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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있는 정약용 유적지와 수종사를 찾았다. 이번 여행에서 나를 포함한 일행은 숙소를 정약용펀그라운드 유스호스텔로 정했다. 

정약용 유적지에는 그의 생가인 여유당과 그의 묘 그리고 사당인 문도사가 있다. 그리고 유적지 안에는 정약용을 기리는 기념관과 문화관이 건립되어 있어, 정약용의 삶과 사상을 살펴볼 수 있다.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
 정약용의 생가인 여유당
ⓒ 여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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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 유적지의 길 건너편에는 실학에 관한 깊이 있는 정보를 접할 수 있는 실학박물관도 있다. 우리는 실학박물관에서 진행한 전시해설을 50분 동안 들을 수 있었다.

그곳에서 조선시대 실학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성호 이익, 반계 유형원 외에도 연암 박지원, 추사 김정희, 혜강 최한기, 박규수와 같은 이들의 초상화와 그들이 쓴 책을 관람할 수 있었다. 정약용은 조선시대 실학을 집대성한 이로 평가된다. 

정약용의 생가에는 집의 이름을 알려주는 여유당 현판이 걸려있다. 정약용은 여유당을 호로도 사용했다. 특히 여유라는 문구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글로 흔히 조심하고 경계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여기엔 숨은 뜻이 있으리라고 본다. 정약용은 당시 사회의 모순과 갈등을 해결하고자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와 같은 책자를 통해서 다양한 사회 개혁정책을 거침없이 제시한다.

한편 지금의 여유당은 정약용이 실제로 살던 집은 아니다. 지난 1925년 대홍수로 정약용의 생가가 휩쓸려 간 이후, 1986년에서야 복원했다고 한다.
 
정약용의 묘지
 정약용의 묘지
ⓒ 여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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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약용 생가의 뒷동산에 있는 정약용의 묘지가 있는 곳으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아래를 내려보니, 정약용 유적지가 한 눈에 들어왔다. 특히 남양주시청 공무원들이 청렴서약을 하는 장소가 바로 이곳이라고 하니, 상당히 상징성이 있는 장소라고 여겨진다.
 
문도사
 문도사
ⓒ 여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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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약용을 기리는 사당의 이름은 문도사이다. 정약용의 사후, 고종 시대에 정약용에게 문도(文度)라는 시호가 내려진다. 이를 기리고자 그의 사당 이름 역시 문도사로 불리고 있다.

정약용 유적지를 둘러보고 나서, 수종사를 찾았다. 정약용도 수종사를 방문하여 수종사 유람기를 남겼다. 정약용은 수종사 유람기에 '어린 시절에 노닐던 곳을 장성한 뒤에 찾아가는 즐거움'을 군자의 첫 번째 즐거움이라고 기록했다.

정약용이 과거에 급제한 이후 찾았던 수종사를 유배에서 풀려난 이후 다시 찾았을 때의 감정이니, 그의 유배생활의 고단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특히 수종사의 대웅전 옆에는 보물로 지정된 수종사 부도, 수종사 사리탑이 있다.

한편 조선 후기 승려 초의선사가 정약용을 찾아와 수종사에 삼정헌이라는 다실을 지어 차 문화를 전하였다고 한다. 수종사에서는 이곳을 지나가는 이들을 위해서 다기와 온수 그리고 찻잎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었다. 우리는 수종사의 삼정헌에서 녹차를 마시면서, 지난 날 정약용이 바라보았을 북한강을 우리도 말없이 바라보았다.

태그:#정약용유적지, #수종사, #여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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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힘이 되는 생활 헌법(좋은땅 출판사) 저자, 헌법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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