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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웃고, 엄마들은 한숨 짓는 겨울방학이다. 평소에는 '오늘 저녁 뭐 해 먹지?'를 날마다 고민했지만, 방학이 되면 '삼시 세끼 뭐 해 먹지?'를 고민한다. 먹고, 치우고, 돌아서면 다음 식사를 준비하는 힘겨운 날들을 보낸다.

초, 중, 고등학교를 다니는 아이가 셋인 나는 방학이면 정말 먹고 치우다 하루가 끝나는 기분이 들곤 한다. 아이들의 학원 스케줄이 제각각이라 많은 날은 하루 세 번이 아니라 대여섯 번 밥상을 차리기도 한다.

그나마 조금 다행인 건, 초등학교 3학년인 막내딸이 방학에 학교 돌봄교실을 간다는 것이다. 내가 집에서 재택근무로 일을 하기 때문에 아이를 돌봄교실에 보내는데, 돌봄교실에서는 점심(유료)과 간식(무료)을 제공한다. 그런데 겨울방학 전날, 막내딸이 내게 무시무시한 말을 꺼냈다.

"엄마, 나 돌봄교실에서 주는 밥 먹기 싫어. 도시락 싸 줘."

지난 여름방학 때 돌봄교실에서 제공한 점심이 입맛에 맞지 않았다며 도시락을 싸가고 싶다고 한다.

"그럼, 집에서 점심을 먹고 1시쯤 돌봄교실을 가는 건 어때?"
"싫어. 돌봄교실은 일찍 갈 거야. 도시락 싸줘."


내가 도시락을 싸본 게 언제였더라? 생각해 보니 지금 고2, 중3인 아이들이 초등학교 1, 2학년때였던 것 같다. 아이들이 소풍(현장체험학습)을 갈 때 도시락을 쌌다. 누가 누가 예쁜 도시락을 싸나 다른 엄마들과 경쟁이라도 하듯, 예쁜 색깔과 모양으로 멋을 낸 김밥과 과일꼬치 등을 싸줬다.

막내한테는 한 번도 도시락을 싸 준 적이 없다.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하고 2년간은 코로나로 인해 현장체험학습이 없었다. 3학년이 되어 드디어 현장체험학습 일정이 잡혔으나, '노란 버스사태(23년 가을, 초등학교 체험학습 이동 수단을 일반 전세버스가 아닌 '노란 버스(어린이통학버스)'만 이용하게 하는 정부 지침이 발표되면서 갑자기 노란 버스를 구할 수 없게 된 학교들이 대거 현장체험학습을 취소하는 사태가 발생했다)'로 인해 갑작스럽게 취소되는 바람에 아이의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 싸줄게. 도시락!"

나는 비장한(?) 결심을 했다. 겨울방학은 딱 한 달, 한 달 동안 아침마다 도시락을 싼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 최대한 간단하게 싸야 한다. 간단하고 영양이 고루 들어가 있으면서 맛있는 음식이 뭐가 있을까? 김밥이 딱이다! 이것저것 넣은 복잡한 김밥 말고 한 가지 재료에 힘을 준 '초간단' 김밥을 싸보기로 했다.

첫날은 제철 맞아 저렴하고 맛 좋은 당근을 듬뿍 넣은 김밥을 쌌다. 김밥만으로 부족할 것 같아 멸치를 넣은 유부초밥과 파인애플도 함께 쌌다.
 
당근을 듬뿍 넣은 김밥과 멸치 유부초밥 도시락
▲ 도시락 당근을 듬뿍 넣은 김밥과 멸치 유부초밥 도시락
ⓒ 윤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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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친구들이 부러워해. 애들도 엄마한테 싸달라고 한대."

다른 엄마들한테 미움 사는 건 아닌가 살짝 걱정도 됐지만, 아이가 좋아하니 나도 신이 났다.

다음 날은 아이가 반찬으로는 잘 안 먹는 시금치를 듬뿍 넣은 김밥을 쌌다. 다음 날은 아이가 좋아하는 소시지만 넣은 김밥을 쌌고, 그다음 날은 야채 계란말이를 넣은 김밥을 쌌다. 다음 날은 사무실로 출근하느라 바빠서 김밥 대신 볶음밥을 싸줬다.

"오늘 점심 어땠어?"
"맛있었어. 최고야."

 
엄마표 초간단 도시락
▲ 엄마표 도시락 엄마표 초간단 도시락
ⓒ 윤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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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칭찬과 싹싹 비워진 도시락 통을 보며 뿌듯했다. 아이의 도시락을 싼 지 3주가 지났다. 힘들 거라 생각했던 도시락 싸기는 어느덧 내 생활의 활력소가 됐다. 도시락을 싸는 동안은 어린 날 소풍 갔던 어느 봄날처럼 설렌다. 내 사랑을 꾹꾹 눌러 싼 도시락을 먹은 아이의 하루가 소풍날처럼 즐겁길 바란다.

이제 도시락을 쌀 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 길게만 느껴졌던 아이의 방학이 이렇게 순식간에 지나가다니!

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발행 예정입니다.


태그:#도시락, #겨울방학, #김밥, #초간단도시락, #엄마표도시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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