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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9월 30일부터 2023년 4월 14일까지 9살 아들과 한국 자동차로 러시아 동쪽에 있는 블라디보스토크에서부터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인 포르투갈 호카곶을 지나 그리스 아테네까지 약 4만 km를 자동차로 여행한(3대륙, 40개국, 100개 도시) 이야기를 씁니다.[기자말]
- 지난 기사 '하루 1만 5천보... 아홉 살 아이를 걷게 만든 일등공신'에서 이어집니다.

한 달쯤은 살아보고 싶은 도시 포르투

포르투갈은 나에게 축구로 익숙한 나라이다. 에우제비오와 호날두, 그리고 벤피카, 스포르팅, FC 포르투 등 축구 분야로는 익숙했지만 우리나라와 직항 항공편이 없어 여행할 생각은 해보지도 못했었다. 그런 낯선 나라인 포르투갈의 제2 도시 포르투에 도착했다.
 
1768년 완공된 성당으로 벽면의 대형 아줄레주가 아주 아름답다.
▲ 포르투의 카르무 성당 1768년 완공된 성당으로 벽면의 대형 아줄레주가 아주 아름답다.
ⓒ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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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에 체크인하고 아들과 거리로 나갔다. 아들 손잡고 거리를 걷는데, 잠깐 훑어보기에도 주변 건물이 그동안 여행한 나라들과는 많이 달랐다. 대부분 아주 낡아 외벽이 부서진 건물들이 많았고, 날씨도 흐려 도시 분위기는 어딘가 우중충해 보였다.

하지만 골목 사이를 걸으며 건물 옆으로 가까이 다가서자, 나는 점점 그 낡은 건물에 빠져들었다. 낡고 부서진 외벽과 함께 독특한 타일이 건물을 덮고 있었는데 건물마다 부서진 외벽도 아무렇게나 방치된 게 아니라 이탈리아의 소도시에서 느꼈던 것처럼 무언가 관리되고 있는 건물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마치 군데군데 상처가 있지만 애지중지 관리 중인 골동품 같았다고나 할까. 그런 골동품 같은 거리를 걸어 도루강 변에 있는 히베이라 광장으로 갔다.
  
포르투갈은 건물마다 아줄레주라는 타일로 된 외벽이 아름답다
▲ 포르투 거리 포르투갈은 건물마다 아줄레주라는 타일로 된 외벽이 아름답다
ⓒ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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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으로 들어서자, 독특한 철골구조로 된 루이스 1세 다리와 강 건너의 가파른 주택이 함께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냈다. 2층 철골구조의 다리 위로는 트램과 자동차가 다녔는데 멀리서 보기에도 에펠탑과 외관이 비슷해 보여 자료를 찾아보니, 에펠탑 건축가인 구스타프 에펠의 제자가 만든 다리였다.

광장 노천카페를 따라 걷는데 카페 위로 자리한 주택의 외관은 '아줄레주'라는 알록달록한 예쁜 문양이 있는 타일로 만들어져 아주 아름다웠다. 그동안 많은 나라와 도시를 여행해 봤지만, 처음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여기 다시 와서 한 달 정도 살아 보고 싶다.'
 
도루강과 루이스 1세 다리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광장이다
▲ 히베이라 광장 도루강과 루이스 1세 다리를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광장이다
ⓒ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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넉넉히 한 달은 살고 싶은 도시 포르투에서 나와 리스본으로 가는데 고속도로가 있어 요금소로 들어갔다. 그런데 한참을 달려도 도로 위에 차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도로 상태도 아주 좋아서, 오랜만에 운전하는 걸 즐기며 편안하게 달렸다.

한 250km 정도 달리자, 출구가 나왔고 요금을 계산하는데... 약 5만 원 정도가 나왔다. 50km에 약 만원, 우리나라보다 거의 5배 이상 비싼 것 같았다. 그제야 250km를 달리는 동안 왜 도로에 차가 별로 없었는지 이해가 됐다.

