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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가 삶의 터전을 떠나 요양원으로 가시는 날, 추적추적 봄비가 내렸다. 95세 어머니가 고향집에 혼자 살면서 노인주간보호 센터에 다닌 지 10년이 됐다. 주간보호센터는 혼자 계시는 어머니에게 식사, 운동, 글쓰기, 미술활동, 치매예방 활동 등을 실시해줬다.

또한 노화하는 어르신들의 감각을 일깨우면서 즐겁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매일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복약지도를 통해 어르신들의 건강한 삶을 도와주셨는데, 어머니는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에 흥미를 느끼며 즐겁게 지내셨다.

친정집을 찾을 때마다 주간센터에서 지낸 이야기를 하셨다. 물건 나르기 게임을 하는데 자기편이 이겼다든가, 노래교실에서 앞에 나가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불렀다고 신이 나서 자랑하셨다. 딸인 내가 그림을 잘 그리는 것도 엄마 자신을 닮아서라고 하셨다. 이 얘기를 들으니 학교 다닐 때 응원단장을 하며 반 전체를 우승으로 이끌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엄마의 기질을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잘 모른다"고 대답한 어머니의 사정
 
20살에 시집 와 아들,딸 낳고 70평생 살면서 애환이 깃든 집
▲ 어머니가 평생 살던 집 20살에 시집 와 아들,딸 낳고 70평생 살면서 애환이 깃든 집
ⓒ 박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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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활하시던 분이 요실금 때문에 기저귀를 차기 시작한 것은 5년 전쯤이다. 요즘 들어 소변 조절이 되지 않아 자동차 시트에도, 센터 의자에도 냄새가 진동하니 '더 이상 보호하기 어렵다'는 센터의 연락이 왔다. 암담했지만, 차선책으로 요양원 시설 이용을 알아볼 수밖에 없었다. 자녀들이 7남매나 있지만 언니들의 나이도 벌써 70대 중반, 자신의 건강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시기다. 형제들은 요양원에 모시는 것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다.

친정 동네의 국민건강보험공단을 방문하여 관련 서류를 알아봤다. 어머니의 상태에 따라 기관요양등급을 따로 신청했다. 주간보호센터, 병원, 주민자치센터 등을 다니며 서류를 신청하는데 종류도 많고 보통 복잡한 것이 아니었다. 집으로 오니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그동안 선생님들이 무슨 검사인지 물어보면 잘 모른다고 대답했다."
"왜 모른다고 대답했어요?"
"옆에 노인들이 그러더라. 모른다고 하라고, 그래야 너희들이 돈 쪼끔 낸다고"
"아이고, 엄마, 그렇게 안 해도 돈 조금밖에 안 내요."
"그런 거냐? 그런 줄도 모르고 괜히 모른다고 대답했구나."


아침부터 불편한 몸으로 병원을 두 번씩 다녀와 지친 어머니가 잠자리에 누우시며 말씀하셨다. "이날 평생 살아오면서 내 양심을 속이는 일은 안 해 봤는디 옆에 노인들 말을 듣고 모른다고 했으니... 만나면 다시 말해야겠다"고.

언젠가부터 노인들 사이에서는 '등급을 잘 받으려면 모른다고 대답해야 한다'는 소문이 암묵적으로 퍼져 있었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공부시킬 때 바르게 성장하라고 호되게 가르쳤다. 그런데 그 자식이 어린아이가 된 부모들에게 '모른다' 하라고 시키다니, 돈 몇푼에 평생 지켜 온 부모님의 자존심까지 내려놓게 하면 되겠는가 하는 씁쓸한 생각마저 들었다.

요양시설에 관한 등급을 받는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이곳 시골 읍내에서는 2주를 기다려야 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얼마 뒤 장기요양 등급 판정이 나왔고 2년 후 재심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주간보호센터에서 요양시설로 바꾸는 과정이 매우 복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노인(환자) 상태에 따라 분류하지 않으면 국가 부담 비율이 많아져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좀 더 간소화 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 봤다.

가정위탁, 주간보호센터, 요양원 같은 시설 이용하는 어른들을 위해 국가가 적잖은 경비를 부담해 주니 환자의 부담은 줄어 들 수밖에 없었다. 이런 복지 혜택을 우리나라가 노인들에게 제공하고 있구나, 하니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 이처럼 노인복지가 잘 된 나라가 몇이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은 낯설어 하시지만... 마음 붙이시는 중
 
95세 어머니가 요양원 입소하는 날
▲ 어머니 요양원 입소하는 날 95세 어머니가 요양원 입소하는 날
ⓒ 박세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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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을 앞둔 마지막 금요일이었던 2월 23일, 어머니를 모시고 요양원에 도착했다. 우리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요양원으로 마당이 넓고 햇빛이 잘 드는 곳이었다. 그동안 어머니는 동네 어른들로부터 '노인요양원에 들어가면 절대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어 왔었다. 그런데 막상 와보니 친절한 직원들이 반겨 주는 모습에 마음이 놓이는 듯 보였다. 시내에 인접하면서도 아름드리나무들이 울창한 곳으로, 주민들의 평가 또한 좋은 곳이었다.

어머니를 모시고 나니 먼 친정집보다 가까워서 언제든 달려가서 뵐 수 있었다. 다음날 찾아가 만난 어머니는 낯설어 하시긴 하지만 조용히 받아들이는 것 같았다. 담당 복지사가 어머니와 밀착해 돌봐주는 것을 보니 한층 안정돼 보였다. 주간보호센터처럼 낮에는 각종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운동실·물리치료실이 따로 있어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복지사님들의 수고와 헌신이 어머니의 여생을 돌봐 줄 것이라 생각하니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올해부터 노인 대접을 받는 나, 언젠가는 나도 이러한 곳에 의탁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 시절이 되면 나는 어떤 노인이 돼 있을까 혼자 상상해 본다. 우선 건강이 제일 먼저이니 매일 산책을 하고, 동료들과 유쾌한 수다를 떨고, 심오한 서적도 읽고, 노트북을 켜놓고 서양의 누구와 영어로 메신저 대화를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혹시, 노인학교에서 반장을 하고 있을지도...

태그:#어머니, #요양원, #주간보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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