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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멕시코를 여행 중이다. 길 위에서 조우하는 사람을 인터뷰한다. 아래는 작년 11월 25일에 방문한 회색고래의 출산지, 산이그나시오석호에서 만난 회색고래관찰 전문가이드의 모험 이야기다.[기자말]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는 태평양과 캘리포니아 만(코르테스해)에 의해 분리되어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약 1300km에 걸쳐 뻗어 있는 반도이다. 좁고 긴 이 반도는 아름다운 해안선, 다양한 산맥, 건조한 사막 환경 등으로 인구밀도는 낮은 반면 생물 다양성이 풍부하다. 가혹한 환경에 적응한 다양한 식물과 동물을 통해 내 삶의 태도를 뒤돌아보게 된다.

그중에서도 몸길이 15m, 몸무게 40톤이 넘는 거대한 회색고래와의 상호작용이 가능한 산 이그나시오 석호(San Ignacio Lagoon)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비스카이노 생물권보전지역(Vizcaíno Biosphere Reserve)의 일부로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지역이다.

이곳에서 신비로운 회색고래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기 위해 15년 동안 가이드이자 배의 선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51세의 제라르도(Gerardo) 씨를 만났다. 그는 15년차 회색고래 관찰 가이드로 활동 중이다.(관련 기사: "고래가 인간에게 다가오는 일은 매우 특별한 일").

그와 회색고래에 대해 얘기하는 동안 한 가지 의구심이 생겼다. 그의 원래 집은 멕시코 시티이고 회색고래 시즌에만 이곳 석호로 와서 고래와 함께 지내다 다시 멕시코 시티로 돌아가는 회색고래와 같이 순환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가어떻게 이 외진 곳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어떻게 그 긴 시간 동안 그 인연을 이어가는지 궁금했다. 그에게 질문을 던지면 늘 기대 이상의 놀라운 답이 돌아왔다.

"1년 중 6개월은 라군에서... 시즌 아닐 때는 가족과 시간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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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고래관찰가이드이자 배의 선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51세의 제라르도(Gerardo) 씨
 회색고래관찰가이드이자 배의 선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51세의 제라르도(Gerardo) 씨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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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중 몇 개월을 이곳 라군에서 보내시나요?

"가족과 함께 멕시코 시티에 살고 있고 매년 회색고래가 돌아오기 전인 10월에 이곳에 와서 회색고래가 모두 돌아간 뒤인 4월 말에 가족에게로 돌아갑니다."

- 멕시코 시티에서는 어떤 일을 하시나요.

"조각가입니다. 작은 고래를 비롯해 다양한 조각 작품을 만듭니다."

- 작업실이 있거나 판매 공방을 운영하고 있나요?

"없습니다. 제 식탁이 작업대가 됩니다. 다양한 기능이 복합된 그곳이 제 스튜디오이기도 하고 사무실은 제 컴퓨터가 놓이는 모든 곳입니다."

- 멕시코 시티와 이곳 바하리포르니아는 너무 먼 거리잖아요?

"어디서부터 얘기를 드려야 할까요? 전 15년 전인 2010년,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 전체를 도보로 걸어서 지나고 있는 있는 중이었습니다. 출발 18일째 되는 날 이곳 석호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이곳에서 '안토니오 에코투어(Antonio's Ecotours)'를 운영하고 있던 아길라르(Aguilar)가족을 만났습니다. 나를 이틀 동안 오두막에 쉴 수 있도록 해주었죠. 내가 떠날 때 내게 일자리를 제안했습니다.

나는 당시 목수로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도 그렇듯 허리케인의 길목인 이곳에는 해야 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아길라르 가족은 이 곳에서 60년 넘게 어업을 해오던 어부들이었습니다. 고래관찰투어사업이 시작되기 전에는 이곳이 어업 캠프였죠. 지금도 고래 시즌이 아닌 때 이 가족은 전업 어부로 되돌아갑니다."

- 지금도 사람 살기가 어려운 곳인데 전에는 더 혹독한 곳이었는지요?


"이곳은 물이 없기 때문에 그때나 지금이나 살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평지에서 1~2m 우물을 파면 소금물이 나옵니다. 신선한 물을 얻기 위해서는 산으로 올라가서 샘을 파야 했는데 건조지역에 물이 나올 리 없죠. 그래서 산 이그나시오로 나가서 물을 사와야했죠. 포장이 되지않았기 때문에 물뿐만 아니라 식료품이나 휘발유를 사기 위해 산 이그나시오까지 가는 데만 5시간 넘게 걸렸습니다. 그런 상황에 이곳에서 고기잡이를 하는 몇몇 외에는 사람이 살 수 없었습니다. 이 사막 어디에 집이나 랜치(ranch 목장)가 보인다면 그곳에 샘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죽음에 다가가 보는 실험'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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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이그나시오 석호는 예나 지금이나 식수조차 구할 수 없는 척박한 곳이다.
 산 이그나시오 석호는 예나 지금이나 식수조차 구할 수 없는 척박한 곳이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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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당신은 이 척박한 곳을 걸어서 여행했다는 거죠? 

"그렇습니다. 인간으로서 육신을 가진 나 자신을 테스트해 보고 싶었습니다. 죽음에 얼마나 가까워질 수 있을지, 그리고 그 상황에 대해 사람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내 몸을 가지고 실험해 보고 싶었던 거죠." 

- 왜 죽음에 다가가 보는 실험에 자신을 던져보고 싶었던 건가요? 

