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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편집자말]
누군가는 "신이 빚은 최고의 명작"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바위와 바람과 파도가 빚어낸 절경"이라고 한다. 기암괴석의 비경을 자랑하는 신안군 흑산면 홍도(紅島). 홍도 탐승을 위해 2월 말 목포항에서 남해고속 쾌속선 뉴엔젤호에 올랐다. 1시간 지나 비금(도초)항에, 다시 1시간 지나 흑산항에 기항했다. 정약전 유배지 흑산에서 30여 분 더 가니 범상치 않은 바위들이 나타난다.
 
신안군 흑산면 홍도의 선착장과 홍도1구 마을.
 신안군 흑산면 홍도의 선착장과 홍도1구 마을.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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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는 목포에서 서남쪽으로 115km 떨어진 작은 섬. 전체 면적은 196만 평, 해안선 길이는 20.8km. 270여 종의 식물이 자란다. 붉은색 톤의 바위가 많아서, 해질 무렵 섬의 절벽이 붉게 물든다고 해서 홍도란 이름을 얻었다. 1965년 천염기념물(홍도천연보호구역), 1981년 다도해 해상국립공원, 2009년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숨 막힐 듯 끝없이 밀려오는 33경

1박2일의 첫날밤, 흑산초등학교 홍도분교 앞의 한 포장마차에 들렀다. 손님은 10여 명. 젊은 외국인 2명도 있었다. 포장마차 주인은 한국어가 유창한 외국인에게 "내일 아침 유람선을 꼭 타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다른 한국인에게도 "유람선을 빼먹으면 홍도에 온 보람이 없을 것"이라고 했다.

홍도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유람선 관광. 뭐니뭐니 해도 홍도 비경은 바다에서 감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홍도 10경(1경 남문바위, 2경 실금리굴, 3경 석화굴, 4경 탑섬, 5경 만물상, 6경 슬픈여, 7경 부부탑, 8경 독립문바위, 9경 거북바위, 10경 공작새바위)을 중심으로 33경과 여러 바위섬을 관람하는 이 프로그램은 국내 유람선 관광의 백미로 꼽힌다.
 
2024년 2월 말, 홍도 유람선에 승선하는 관광객들.
 2024년 2월 말, 홍도 유람선에 승선하는 관광객들.
ⓒ 이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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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 오전 7시 50분 홍도1구 선착장에서 유람선이 출발했다. 예상 소요 시간 2시간 내외. 유람선이 출발하자 기관사가 마이크를 잡았다. "머나먼 홍도까지 찻길로 뱃길로 이렇게 와주신 여러분께…"라며 리드미컬한 어조로 감사의 멘트를 날렸다. 곧이어 안내승무원이 마이크를 넘겨 받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유람이 시작한다.

유람선은 먼저 도승바위를 지난다. 앞에서 보면 수도승 같다가 옆에서 보면 관음보살 같기도 하고 뒤에서 보면 성모마리아 같다. 그 기묘함에 시작부터 눈 호강이다. 안내승무원이 홍도를 세 가지로 소개했다. 33경을 자랑하는 기암괴석, 정원수와 분재 스타일의 나무, 맑은 물. 안내승무원은 "바닷물은 봄이 되면 맑아지기 시작해 여름엔 수심 10m까지 육안으로 볼 수가 있다"고 했다.

홍도의 지질은 사암(砂岩)과 규암(硅岩)의 해저 퇴적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수직절리(垂直節理)에 의한 퇴적층이어서 해안 바위는 수직과 수평으로 그 층들이 즐비하다. 그래서 기묘하면서도 멋진 풍경을 연출한다. 특히 규암층은 광물성분의 특성상 붉은색을 띠는 경우가 많다.
 
홍도 제1경 남문바위. 오랫동안 한 TV의 방송종료 시간에 애국가와 함께 등장했던 바로 그 장소다.
 홍도 제1경 남문바위. 오랫동안 한 TV의 방송종료 시간에 애국가와 함께 등장했던 바로 그 장소다.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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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승바위를 지나니 1경 남문바위다. 바위 사이로 동굴이 나 있고 홍도의 남쪽에 있어 남문바위라 부른다. 한동안 한 TV방송의 새벽 종료 시간에 애국가가 시작할 때 등장했던 바로 그곳이다. 남문바위는 홍도의 관문이자 홍도의 상징으로, 홍도 제일의 포토존이다. 유람선이 남문 앞에서 잠시 멈추자 관광객들은 줄지어 남문바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홍도 해안엔 남문바위와 같은 해식동굴이 120여 개 있다. 안내승무원은 "예전에 똑딱선을 타고 유람할 때는 남문 동굴을 드나들었는데 요즘은 대형 유람선이 통과할 수가 없다"고 했다. 관광객 모두 아쉬운 표정이다.

