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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으며 했던 고민들, 집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챙겨야 했던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집은 분명 '사는 (buy)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아내야 하는 '사는 (live) 곳'이니까요.[기자말]
"집도 없는데 무슨 팔순이야.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엉망진창이다. 설계가 끝난 것이 9월인데, 11월 말의 엄마 생신이 다가오도록 공사는 감감무소식이다. 넷이나 되는 자식들이 멀쩡하게 있는데 정성껏 준비해야 하는 팔순 잔치는 단칼에 거절당했다.

큰딸이 우겨서 억지로 여기까지 끌려오기는 하셨지만, 엄마는 지금의 상황이 편하지만은 않으신 모양이다. 어쩔 줄을 모르겠다. 모든 문제를 촉발시킨 장본인으로서, 지금의 상황은 그저 가시방석이다. 큰일이다.

최종 구조설계를 받아든 것이 8월 24일이고, 인테리어 미팅은 9월 18일, 붙박이 가구업체 미팅은 9월 24일에 마무리했다. 벽지, 바닥재, 욕실 구성, 공간별 타일이나 계단의 목재, 난간 재질, 그리고, 공간별 조명까지 인테리어 미팅을 통해 정해야 할 것들이 폭풍처럼 휩쓸고 지나갔다.

일단, 1차적으로 오프라인 미팅을 통해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른 후, 몇 차례 온라인 협의를 통해 수정을 한 후, 10월 26일에 인테리어 도면이 확정되었다. 이와 비슷한 순서로 붙박이 가구 업체를 통한 가구 도면도 10월 16일 즈음 확정되었다.

건축사사무소에서는 건축 허가를 위한 최종 도면을 마무리하고 있었고, 최종 도면은 인테리어 확정과 함께 10월 말에 마무리되었다. 시간이 늦어져 겨울이 코앞인 것만 제외하면, 순조로웠다.

철거와의 전쟁이 끝나도
 
우리 4남매의 기록들뿐만 아니라, 엄마와 아빠의 책들까지,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들을 하나하나 들어내어, 새 집으로 옮길 책들을 정리했다.
▲ 추석을 지내고 책방을 정리했다.  우리 4남매의 기록들뿐만 아니라, 엄마와 아빠의 책들까지, 먼지가 뽀얗게 쌓인 책들을 하나하나 들어내어, 새 집으로 옮길 책들을 정리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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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폭탄은 철거와의 전쟁이었다. 계획은 완벽했다. 설계가 마무리되는 1개월 동안 고향 집 철거를 완료한 후, 건축 신고와 착공 승인까지 끝내는 것이 목표였고,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농촌주택에 대한 주거환경 개선 지원프로그램들도 이것저것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는, 고향 집이 슬레이트 지붕이어서 혹시나 지자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기로 했다. 곧 연말이라 많은 지원금이 바닥날 상황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운이 좋게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철거 지원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관청에 신고해야 하는 작업이라서 지원금을 받으려면 우리가 원하는 날짜가 아니라, 철거업체가 필요한 날짜에 작업이 진행되어야 했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던 고향의 집이 이제 사라져간다. 이런저런 궁리를 했지만, 좀 더 잘 보내줬어야 한다고 여전히 미안하다. 그 동안 고마웠어요!
▲ 고향집 철거를 하고 있다.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던 고향의 집이 이제 사라져간다. 이런저런 궁리를 했지만, 좀 더 잘 보내줬어야 한다고 여전히 미안하다. 그 동안 고마웠어요!
ⓒ 이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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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한 철거 업체는 추석이 지난 10월 초 연휴 동안 철거를 진행해야 한다고 하시는데, 그렇게 되면 예상 공사 착수 시점보다 너무 일찍 집이 없어져 엄마의 컨테이너 살이가 더 길어진다. 결국, 이것저것 고민하다가 결국은 300만 원의 슬레이트 지붕에 대한 철거 지원금을 포기하기로 결정했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가족의 추억이 잔뜩 깃든 우리의 공간은, 갈팡질팡하는 철거 계획의 폭풍 속에서, 가족과의 추억을 충분히 정리하지도 못한 채 2023년 10월 말 어느 주말에 '갑작스럽게' 철거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향 집 다시 짓기에서의 가장 고통스러운 한 달이 시작되었다.
 
집 철거를 앞두고, 엄마가 앞으로 몇 달을 보내셔야 하는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았다. 엄마의 밭은 가을걷이를 끝냈고, 쓸쓸한 풍경 위로 무지개가 환하게 떠 올랐다.
▲ 엄마가 공사기간을 보내실 컨테이너가 자리를 잡았다.  집 철거를 앞두고, 엄마가 앞으로 몇 달을 보내셔야 하는 컨테이너를 가져다 놓았다. 엄마의 밭은 가을걷이를 끝냈고, 쓸쓸한 풍경 위로 무지개가 환하게 떠 올랐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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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 엄마는 겨울을 그냥 고향에서 지내고 싶으시대. 주변의 친척 집이나 우리 집에 오시는 것도, 다 불편하시다네."
"언니, 공사는 왜 시작을 안 하는 거야? 제대로 계약을 한 것은 맞아? 철거가 끝나면 바로 공사를 시작해야지, 왜 또 시간을 끌고 있는 거냐고."


