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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령에 맡은 단국대학교 부설 동양학연구소는 단독 건물에 넉넉한 자료가 수집되고 뜻있는 젊은 학자들이 참여하면서 이희승은 보람을 느꼈다. 학술연구집 <한국학>도 창간해 해마다 펴냈다.

연구소 활동을 하면서도 개인적인 집필 활동도 멈추지 않았다. 1971년에는 휘문출판사에서 '나의 인생관'이라는 이름으로 사회 원로 12명의 수필집을 시리즈로 출간했는데, 여기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강원룡, 박종화, 백낙준, 유홍렬, 이병도, 이숭녕, 이은상, 이종우, 이청담, 함석헌, 황산덕 등 필진이 화려했다. 당대 학계는 물론 사회, 종교계의 명사들이 모두 망라되었다.

이희승은 새로 쓰기도 하고 그동안 여기저기 발표했던 수필을 모아 <한 개의 돌이로다>라는 제목을 붙였다.

구성은 '돌의묵시'란 제하에 <자전적 교우기> 등 12편, '인생과 사색' 제하의 <우물안 개구리> 등 13편, '여성과 생활'에 9편, '사회와 인간'에 9편, '언어와 표현'에 7편, '조선어학회 사건'에 4편 등이 실렸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5척 단구」, 「호변」, 「딸깍발이」, 「우물안 개구리」, 「정의란 무엇인가」, 「인간팔촌」, 「우리말의 감칠맛」 등도 모두 이 책에 실렸다. 이 작품들은 모두 그가 왜 수필 문학의 대가인지 여실히 보여 주는 작품들이다.

그는 미국에서 돌아와 1956년 6월에 첫 수필집 <벙어리 냉가슴>(일조각)을 펴냈다. 이 책은 출판계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고, 그만큼 대중들의 인기도 많이 받았다. 그의 수필 문학에 관해 한 연구가는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일석 선생의 문학은 바로 민족적 양심의 문학이요, 사회적 정의의 실현을 위한 문학이며 동시에 민족주의적 사상과 민주주의 사상의 실천철학을 바탕으로 한 문학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사회적 정의감의 격렬한 반영이며 사상성의 표현이면서도 일석 선생의 글은 딱딱한 이론적 전개만을 특징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 같은 이론과 그 같은 정열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일석 선생의 글은 어디까지나 수필 문학으로서의 문체와 기교를 담뿍 지니고 있다.

비록 가혹하리만큼 신랄한 야유와 조소가 있더라도 항상 말을 거르고 다듬어, 자칫 거칠어질 수도 있는 대목에선 그 예각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논설이 아니고 가십이 아니고 격문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수필로서의 문학표현 양식이다.

그러면서 특히 일석 선생의 수필이 지니고 있는 특색은 한국어가 형성해 온 풍부한 문화적 유산으로 충만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문화적 유산이란 속담이나 격언을 비롯하여 한 마디 한 마디 단어가 지니고 있는 독특한 의미의 뉘앙스 등이다. (주석 1)

이희승은 이 책의 '책 머리에'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지금까지 필자가 적어 낸 많지 못한 글 중에서 직접 학술에 관계가 없는 작문들은 글자 그대로 잡문에 지나지 못하는 것이므로, 사리대로만 생각한다면 전부 폐기하여 마땅한 것들이다. 그러나 계륵도 버리지 못하는 것이 또한 인간의 상정인지도 알 수 없다.

이러한 잡문들 속에서 적거나 많거나 간에 인간 생활에 관한 것이 섞여 있고, 나아가서는 내 나름대로 인생 문제에 대한 고민에서 흘러나온 문제 거리도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믿는다. (…) (주석 2)

이 책에는 기존에 발표한 작품도 적잖이 실렸다. <벙어리 냉가슴>에 실린 것을 '재록'한 데 대해 출판사의 요청에 따른 것임을 밝히면서 양해를 구한다.

이희승의 대표적인 수필을 소개하기에 앞서 문단에서 그의 수필이 차지한 비중을 소개한다.

인간 정서의 표출이나 윤리 혹은 논리의 환기와 전개 이전에 언어와 문법마저 석연찮은 글들이 수필이라는 미명 아래 그 얼마나 범람해 왔으며, 또 횡행하고 있는가. 표현 이전, 허술한 의미, 그리고 일정한 인격에 미치지 못하는 습작의 잡기들이 이른바 수필가 제위의 명성 아래 무분별 양산되고 있음을 오늘도 목도한다.

이 점에서 일석의 수필 문학은 소중한 표준시침으로 커다란 경고의 이정표요, 글이 곧 인격체임을 의미하기에 진경의 정금미옥이다. 금강석 성능으로 도를 통달한 법기와 같아 미상불 학계의 태두와 문학계의 그것이 동격의 수준임을 입증케 함에 있다. 그것도 그러한 것이 일석의 수필들을 대해 볼 때 탁절한 문장, 자유자재롭게 종횡으로 구사하는 필치, 이로정연한 문법, 안정기에 와 닿는 곡진한 묘사, 날카로운 관찰에 섬세한 감각, 그리고 넘치는 정서의 기탄없는 발현, 더욱이나 유머러스한 기복이 풍부한 문체, 그러면서도 교양의 향상과 인격의 덕화에 부단한 광채를 뿜는다. (주석 3)

주석
1> 이우종, <한국어가 형성한 문화유산>, <수필문학>, 1978년 3월호.
2> 이희승, <한 개의 돌이로다>, 휘문출판사, 1971.
3> 임중빈, <일석의 수필세계>, <수필문학>, 1978년 3월호.
 

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딸깍발이 선비 이희승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태그:#이희승, #이희승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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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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