탕건을 닮은 탕건바위, 병풍을 쫙 펼친 듯한 병풍바위를 지나니 2경 실금리굴이 나온다. 속세를 떠난 한 선비가 가야금을 타며 여생을 즐겼다는 굴이다. 가야금굴이라 부르기도 한다. 동굴은 상당히 커 200여 명이 들어가도 충분하다고 한다. 감탄할 틈도 없이 칼바위, 돗대바위, 기둥바위, 시루떡바위 등이 지나가고 몽돌(빠돌)해수욕장이 나온다. 그리고 9경 거북바위, 5경 만물상이 이어진다.
 
홍도 제9경 거북바위. 이 바위는 홍도의 수호신이다.
 홍도 제9경 거북바위. 이 바위는 홍도의 수호신이다.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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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경 거북바위는 홍도의 수호신이다. 홍도의 신당에서는 매년 정월초 당제(堂祭)를 지냈다. 짚으로 허수아비를 만들어 바다에 띄워 수궁으로 보내며 마을의 복을 기원한다. 그때 이 거북바위가 용신을 맞이하고 홍도의 풍어와 안전을 기원했다.

위로 쭉 뽑은 머리, 길죽한 몸통, 앞으로 올려놓은 왼발… 참으로 절묘하다 싶은데 안내승무원이 설명을 거든다. "저 거북바위, 보는 것만으로는 너무 아깝지요. 가져가고 싶지요?" 아니 홍도는 천연기념물이어서 돌 하나 갖고 나갈 수 없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그는 "가져가는 방법이 있긴 있지요. 거북바위 통째로 가져가면 됩니다"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만물상 뒤편으로 홍도2구의 홍도 등대(1931년)가 보인다. 조금 더 올라가니 3경 석화굴이 나온다. 해식동굴인 이곳은 특히 해질 무렵 풍경이 압권이다. 석양에 비친 동굴은 오색꽃이 핀 것처럼 보이는데 그래서 꽃동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1972년 정진우 감독의 영화 <석화촌>(원작 이청준, 주연 윤정희 김희라 윤일봉)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홍도와 석화굴에서 이 영화를 촬영하게 된 것은 홍도 출신의 이동석(87)씨와 정 감독의 동생 정상우씨의 인연이 결정적이었다.

전라남도 문화관광해설사인 이씨는 홍도의 역사문화를 보존하고 관광인프라를 구축하는데 노력해왔다. 홍도에서 만난 이씨는 그 일화를 들려주었다. "정상우는 저와 군대 동기였는데 1972년 우연히 목포에서 만났어요. 이런저런 얘기 나누던 중, 상우가 '형이 영화를 찍어야 하는데 촬영 장소를 고르느라 고민 중'이라고 하더군요. 영화 스토리를 들어보니 홍도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홍도와 석화굴을 추천했고 곧바로 홍도로 향했지요." 윤정희는 이 영화로 1972년 청룡영화상과 백상예술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홍도 제3경 석화굴. 정진우 감독의 영화 ‘석화촌’(1972년 개봉)을 촬영한 곳이다.
 홍도 제3경 석화굴. 정진우 감독의 영화 ‘석화촌’(1972년 개봉)을 촬영한 곳이다.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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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 제8경 독립문바위.
 홍도 제8경 독립문바위.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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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경 독립문바위. 가운데에 사각형의 구멍이 난 이 바위는 독립문과 모양이 비슷하다. 그 너머로 멀리 흑산도가 보인다. 안내승무원은 "서울의 독립문보다 훨씬 오래전에 태어났으니 이게 형님 독립문"이라고 했다.

잊을 수 없는 선상횟집의 추억

이즈음 멀리서 작은 배 한 척이 다가온다. 그 자리에서 회를 떠주는 선상횟집이다. 바다에서 그날그날 건져 올린 생선으로 즉석에서 회를 떠준다. 흥미로운 유람 상품이자 낭만적인 추억이 아닐 수 없다. 회를 떠주는 사람들은 홍도2구 주민들이다.
 
혿도 유람선 관광 도중 해상에서 만나는 선상횟집. 홍도2구 어민들이 운영한다.
 혿도 유람선 관광 도중 해상에서 만나는 선상횟집. 홍도2구 어민들이 운영한다.
ⓒ 이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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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 몇 점 먹다보면 6경 슬픈여가 나타난다. 뭍에 나가 명절 선물을 사오신다던 부모님이 파도에 휩쓸려 세상을 떠나고, 기다리던 7남매는 부모님을 찾아 바닷속으로 들어갔다 하나둘 바위가 되었다는 슬픈 전설. 큰 바위 두 개는 부모님이고 그 옆에 줄지어 선 작은 바위는 일곱 남매를 닮았다.