"나는 멕시코 시티에 살았기 때문에 죽음에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습니다. 젊어서 죽음의 상황에 처했을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통해서 내가 누구인지를 알고 싶었습니다." 

- 2010년이라면 당신 나이 36살 때였군요? 왜 그 시점에 그런 욕구가 생겼을까요? 

"남자가 성인이 될 때 어떤 관문을 통과하는 의식을 통해서 성인임을 선포하는 문화가 전 세계적으로 존재했었죠. 그를 남자로 만드는 그런 의식은 오늘날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만 그 당시 나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가 되는 어떤 의식도 거치지 않았고 나는 그런 의식을 스스로 만들어 통과해 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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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다가가 보는 실험을 위해 길을 떠나다
 죽음에 다가가 보는 실험을 위해 길을 떠나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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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 출발했나요?


"그렇습니다. 누구로부터 어떤 도움도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감당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조금 실망이었습니다. 너무 쉬웠기 때문입니다. 내가 경험하기를 기대했던 상황과 대면하지 못했습니다. 여정을 마칠 때까지 죽을 뻔한 적도 없었고, 실제로 시험을 받았다고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 죽음에 다가가는 경험을 통해 스스로의 존재에 대한 발견을 원했던 실험은 실패한 셈인가요?


"엄밀히 말하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득도 있었습니다."

- 어떤 과실이었을까요?

"황무지들을 통과하면서 그곳에 사는 소수의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이곳처럼 작은 지역사회가 있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평생 그곳 황무지에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그곳은 황무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지극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곳이 황무지라면 그들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는 것이죠. 우리가 그곳을 황무지라 여길 뿐이었습니다.

그런 경험을 통해, 행복하고 완전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꼭 사치스럽거나 많은 돈을 가지고 부자동네를 찾아갈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황무지는 모래먼지가 날리는 곳이 아니라, 완전하고 균형 잡힌 삶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허리케인이 할퀴고 간 상처들을 복원하면서 회색고래의 도착을 기다리고 있는 이곳 바닷가 모래 언덕도 내게는 황무지가 아닙니다. "

- 실험의 출발지와 도착지는 어디였습니까? 얼마나 걸었고 며칠이 소요되었나요?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의 북동쪽, 산 펠리페(San Felipe)에서 시작하여 반도의 최남단 카보 산 루카스(Cabo San Lucas)까지 1300km 정도 거리를 54일 동안 걸어서 종주했습니다."

- 잠자리와 식사는 어떻게 해결했나요?

"잠은 텐트를 활용해 야영을 했습니다. 식사는 야생동물들처럼 야생에서 먹거리를 구하려고 했었지만 불가능했습니다. 마을을 지날 때 간단한 식품과 물은 구매해서 해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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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는 그곳을 황무지로 여기는 사람들에만 황무지일 뿐이다.
 황무지는 그곳을 황무지로 여기는 사람들에만 황무지일 뿐이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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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하칼리포르니아 반도 종단 도보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무엇을 했나요?

"14살 때 투우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투우사가 되려고 노력했습니다만 되지 못했습니다. 투우 대신 서핑을 시작했고 10년간 서핑을 가르치면서 살았습니다. 그리고 배낭을 메고 자연 속에 나를 던지는 실험에 나섰습니다."

- 학교생활은 어땠습니까?


"나는 좋은 학생이 되지 못했습니다. 투우사가 되기 위해 중학교를 그만두었습니다. 투우사가 되지 못했지만 인생을 다른 방식으로 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학교 공부를 그만둔 것, 투우사가 되지 못한 것도 내게 유익한 공부였습니다. 나는 공부를 안 한 것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했습니다."

- 왜 투우사가 되고 싶었는지, 또 투우사가 안 된 것에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나의 어린 시절은 잘 보호를 받는 생활이었습니다. 결코 피를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투우사는 다채롭고 내 생활과는 전혀 다른 것 같았습니다. 핏빛 투우사의 옷을 보면서 내 인생에서 본 사람들 중 가장 용감한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가장 용감한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투우사가 되었더라면 경험하지 못했을 많은 것을 경험하고 살아왔으니 그것에 대해 미련이 없습니다. 투우사는 엄청난 집중으로 그 일에만 매진해야 합니다."

"나의 오늘은 내 모험의 결과" 

- 당신이 추구한 것은 공통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모험'입니다. 보다 안전함을 추구하는 이 시대에도 여전히 모험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모험은 자신의 열정을 발견하게 해 줍니다. 열정을 발견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여전히 그 열정을 따르는 삶을 살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죠. 행복을 추구하면서도 열정에 관심이 없다면 행복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열정을 따르고 열정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행복입니다. 자신을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험과 열정의 결핍입니다. 그러므로 모험, 열정, 행복을 따로 분리하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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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험과 열정의 결핍이다. 모험이 나를 이곳 사막으로 이끌었고 모험 전의 삶보다 편안한 삶을 살지는 않지만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_Gerardo
 자신을 행복하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모험과 열정의 결핍이다. 모험이 나를 이곳 사막으로 이끌었고 모험 전의 삶보다 편안한 삶을 살지는 않지만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_Gerardo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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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모험은 현재와
 어떻게 관련이 있습니까?

"나의 오늘은 그 모험의 결과입니다. 모험이 나를 변화시킨 방식은 모험이 나를 새로운 곳으로 데려왔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사람들 속으로 나를 데려다 주었고 나는 그곳에서 새로운 삶의 방식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지금 모험 전의 삶보다 편안한 삶을 살지는 않지만,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홈페이지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GERARDO, #라구나산이그나시오, #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성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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