곧 리스본 시내에 도착해 리스본 대성당으로 갔다. 뒷좌석에 앉은 아들은 아까부터 '화장실이 급하다'고 하는데, 주변을 아무리 돌아도 주차할 곳이 보이지 않았다. 가파른 일방통행 길을 몇 번이나 돌고 돌아 간신히 빈자리에 주차했다.

"태풍아, 조금만 참아 화장실 찾아볼게."
"아빠, 나 쉬 나올 거 같아."


아들 손을 잡고 이리저리 돌아다녀 간신히 화장실을 찾아 아들을 들여보냈다.

우리 부자는 그동안 여러 도시를 여행하며 항상 주차는 시내 한복판, 관광지 바로 옆에 주차했다. 도시 외곽이나 공원 같은 한적한 곳으로 가면, 파리나 베를린 같은 대도시에서도 주차할 곳이 많았다. 하지만 그러면 아들이 많이 걸어야 해서 어쩔 수 없이 나는 용감하게도 관광지에서 가장 가까운 곳까지 차를 주차해야 했다.

도심지 가장 '핫'한 곳에 주차하고 마치 회사의 임원을 모시는 수행 기사처럼 조수석 뒷문을 열면 아들이 내려 조금씩 걷곤 했다. 그때마다 나는 정말 거대 기업 임원을 모시는 수행원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아들에게 최대한 많은 걸 보여주기 위해 나 스스로 선택한 방법이었다. 그렇게 리스본 대성당 근처에 내린 우리 부자는 리스본 대지진(1775년) 때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대성당을 둘러봤다.

마치 부산처럼... 가파른 언덕과 좁은 골목 있는 리스본

리스본 대성당은 넓은 광장을 품고 있는 다른 유럽의 성당과는 달리 가파른 언덕 위에 있었고, 바로 옆은 산타루치아와 두 솔 전망대가 있어 리스본 시내와 테주강을 함께 볼 수 있었다. 아들과 전망대에서 리스본 시내를 내려다보며 에그타르트를 먹었다.
  
상조르즈 성에서 보는 리스본 시내
▲ 리스본과 테주강 상조르즈 성에서 보는 리스본 시내
ⓒ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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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도 그렇고 리스본은 스페인과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포르투갈에 오기 전 '언어는 다르지만, 스페인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상 도시 분위기도 비슷'할 것으로 생각했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유럽의 도시는 대부분 평지에 있어서 도시의 전경을 보려면 가장 높은 건물인 성당의 종탑으로 올라가야 하는 것과 달리, 포르투갈은 우리나라의 부산처럼 곳곳에 가파른 언덕이 있었고, 그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주 아름다웠다. 그리고 좁고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아주 낡은 노란색 트램은 정말이지 하루 종일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았다.
  
1502년에 세워진 수도원으로 포르투갈 예술의 백미로 꼽힌다.
▲ 제로니무스 수도원 1502년에 세워진 수도원으로 포르투갈 예술의 백미로 꼽힌다.
ⓒ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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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테주강 하구에 있는 벨렝 탑으로 갔다. 벨렝 탑은 포르투갈의 탐험가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1498년)을 기념하기 위해 설치된 탑으로 약 500년 전에 지어졌다. 이후 탐험가들은 대서양을 바라보고 있는 이 벨렝 탑에서 출정식을 했다고 한다.

벨렝탑과 주변을 둘러보고, 다리 아프다고 투정 부리는 아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공원 벤치에 벨렝탑을 등지고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아들을 보며 생각했다.

'500년 전에도 위대한 탐험가의 신대륙을 향한 출항식에 모인 인파 중에는 저렇게 신대륙 따위에는 관심 없는 꼬마도 있었겠지.'

역시나 아들은 벨렝탑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듯 말했다.