바위섬들이 대부분 우렁차고 장중하며 하늘로 치솟았는데 6경 바위섬은 무언가 잔잔하고 아련한 분위기다. 마지막 10경은 공작새 바위. 오른쪽에서 보면 모자(母子) 같고, 정면에서 보면 공작새 같으며, 왼쪽에서 보면 천마(天馬)와 같다.
 
홍도 제6경 슬픈여. 부모를 잃은 일곱남매의 슬픈 전설이 담겨 있다.
 홍도 제6경 슬픈여. 부모를 잃은 일곱남매의 슬픈 전설이 담겨 있다.
ⓒ 신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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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경이 아니더라도 곳곳이 기기묘묘한 바위들이다. 입맞춤하는 해태바위, 떨어질 것 같은데 떨어지지 않는 아차바위, 외계인을 닮은 ET바위, 시루떡바위, 주전자바위, 코카콜라병바위 등등. ET바위라는 이름은 10여 년 전 한 어린이가 붙였다고 한다.

코카콜라병바위는 바위에 뚫인 구멍이 콜라병을 닮았다고 한다. 잘 들여다보니 영락없는 코카콜라병 모양이다. 시루떡바위와 주전자바위 전설도 재미있다. 옛날 어느 날 서해의 용왕이 신하들과 주연을 베풀었는데 그때 먹다 남긴 시루떡은 시루떡바위가 되고 술을 담았던 주전자는 주전자 바위가 되었다는 얘기.

안내승무원의 아차바위 설명도 기억에 남는다. 길게 불쑥 솟은 바위 맨 윗부분 끝에 바위 덩어리 하나가 올라앉은 형국이다. 그 바위는 곧 떨어질 것 같다. "아차 하면 떨어질 것 같은데, 아직 떨어지고 않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리기 때문이지요."

여기저기 해안풍경을 가보았지만 홍도의 기암괴석은 단연 압권이다. 수직으로 씻겨 내려간 바위에 꼿꼿하게 자라고 있는 노송들도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천야만야한 절벽에 달라붙은 홍도의 나무들은 모두 자연 상태의 명품 분재다. 안내승무원의 흥미로운 설명이 이어진다.

"홍도에는 사철나무, 너도밤나무, 동백나무가 주종입니다. 단풍나무는 없어요. 그래서 홍도는 늘 푸르지요. 게다가 거의 눈이 오지 않는데 눈이 와도 곧 녹습니다. 얼음이 거의 얼지 않아요. 그래서 홍도는 더 푸릅니다."

붉은 갈색의 바위, 늘 푸른 소나무와 파란 바다. 홍도 유람 1시간50분은 탄성의 연속이었다. 감탄하랴, 사진 찍으랴, 설명 들으랴 그리고 싱싱한 회 몇 점 집어먹으랴, 순식간에 두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입담 좋은 안내승무원은 김씨 성만 알려주고 나이와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 홍도 출신으로 유람선 안내원 경력 35년째라고 했다. 홍도 유람선을 타면 안내승무원의 구수한 입담에 귀 기울여야 한다. 이런저런 정보는 물론이고 흥미로운 뒷얘기가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걸 잘 기억해 둬야 어디 가서 홍도 유람 다녀왔다고 설(說)을 좀 풀 수 있을 것 아닌가.

유람선은 하루에 두 차례 출발한다. 정원은 195~240명. 성수기에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릴 때면 임시 유람선을 하루 한 차례 추가로 운행하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김민수, 《대한민국 100점 여행-서해편》, 파람북, 2022
박미영, 〈홍도 지형 자원을 활용한 지오투어리즘〉, 《한국지역지리학회지》 65호, 한국지역지리학회, 2011
박형준, 〈섬 관광 활성화 방안연구 : 신안군 홍도를 중심으로〉, 목포대 경영행정대학원 석사논문, 2014
양명훈, 〈33개의 절경과 건강한 난대림을 품은 다도해의 진주, 신안 홍도〉, 《산림》 678호, 산림조합중앙회, 2022


태그:#신안군홍도, #홍도10경, #홍도33경, #홍도유람선, #선상횟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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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에서 문화부 기자, 정책사회부장, 오피니언팀장, 논설위원 등으로 일했고 현재 서원대학교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중들이 문화유산과 예술을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하고 향유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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