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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 하나 갖고 와라."

소금물에 계란을 띄우고 동전만큼 올라오자 엄마는 간이 알맞다고 하시면서 메주 넣은 항아리에 소금물을 붓게 한다. 허리가 아프셔서 앉았다 일어나기도 어려우시니 작년만 해도 혼자서 거뜬히 담던 간장을 이제 곁에 사람이 없으면 엄두도 못낼 일이다.

딸이라고 있어도 직장 다니면서 바쁘게 사니 휴일에는 쉬라 하시고 아예 부탁도 하지 않으셨는데 올해는 얼른 오라고 부탁을 하신다. 오죽하면 고양이가 앞발로 고무 다라이를 툭툭 치면서 "아이, 내가 사람 같으면 거들 텐데" 하고 말하는 것 같다고 하실까?
 
ⓒ 박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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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두 두 말로 만든 메주 여섯 덩이를 항아리에 담고 들통으로 네 통의 물을 부었다. 한 통마다 네 대접의 소금을 풀었다. 숯과 홍고추를 넣고 시시때때로 열었다 닫았다 하면서 한 달 뒤에 메주를 꺼내 된장을 담으면 된다고 날짜를 손으로 세신다.

"이제 엄마 오래 못 살아" 손가락 두 개를 펴고는 "이태 살면 잘 살 거야" 하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진다. 세상에 가장 가여운 사람이 늙은 홀아비, 늙은 홀어미, 고아, 무자식이란다.

나이 오십이 넘어도 엄마가 사라진 세상은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처럼 아득한 일이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는 그 힘든 농사, 집안일을 혼자서 다 해내게 하고 이제야 나타나 엄마를 거드는 무정한 딸이다.

지금 오육 십대 주부들이 노모에게 된장, 고추장, 김장 얻어먹느라 한국의 전통음식 맥이 다 끊기게 되었으니, 미루지 말고 어머니랑 음식부터 같이 하라던 교수님 말씀이 떠오른다.

봄 햇살이 장독대 번지던 날 고양이가 나를 지켜보면서 "사람이라 할머니를 도와줘서 좋겠다"는 눈빛을 받으며 눈물 젖은 간장을 담근다.

태그:#간장, #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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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손을 잡고 배낭여행을 다니는 뚜벅이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책과 여행을 사랑하는 아이들로 자라나길 바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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