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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용 <행복 파종>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이미용 <행복 파종>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 이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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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전시회를 찾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그림 작품은 감상자의 문화적 자존감을 높여주기도 하지만, 특히 지나간 삶을 스스로 돌이켜보게 하는 소중한 시간이 되어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지난 1월 15일부터 대구교대 교육대학원 조형창작회(회장 박노환) 창립전이 열리고 있는 대구문화예술회관 제1전시실을 방문했을 때에도 그런 느낌은 마찬가지였다.

이미용 화가의 '행복 파종(90x73cm, 순지에 복합소재)' 앞에 선 순간 알렉산더 대왕의 설화가 떠올랐다. 알렉산더 대왕은 흔히 세기적 전쟁 영웅으로 인식되지만, 뜻밖에도 그는 대단한 예술 애호가였다. 대왕은 당대 최고의 화가 아펠레스와 각별한 친분을 쌓았다. 

그림 앞에 서서 생각에 빠지는 즐거움

대왕은 본인만이 아니라 사랑하는 연인의 초상화까지 아펠레스에게 그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연인과 그의 초상을 그리던 화가 아펠레스 사이에 사랑이 싹트고 말았다. 대왕이 이를 알게 되었고, 여느 임금 같으면 연적 아펠레스는 혹독한 처벌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알렉산더 대왕이 누구인가, 세계사적 거인으로 알려진 것만큼 대왕은 두 남녀의 연애를 허용하였다. 아득한 2550여 년 전에 알렉산더 대왕이 남긴 발언은 21세기 현대인에게도 가슴을 벽력같이 치는 놀라운 명언이었다.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안목은 왕보다 화가가 낫겠지. 두 사람의 사랑을 인정하노라."

아름다운 꽃이 만발한 '행복 파종' 화폭의 우측 상단에 궁전이 떠 있다. 그 꽃들과 궁전들이 알렉산더 대왕의 헬레니즘적 신도시 알렉산드리아의 산뜻한 풍경으로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감상법일까. 그림 앞에서 살아온 삶의 궤적과 배경지식을 되돌아보는 이 즐거움을 독자 여러분께도 소개드리고 싶다.
 
박민영 <길>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박민영 <길>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 박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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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영 화가의 '길(100x70cm, 한지, 합지)'을 보는 순간에 나는 어린 시절 농촌마을에서 일상적으로 보았던 5일장이 생각났다. 교통 사정이 나빴던 시절이었으므로 싱싱한 상태의 바다 물고기를 먹어보는 일은 불가능했다. 5일장에는 소금으로 절여진 물고기들이 가건물이나 난전에 진열되어 있었고, 상인들은 그것을 지게에 짊어진 채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면서 팔았다. '길'은 그 추억을 너무나 생생하게 되살려 주었다.
 
류성실 <아침햇살>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류성실 <아침햇살>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 류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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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실 화가의 '아침 햇살(73x92cm, Oil on canvas)'은 과거 중학생 때의 어느 날을 기억나게 했다. 지금은 잘 알지 못하지만, 그 무렵의 미술 교과서에는 도상봉의 정물화가 약방의 감초처럼 실려 있었다. '아침 햇살'은 물론 구도도 색상도 도상봉 그림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중학생 시절의 미술 시간을 추억하게 해주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작품이었다.

당시 미술교사로부터 미술반에 들라는 권유를 받았다. 장차 화가가 되면 어떻겠느냐는 뜻이었다. 하교 후 귀가해서 아버지에게 말씀드렸다가 잔뜩 꾸지람만 들었다. 하지만 너무나 늦은 지금 돌이켜볼 때, 내가 14세이던 그 무렵 미술반에 들었더라면 결과가 좋았으리라 싶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쓴 유명시 '가지 않은 길'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이리라.
 
박노환 <민족의 혼을 깨우다>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박노환 <민족의 혼을 깨우다>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 박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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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환 화가의 '민족의 혼을 깨우다(80호, 혼합재료)'는 내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학생이던 풋풋한 젊은 날을 기억나게 했다. 한글 자모가 화폭 곳곳에 조형화되어 있는 까닭에 이 그림은 저절로 한글과 한국문학을 공부하던 20대로 시간여행을 떠나게 만들었다. '민족의 혼을 깨우다'라는 화제가 어울리는 작품이었다.
 
