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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이 돌아오면 주방에서 기름 냄새라도 풍겨야 명절 답다고 우리 세대는 말한다. 전은 따끈할 때 먹어야 제맛이다. 그래서 전을 부칠 때 남자들도 부엌을 기웃 데며 눈치를 본다. 그럴 때 따끈한 전을 한 접시 건네 주면 "그래 이 맛이야"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 말에 전을 부치는 사람도 즐겁다. 남편과 시숙님, 동생, 삼 형제가 거실에 앉아 느긋하게 티브이를 보며 부엌의 기름 냄새를 즐긴다. 그게 수십 년 이어온 우리 시댁 명절 풍속도였다.

결혼하고 오랜동안 해 왔던 일들, 세월 지나 우리는 이제 늙었다. 큰댁 형님도 나이 들면서 몸이 아파 2년 전부터 요양원으로 가시고 이제 그 일을 이어받아야 할 장손 조카며느리는 자기 식구들끼리 보내고 제사도 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해왔다. 시대의 변화인 만큼 그걸 누가 나무라겠는가? 그러나 시동생은 마음속으로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다. 

다름 아닌 아버님의 유언 때문이다. 시아버님은 몸이 아파도 병원에도 가시지 않고 돈을 아끼셨다. 논과 밭 재산을 큰 아들에게 물려주시고 제사 잘 지내 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지금은 어림없는 일이지만 내가 결혼할 때만 해도 큰아들을 제일로 알고 사는 시대였다. 남편과 시동생은 아버님 하시는 일에 불만이 없었다. 오랜동안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오신 큰집이기에 당연할 걸로 알았다.  

제사 전통 잘 이어온 가풍, 그 일이 영원할 수는 없었다

인생이란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제사 문화도 언젠가는 달라지겠지 걱정했던 우려가 형님이 아프시면서 현실이 되었다. 명절이면 삼 형제 가족이 만나 명절을 즐기고 세배를 한 뒤 윷놀이를 하며 웃음이 떠나지 않던 설날 풍습은 먼 옛날이야기다 되었다. 그 일은 형님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 사람의 역할이 집안의 문화를 바꾸어 놓는다. 형님의 부재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가족 간의 따뜻한 정도...

그 후 전주에 사는 시동생네 가족과 우리 가족은 큰집 앞산에 있는 시부모님과 조상님들 산소에 모여 간단한 음식을 가져가 조상님들을 기렸다. 그나마 명절에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마음에 조그마 한 위로가 되었다. 지난해 명절엔 작은집 가족들을 데리고 우리집에 와서 떡국을 먹고 담소를 하다가 서울 각자 삶의 자리로 떠났었다. 

조금 힘이 들어도 마음 한편이 뿌듯했는데

올해는 사정이 달랐다. 내가 제주 여행을 다녀온 후 발톱을 자르다 살을 잘라 걸음 걷는 것도 자유롭지 못하고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고  요양 보호사 교육을 계속 받아야 했기에 몸이 많이 피곤하고 힘들었다. 설날이지만 시부모님 산소도 못 가게 되어 마음이 영 불편하다. 명절인데 작은집 가족들 점심 한 끼 먹이지 못하고 떠나보낸 서운함이 맘속에서 계속 머물면서 아프다.

우리 가족도 제주 여행을 다녀온 후 명절에는 각자의 집에서 쉬자고 약속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산에 내려오겠다는 셋째딸네 가족을 만류했다. 남편은 엊그제 만났고 서울에서 군산까지 5시간 이상 차로 이동하려면 고생만 하는데 왜 오느냐 야단이시다. 나는 그래도 부모 찾아 같이 있고 싶어 오겠다는 자식을 말린 거이 여간 섭섭한 게 아니다.

요 며칠 아침에 교육장까지 걸어갈 수가 없어 가까운 거리에도 불구하고 남편 차로 갔다. 낮에는 견딜 만해서 참고 교육이 끝난 다음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남편과 함께 마트를 가서 장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도 오지 않지만 명절음식을 하나도 하지 않으면 섭섭해서 생선 전이나 부칠까 하고 재료를 사고 떡국 재료, 야채 조금 그게 올 명절 음식 재료다.
 
80 이 넘은 노 부부는 전을 부쳤다.
▲ 남편과 함께 부친 전 80 이 넘은 노 부부는 전을 부쳤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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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소도 못 가본 우리에게 동서가 명절 선물로 배를 놓고 갔다.
▲ 동서가 명절 선물로 주고 간 배 산소도 못 가본 우리에게 동서가 명절 선물로 배를 놓고 갔다.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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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이 넘은 노부부는 전을 부쳤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정말 쓸쓸할 것 같았다. 그래야 명절 같은 기분이라도 날 것 같아서다. 둘째 딸이 엄마 좋아한다고 모싯잎 떡이랑 제주에 가서도 구경 한 번 못한 귤도 부쳐 주었다. 어제는 전주 작은집 가족들 산소 다녀온 김에 배를 한 박스 놓고 집에 들어오지도 않고 돌아갔다.

이만 하면 두 부부 명절 음식으로 부족함이 없다.  

시부모님 산소 아래 살고 있는 큰집과 시내 사는 우리 집이 있는데도 서울 사는 조카들 명절에 떡국 한 그릇 먹여 보내지 못한 마음이 자꾸 시려온다. 가족들이 눈에 밟힌다. 내년 설이 오면 내가 작은집 가족들 떡국 한 그릇 먹여 보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명절에 나누는 음식은 마음의 정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명절, #전부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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