겨울이 오고 있다. 11월이 되면서 공기는 급하게 차가워지고 있었고, 엄마가 지내시기로 한 컨테이너 주택은 쉽게 차가워졌다. 결국, 제일 하고 싶지 않았던 '겨울 공사'를 하게 되었지만, 어떻게든 엄마가 고생하시는 것은 피하고 싶었는데, 엄마가 원하는 삶의 방식이 있으니 태어나서 자라온 고향을 떠나고 싶지도 않고, 주변의 친척이나 고향마을의 지인들 도움도 받지 않으시겠다고 한다.

여든의 노모를 한겨울에 차가운 컨테이너에서 지내게 한다며, 전국 각 지역에 흩어져 있는 동생들은 계속 걱정을 뱉어낸다. 제일 큰 잘못은 이런 상황을 피하지 못한 나에게 있겠지만, 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불만이었고, 애당초 들을 수밖에 없는 비난이었다.

그래도, 억울했다. 설상가상으로 11월 말에 엄마의 생일이 다가오니, 친척들을 모시고 팔순잔치를 하자는 말을 꺼냈더니 돌아온 엄마의 대답이 날카롭다.

"팔순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잔치를 한다는 거야? 난 싫다. 내년에 집 지어지면, 집들이나 해!"

내게 엄마의 팔순은 중요했다. 아빠는 칠순 잔치도 못 치르고 돌아가셨고, 부모님의 환갑에도 아무것도 해 드리지 못했다. 그러니, 더더욱 친척들을 모시고 엄마의 여든 번째 생일잔치는 제대로 해 드리고 싶었다. 그래서, 지역의 식당에 잔치를 예약하겠다며 몇 분이나 모셔야 할지 물어보는 중 돌아온 대답이었다.

아팠다. 동생들의 눈초리는 따가웠지만 참을 수 있었는데, 엄마의 솔직한 말씀은 쉽게 넘길 수가 없었다. 냉정하게 돌아보자, 지금 우리 집 상황은 정말 최악이다. 엄마는 지내실 집도 없는 상태로 추운 겨울을 컨테이너에서 보내셔야 하는데, 아직 새 집의 공사는 시작될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늦어지는 공사... 가시방석​​​​이다 
 
엄마의 오래된 집이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옛 집이 철거되어야 새 집이 지어지는 것은 맞지만, 옛 집을 이렇게 보내고 나니, 마음이 아프다. 좀 더 잘, 보내줬어야 하는데.
▲ 집이 사라졌다! 엄마의 오래된 집이 이제 완전히 사라졌다. 옛 집이 철거되어야 새 집이 지어지는 것은 맞지만, 옛 집을 이렇게 보내고 나니, 마음이 아프다. 좀 더 잘, 보내줬어야 하는데.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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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뜩이나 마음대로 되는 것이 없어 답답했던 2023년 10월의 나는, 골이 잔뜩 난 채로 엄마의 요청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쉽지만, 주변의 친척들만 초대해서, 간단히 점심을 먹기로 했다. 마음은 여전히, 골이 잔뜩 난 채로.

"혹시, 공사는 언제쯤 시작할 수 있을까요? 겨울이 오고 있어서, 가족들한테 일정을 말해줘야 할 것 같아요."

절실함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건축사사무소를 독촉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번에 집을 지으면서 새로 알게 된 것이 수없이 많지만, 그중 하나가 건축 허가에 대한 사항이다. 지역에서 지어지는 모든 건축물은 시청을 통해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고향 집의 경우엔 농어촌 지역의 규모가 200제곱미터를 넘지 않는 3층 이내의 단독 주택이라서 건축 신고와 착공 신고만으로 공사 수행이 가능한 상황이었다.

건축사사무소에서는 최대한 빨리 서두르고 있다는 답변을 주셨고, 드디어 11월 15일에 건축 허가가 났다. 이젠 착공 허가만 기다리면 되는데, 그 사이 엄마의 팔순 기념 점심 식사가 끼어버렸다. 가시방석이다. 모두가 나에게 지금의 상황에 대한 해결을 요청하는 눈초리가 따가운데, 집도 없어 슬퍼하는 여든 노모의 생일맞이 점심이라니. 모든 게 엉망진창인데, 진퇴양난이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아, 괜히 시작했나?

태그:#집짓기의즐거움, #고향집철거, #컨테이너살이, #엄마의팔순,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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