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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계절이 돌아왔다. 룰조차 제대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여하튼 돌아왔다. 어느 선거 때와 다르지 않다. 정부는 선심성 정책을 쏟아내고, 정치인들의 이합집산 눈치게임은 진행 중이고, 공천의 칼날은 서슬퍼렇다. 예비후보들은 오늘도 지하철에서 허리를 굽혀 인사한다.

사람들의 반응도 똑같다. 누군가를 뽑아야겠다고 떠들기도 하고, 어떤 이는 안 된다고 격렬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아무도 뽑지 않겠다며, 선거일을 휴일로 여기며 여행을 떠나려는 사람도 있다. 선거날이 다가오면 올수록 후자의 사람은 늘 훈계의 대상이 된다.

'투표는 민주시민의 의무'라거나 '차라리 무효표라도 찍어라'라거나 '정치 무관심은 최악을 불러온다'라는 무서운 경고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확실히 투표장에 많은 사람이 가야 선거라는 의사 결정 과정에 정당성이 늘어나기는 한다. 시민이 많이 참여하면 할수록 그 투표 결과는 공동체가 원하는 결과에 가까우니까.

그러나 이런 주장은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만든다. 왜 오로지 투표만이 민주시민의 의사를 반영하는 중대한 것이 되었을까? 대의대표제를 어쩔 수 없이 채택했다 해도 그것이 민주주의의 전부는 아니다. 다양한 의사 결정 방식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하지않을까? 그렇다면 '투표를 해야 내 의견이 반영된다'보다 '투표를 안 해도 내 의견이 반영될 수 있어야 한다'라는 명제가 더 옳지 않을까?

아무리 무효표를 찍는다 한들

내 친구 중 한 명은 매번 투표장에서 의도적 무효표를 찍는다. 내가 특정 정당 당원이었을 때, 인정에 호소해 표를 찍어달라 했지만 그는 그럼에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무효표를 찍는다. 아마 이번 선거에서도 그럴 것이다. 그런 그를 볼 때마다 나는 무효표가 끼치는 실질적 영향력에 대해 생각한다. 누군가는 무효표가 많으면 정치인들이 각성할 것이라 보지만, 과연 그럴까?

투표율이 아무리 올라도 현재로서 30~40%는 투표하지 않는다(선거마다 편차는 있다). 상당한 규모의 인원이 투표하지 않은 것인데, 정치인들은 이들을 보고 투표장에 이끌 정치를 하기로 결심하나? 확실히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겠다. 무효표가 증가해도 마찬가지 않을까? 선거에서 '당선'을 목적으로 하는 정치인들이라면 더더욱 그런 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투표의 무용성을 이야기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투표의 부족한 점을 말하려 할 뿐이다. 실질적으로 정치 자체에 비토하는 의견들을 적극적으로 행사 혹은 불행사 한다고 해서 정치인들의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역으로 그래서 정치가 깊은 심연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그것대로 문제가 있는 사회다. 오로지 투표라는 요소가 주요하게 정치를 좌지우지하게 되는 사회라는 의미니까.

제3지대 이외의 선택지를 위해

그럼에도 나는 내 친구의 투표가 무의미하다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아무 선택도 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중 한 명으로서 열심히 의견을 표출하고 있으니까. 오히려 그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은 점이 문제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일상 속에서 얼마나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지, 투표 외에 우리의 의견을 얼마나 반영하는 방법이 있을지 고민해봐야 할 필요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제3지대' 정당을 만드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다원주의를 주장하는 그들의 주장은 충분히 동감간다. 그러나 그 다원에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을 사람들'에 대한 고려가 있을까? 다원적 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국회 정당 다변화 외에 다양한 의견을 담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어째서 우리는 항상 다원적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면서 국회 의석이나 선거제도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게 되었을까. 투표는 사실상 유권자의 의견을 표현하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되어버렸다. '다원적'에 대해 고려하기도 전에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부터 따져봐야 하지 않나.

나는 이번 총선에서 선거권을 가지게 된 이래로 처음으로 투표를 하지 않거나 무효표를 던질 생각을 진지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에 대해 관심을 잃지는 않았다. 설사 없어졌다 하더라도 내 삶을 둘러싼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다. 계몽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정치적 무관심층'들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투표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들의 그러한 관심마저 반영하지 않는 것을 제대로된 민주주의라 볼 수 없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대안은 '제3지대'가 아니라 '민주주의'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선거 이외의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선거는 숭고한 의무가 아니라, 의사표출의 선택지 중 하나에 불과할 것이다. 그것이 앞으로 필요한 '제3지대'가 아닐련지.

태그:#투표, #선거,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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