"아빠, 여기 젤라토 맛있네~ 젤라토 맛집이야!"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을 기념하기 위해 500여 년 전에 지어졌다.
▲ 벨렝탑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항로 개척을 기념하기 위해 500여 년 전에 지어졌다.
ⓒ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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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두 달 반 만에 2만 3000km를 달려온 우리 부자는 최종 목적지로 향했다. 아니, '최종 목적지'라기보다는 '1차 목적지'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아들과 여행하며 삼은 1차 목표가 '유라시아 대륙을 달려 일단은 그 대륙의 서쪽 끝에 있는 도시까지 가보자'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서쪽에 있는 포르투갈의 호카곶으로 가고 있는 길이다.

묘한 기분, 아들과 함께 여기 다시 올 수 있을까

호카곶으로 가는 길은 마치 포항의 호미곶으로 가는 길과 아주 비슷했다. 그리고 점점 거리가 가까워지자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지도상 대륙의 가장 서쪽에 있을 뿐이지 별 특별할 게 없을 것만 같은 곳이었지만, 차를 주차하고 아들과 손을 잡고 걷는데 왜인지 가슴이 쿵쾅거렸다.

하필이면 기념 비석이 세워져 있는 곳엔 중년의 악사가 꼭 남자들 가슴을 울릴 만한 곡을 연주하고 계셨다. 선글라스로 눈을 숨긴 채 아들과 기념 비석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때마침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어 서쪽 바다를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비석에는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라고 쓰여있다.
▲ 호카곶 기념비 비석에는 '이곳에서 육지가 끝나고 바다가 시작된다.'라고 쓰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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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했다. 영식아, 고생했어. 수고했다!'

아들 녀석은 이런 아빠의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개다리춤을 추면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태풍아, 이리 와 봐. 우리 사진 찍어야지!"
"아빠, 근데 여기가 뭐 하는 데야?"


나는 아들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말했다.

"응, 여기 봐봐. 우리나라가 여기 아시아에 있잖아. 아시아랑 유럽이 이렇게 큰 대륙에 있는데 여기는 그 대륙의 가장 서쪽에 있는 '호카곶'이란 데야. 여기는 주변에 공항도 없어서 한국 사람이 오기 힘든 곳이야. 너랑 여기까지 와보고 싶었어."
  
호카곶에서 보는 석양은 정말 아름답다
▲ 유라시아 대륙의 끝 호카곶에서 보는 석양은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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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에서부터 시베리아를 지나 여기까지 오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도 북한과 통일이 된다면 거꾸로 여기 호카곶에서부터 자동차를 운전해 포항의 호미곶이나 울산의 간절곶까지 여행하는 사람들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아들과 흰둥이(자동차 이름)를 주차한 곳으로 걸어가면서 말했다.

"태풍아, 우리 흰둥이랑 저기 뒤에 기념비랑 같이 나오게 사진 찍자."
"저기 좀 먼데 우리 셋이 다 나올까?"
"응, 나올 거 같아. 우리가 언제 여기에 다시 올 수 있겠어?"
"나중에 또 오면 되지. 왜 못 와?"
"아니, 올 수도 있지만, 세상이 아주 넓은 데 여기는 다시 못 올 수도 있잖아. 그리고 온다고 해도 흰둥이는 같이 못 올 거야. 그러니까 우리 셋이 같이 사진 찍자!"


찰칵!
  
돼지 아빠, 원숭이 아들, 흰둥이 우리 셋은 동화처럼 단체 사진을 찍었다.
▲ 호카곶에서 찍은 단체사진 돼지 아빠, 원숭이 아들, 흰둥이 우리 셋은 동화처럼 단체 사진을 찍었다.
ⓒ 오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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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회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여행 기간 내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새로 작성하였으나, 사건 등 일부 내용은 기자의 저서<돼지 아빠와 원숭이 아들의 흰둥이랑 지구 한 바퀴>에 수록되어 있음을 밝힙니다.


태그:#유라시아횡단, #포르투갈, #포르투, #리스본, #호카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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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아들과 함께 세계 여행을 다니며 글을 쓰고 강연 합니다. 지금까지 6대륙 50개국(아들과 함께 42개국), 앞으로 100개국 여행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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