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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니 산천에 봄나물과 봄채소가 가득하다. 냉이, 달래, 쑥, 머위, 두릅, 민들레, 돌나물, 취나물, 봄동... 그래도 나는 봄이 오면 똘갓김치(일명, 홍갓)가 생각난다.

오십여 년 전, 첫아이를 임신해 입덧이 심한 날이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파도처럼 출렁이는 뱃속을 부여잡고 계속해서 토를 했다. 밥 냄새, 청국장 냄새, 고기 냄새는 더더욱 싫었다. 외딴 시골이라서 먹고 싶은 것을 쉽게 사 먹을 수도 없었다. 그때 내 속을 가라앉혀준 것은 옆집 아주머니가 가져온 분홍빛 물김치, 똘갓김치였다.
 
새콤하게 톡 쏘는 숙성된 똘갓물김치
▲ 숙성된 똘갓(홍갓) 물김치 새콤하게 톡 쏘는 숙성된 똘갓물김치
ⓒ 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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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댁 이것 좀 먹어봐요. 새콤하게 익어서 먹을 만해."

울렁거리던 속이 감쪽같이 가라앉았다. 순식간에 비워버린 김치 그릇을 보면서 아쉬워했다. 사십 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분홍빛 물김치와 아주머니의 정이 그립다.

그때 입덧의 주인공인 딸아이도 나를 닮아 김치를 좋아한다. 캐나다에서 유학하던 딸아이는 물김치로 아쉬움을 달랬던 순간이 있었다면서 이야기 하곤 한다. 그 아이는 유난히 분홍색을 좋아한다. 생각해보니 이미 갓 속에 숨어있는 분홍빛을 엄마의 눈을 통해 보았기에 그런 것 아닐까?

보랏빛 똘갓에는 어떠한 성분이 있는지 궁금하여 인터넷을 뒤져보았다. 그 효능으로 보라색의 항산화 성분은 세포 손상 예방 면역력 체계를 강화한다. 또한 소화 촉진, 변비 예방에 효과적이고 비타민 A가 풍부하여 눈의 시력 개선에도 도움을 준다. 부작용으로는 과도한 섭취 시 소화 문제 발생, 알레르기 반응으로 가려움, 피부발진 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정보였다.

이맘때면 봄 들녘에 흔하게 자라는 똘갓은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진보라색을 띠며 잎을 키우고, 사월이면 꽃대를 쭉 올려 꽃을 피운다. 엄마들은 그 대궁을 낫으로 베어 큰 항아리에 왕소금을 술술 뿌려가며 절였다. 고춧가루를 넣지 않고 들기름에 깨소금만 넣어 무쳐놓아도 된다. 살짝 우려서 썰지 않고 그대로 묻혀낸다.

그렇게 담은 김치는 모내기할 때 한몫을 한다. 그 맛은 섬유질의 쫄깃한 식감과 알싸한 갓의 특향이 어우러져 어떤 김치에도 비할 수 없을 만큼 독특한 맛의 김치가 된다. 특히 씹을 때마다 아삭거리며 내는 맛은 일품이다. 숨어있는 깊은 맛은 모를 심는 농부들의 투박한 마음처럼 깊다.
 
똘갓(홍갓) 김치의 재료 준비
 똘갓(홍갓) 김치의 재료 준비
ⓒ 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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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친김에 똘갓 물김치나 담아볼까? 지금 3~4월이 물김치를 담는 적기이다. 갓으로만 담기보다 겨울을 견뎌낸 움 속에 있는 무를 섞어 담아야 더 시원하고 색깔도 예쁘다.

양념으로는 까나리 액젓, 흰밥, 사과, 생강, 마늘 쪽파, 새우젓 등을 사용하면 톡 쏘는 맛이 더하다. 거기에 시원함까지 분홍빛 국물이 우러날 수 있게 물을 밥물 붓듯 하면 적당하다. 새콤하게 익은 똘갓 물김치에서 꽃물처럼 분홍빛 봄이 퍼진다.

올해 나이 칠십, 요즘 세상에 칠순 상을 받고 싶다고 말하면 웃는 사람이 있지만, 나는 한 술 더 떠서 내 글이 실린 책이 올려진 문상(文床)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어쩌다 글을 쓰고 싶어서 시작한 글쓰기 수업, 마음 속에만 있던 생각이 말이 되고, 글이 되어 나오는 신기한 세상에을 살고 있다. 젊은 문우들 속에서 함께 배우는 즐거움이 나에게 새봄처럼 느껴진다.

매주 제출해야 하는 작문 숙제도 이제는 부담스럽지 않다. 맞춤법이 틀리고, 내 고향 전라도 사투리가 심하다고 지적을 받아도 배움의 기쁨이 그 모든 것을 넘어선다. 30여 년 이상 밥 장사로 세상을 헤쳐온 내가 문우들과 함께 행복을 나눌 수 있는 비법 중 하나가 '글쓰기 수업 후 함께 밥 먹기'다. 별 반찬 없어도 내 손으로 차린 밥상 앞에서 문우들 역시 엄청난 화답으로 맛있게 밥을 먹는다.

똘갓 김치에 대한 사연을 과제로 제출하였더니, 합평하는 문우들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어찌 이 소리를 듣고 그냥 있을 수 있나 싶어 이내 똘갓김치 담그기에 돌입했다. 거친 솜털을 가진 갓을 썰고, 무 하나 뚝뚝 썰어 각종 양념을 넣은 똘갓김치를 담가 통에 넣었다. 이 똘갓의 분홍빛이 우러나면 문우들이랑 익어가는 봄맞이 밥상을 함께 나눠야겠다.

태그:#똘갓김치, #분홍빛, #봄나물, #글쓰기, #밥상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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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의 나이에 글쓰기를 도전한 보석같은 여자입니다. 모든 시민이 기자라는 오마이뉴스 타이틀에 매료되었구요. 지역인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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