김명조 <자작나무숲 2>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김명조 <자작나무숲 2>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 김명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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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조 화가의 '자작나무 숲 2(80X30cm, Oil on canxas)'는 임진왜란 유적을 답사하느라 전국을 돌아다닌 10여 년 전, '금강산 건봉사'에 들렀을 때를 돌아보게 했다. '금강산 건봉사"라니. 사찰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뛰었다. '팔공산 동화사', '비슬산 소재사', '설악산 신흥사' 등과는 어감의 강도가 달랐다.

소재지가 금강산이라는 절 이름은 충격이었다. 게다가 적멸보궁 오른쪽 담장 옆에 난 작은 샛길로 들어가보니 '→금강산 가는 길'이라는 작은 이정표까지 붙어 있었다. 이 화살표를 따라 가면 금강산에 닿는다는 말인가.

다시 가보지 못한 '금강산 건봉사'

그런데 그 길을 걸어볼 수는 없었다. 당시는 이미 어둑어둑해지는 무렵이었고, 낯선 길에서 무작정 시간을 보낼 여유도 없었다. 부랴부랴 돌아나오는 길에 사명대사 기념관을 외관만 보았는데, 사찰 경내를 벗어나니 자작나무 숲이 말 그대로 가슴을 찌르듯이 마음을 적셔 왔었다.

사명대사 좌상이 설치되어 있고, 그 뒤로 하얀 둥치가 두드러지는 자작나무들이 종횡으로 줄을 맞춘 채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아, 아주 오랫동안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싶은 '인생 풍경'이었다. 다시 한번 가보리라고 여러 번 마음 먹었지만, 결국 10년 이상 흘렀는데도 아직 실천하지 못했다.
 
김길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77>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김길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77>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 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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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 화가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77(90.7x72.7cm, 수묵 채색)' 앞에 서자 금강산 구룡폭포 앞에 섰던 때가 떠올랐다. 해로에 이어 육로로 금강산 관광이 가능했던 2005년, 김규진의 '미륵불彌勒佛' 세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구룡폭포 옆 절벽을 보았었다. 하지만 내금강을 보려던 꿈은 남북관계 냉각으로 인해 끝나버렸고, 지금은 통일이 아니라 금강산 관광마저 기약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추억을 불러 일으키는 화폭의 세상

구나윤 화가의 '금강경 32'와 '사도신경', 김명자 화가의 '결실', 김정임 화가의 '환희', 류옥분 화가의 '무지개 꿈', 배상문 화가의 '청룡', 신경미 화가의 '봉황', 심영숙 화가와 정정림 화가의 동명 그림 'Untitle', 유은영 화가의 'Orange fragrancy', 임종보 화가의 '대파의 봄날' 또한 감상자로 하여금 많은 생각에 빠질 기회를 제공하는 작품들이었다.

전종배 화가의 '설중매', 조미연 화가의 '호기심', 조희정 화가의 'Nature', 최은영 화가의 '결', 추미경 화가의 '나르시소', 홍원기 대구교대 명예교수의 '장미와 잠자리', 김동철 대구교대 미술교육과 교수의 'Neant'도 감상자의 마음을 나른하게 적셔주는 좋은 그림들이었다.

박노환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대구미술 발전과 대구시민들의 문화정서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면서 "아직은 작가로서 성숙하지 못한 부분들도 있겠지만 많은 격려와 박수를 부탁드립니다"라고 전시회 개최 소감을 밝혔다. 지난 16일 오후 6시에 개막 행사를 가졌던 이번 전시회는 오는 21일까지 계속된다.
 
구나윤 <금강경 32>(좌) <사도신경>(우)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구나윤 <금강경 32>(좌) <사도신경>(우) : 작품을 사진으로 찍은 것이므로 원작과 구도, 색상 등 여러모로 다르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 구나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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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조형창작회, #박노환, #대구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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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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