계가 곪아 터진 결과다. 애초에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문제가 발생한 이유가 대형병원들이 전공의의 노동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며, 이는 민간병원들이 의료인력에 들어가는 인건비를 줄여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데서 비롯된 일이다. 이와 같은 민간병원의 이윤추구를 조장하고 방치한 결과, 대한민국의 지역별·소득별 건강불평등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의사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는 필수 의료와 지역의료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

둘째,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윤이 아니라 동료시민의 건강권을 보장하기 위해 운영되는 병원이다. 따라서 우리는 시민 모두에게 생애 전주기 필수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지역완결형 공공병원 설립을 요구한다.

현재의 이윤 중심 민간병원 시스템에서는 의료 서비스 접근성 측면에서 소외되는 시민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일례로 부천시에는 여러 개의 종합병원이 있어 민간 보건의료 시설이 충분하지만, 장애/재활 부문과 의료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의료가 취약하다. 2019년 자료에 따르면 장애가 있는 시민이 부천시내에서 재활의료를 이용하는 비율은 2%밖에 되지 않으며, 정신장애 부문 역시 관내 의료이용 비율이 31.3%로 시도 평균보다 매우 낮다. 부천시민 누구나 차별 없이 건강권을 실현할 수 있도록, 생애 전주기 건강 문제 해결을 위해 필수 의료를 제공하는 공공병원을 설립할 것을 부천시에 요구한다.

셋째, 공공의료가 진정으로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의료 이용자로서의 제안, 협력, 감시, 평가 등 시민의 참여가 필수적이다. 따라서 우리는 공공병원의 설립과 운영에 시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요구한다.

공공병원을 설립하라고 할 때의 '공공병원'은 단순히 정부와 지자체가 소유하고 운영하는 병원을 의미하지 않는다. 공공병원 설립 단계에서부터 민관 공동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설립 이후에도 시민들의 실질적 참여를 보장하기 위해 시민참여위원회가 설치되어야 한다. 이는 부천시에 제출한 주민발의 조례안에도 명시되어 있는 내용으로, 부천시민이 원하는 공공병원은 바로 이러한 병원임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넷째, 공공병원 설립과 지속 가능한 운영을 위해서는 '경제적 타당성' 논리와 '적자'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시민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공공병원 설립에 관한 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공공병원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적자'의 공익성을 인정하고 이를 지원할 것을 요구한다.

지역에서 공공병원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어야 하기에,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그 주요 판단 기준이 경제성 분석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공공병원 설립 계획안은 예비타당성 조사의 문턱을 넘지 못한다. 그러나 국가재정법 제 38조는 "재난 예방을 위하여 시급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이나 "긴급한 경제적/사회적 상황 대응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의 경우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2022년 대전의료원, 서부산의료원이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를 받았다.

따라서 우리는 공공병원 설립과 운영에 관한 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고, 공공병원 운영 과정에서 발생하는 '적자'를 공익적 손실로 인정하고 이를 지원할 것을 요구한다. 코로나19와 같은 대규모 감염병 상황에서 시민들이 타지역의 공공병원으로 이송되어 가는 일이 없도록, 응급실과 필수의료과에 의사가 없어서 오픈런과 뺑뺑이를 도는 일이 없도록, 시민 누구나 거주지 근방에서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약 없이 받을 수 있도록 공공병원을 설립하고 운영할 것을 요구한다.

마지막으로, 환자를 떠난 의료인들이 하루빨리 집단행동을 멈추고 병원으로 복귀하기를 요구한다. 전공의에 이어 교수진까지 사직하고 나면, 시민들은 정말로 갈 곳이 없어지고 만다. 질병과 사고로 병원을 찾는 시민들의 불안과 고통을 더이상 외면하지 말라.

부천시민에게는 병원의 수익이나 의사들의 이익이 아니라 동료시민의 건강한 삶을 목표로 운영되는 병원이 필요하다. 작년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부천 시민 8천 3백명이 부천시에 공공병원을 짓자고 손수 조례를 만들어 시의회에 제출한 것은 부천시에도 바로 그런 병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시민이 의료의 주인이다. 의료인은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하며, 정부는 시민의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책임질 공공병원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말아야 한다.

2024년 3월 26일
부천시민 300인 선언 참가자 일동

덧붙이는 글 | (해당 글은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에서 작성한 것으로, 부천지역 매체에 중복게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태그:#부천시, #공공병원, #의사집단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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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활동가로 살고 싶은 사람. 아이의 선천성 희소질환 '클리펠-트레노네이 증후군(KT 증후군)'을 계기로 <아이는 누가 길러요>를 썼다. 한국PROS환자단체 대표, 부천시 공공병원설립 시민추진위원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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