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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향 호남의 뿌리인 포충사
 의향 호남의 뿌리인 포충사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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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고장, 호남

흔히 호남(湖南)을 의향(義鄕), 예향(藝鄕), 미향(味鄕)이라 일컫는다. 의향(義鄕)이란 의로운 고장으로, 호남 고을마다 의병 전적지라 할 만큼 국난 때 의병들을 많이 배출한 고장이기에 붙은 이름이란다. 예향(藝鄕)이란 예술의 고장으로, 숱한 예술인을 배출한 바, 호남 일대는 해남 땅 끝 마을의 고즈넉한 찻집에도 산수화가 한두 점 걸려 있을 정도요, 고을마다 남도의 판소리나 육자배기로 흥겹다. 미향(味鄕)이란 맛의 고장으로, 호남은 그 어디를 가나 맛깔스런 음식으로 나그네의 식욕을 돋운다.

나는 2007년부터 이후 모두 7차례나 전라남북도 구석구석 고을을 누비며 호남의병전적지를 답사했다. 그때마다 의향, 예향, 미향의 그윽한 맛을 한껏 즐겼다. 답사에 앞서 순천대학 홍영기 교수님의 자문을 받은 바, 호남의병의 뿌리는 임진왜란 때 제봉(霽峰) 고경명(高敬命) 선생에서 비롯되었다면서 그 후손 녹천 고광순(高光洵) 의병장에 이르기까지 4백년을 이어온 충의의 가문을 먼저 찾아보는 게 좋겠다는 말씀을 듣고 길을 나섰다.
  
연곡사 경내에 있는 고광순 의병장 순절비
 연곡사 경내에 있는 고광순 의병장 순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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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천 고광순 의병장 추모법회

우리 속담에 가는 날이 장날이라 하더니 내가 길을 나선 이튿날은 전남 구례군민들이 지리산 연곡사 경내에서 녹천 고광순 의병장 추모법회와 '의병장고공광순순절비(義兵將高公光洵殉節碑) 정화 고유제'를 드리는 날이라 했다.

나는 그곳으로 출발에 앞서 길 안내자인 녹천기념사업회 고재춘 회장에게 호남 의병의 뿌리인 포충사(褒忠祠) 충렬공 고경명 의병장 사당에 들러 고유 인사부터 드리고 싶다고 청했다. 하지만 포충사는 연곡사와 반대편으로 거기를 들리면 연곡사 추모법회에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다고 오후에 들리자고 말씀하기에 그 의견을 좇았다.
 
지리산 연곡사 일주문
 지리산 연곡사 일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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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피아골 연곡사로 가는 길은 왼편은 지리산이요, 오른편은 섬진강으로, 그림처럼 아름다운 19번 국도를 달리면서 호기심 많은 나그네가 강과 멧부리를 두리번거리는 새 승용차는 피아골 들머리로 접어들었다.

연곡사(燕谷寺)는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고, 구한말 때는 의병 근거지라는 이유로 일본군에게 다시 불태워진, 일본과는 매우 악연이 깊은 절이라 했다. '지리산연곡사(智異山燕谷寺)'라고 쓴 일주문을 지나자 대법당인 대적광전이 나오고, 왼쪽 계곡 동백나무 아래에 '의병장고공광순순절비(義兵將高公光洵殉節碑)'가 고즈넉이 서 있었다.

녹천 고광순 의병장이 순절한 날은 대한제국의 석양빛이 저무는 1907년 정미 음력 9월 11일 묘시(오전 6시 무렵)였다. 임진왜란 때 충렬공(忠烈公, 고경명)과 의열공(毅烈公, 고인후) 부자가 금산싸움에서 순국한지 315년만이요, 충렬공의 큰아드님 효열공(孝烈公, 고종후)이 진주성 남강에 투신하여 순국한지 314년 만에 고씨 가문에 또 한 번 충의의 높은 탑이 우뚝 솟는 순간이었다.

연곡사 대적광전에서는 녹천 고광순 의병장의 명복을 비는 추모법회가 열렸다. 피아골 계곡에는 100년 전 그날의 총소리 대신에 법고와 목탁소리와 염불소리가 낭랑히 울려 퍼졌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월간 <순국> 2024년 2월호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의향호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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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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