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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지으며 했던 고민들, 집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챙겨야 했던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합니다. 집은 분명 '사는 (buy)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담아내야 하는 '사는 (live) 곳'이니까요.[편집자말]
"건축주님, 제가 현장을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언제 시간이 가능하세요?"

계약서를 손에 쥔 날에서 채 2주가 지나지 않은 평범한 오후였다. 전화기 너머에서 나를 '건축주'라고 부르고 있었다. 계약서에 따라 배정된 건축사의 목소리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나에게는 건축주라는 별칭이 주어졌고, 드디어 '집을 짓는 것'에 현실감이 더해졌다.

"제가 포항인데, 금요일 오후 3시까지는 도착할 수 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 괜찮으세요?"

건축사와 약속을 잡았다. 이동 거리가 있으니 오전 11시에는 출발해야 간신히 맞출 수 있는데, 일은 자꾸만 발목을 잡았고, 결국 첫 만남부터 30분이나 늦었다. 분명히 건축주는 내가 맞는데, 약속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은 나를 한껏 쪼그라들게 했다.

게다가, 금요일 오후에 서울로 향하는 길이 얼마나 막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으니, 우길 방법도 없다. 아, 차라리 오전 근무를 포기하고 그냥 휴가를 냈어야 한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여기서 또 실수가 겹쳤는데, 당연히 집에 계실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경로당의 친구분들을 만나러 가신다고 집을 비우셨다.

"죄송해요! 결국 시간을 못 맞췄어요."

내가 원하는 집

건축사님은 계속 괜찮다고 하셨지만, 첫인상부터 점수를 깎였다는 자괴감은, 초보 건축주를 더 불안하게 했다. 그래도 할 일은 해야 한다. 미안함으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집 주변을 안내하며 새로운 집이 어울려야 하는 땅과 집을 둘러싼 풍경을 보여드렸다.

집 짓기를 결심한 후, 찾아본 수많은 정보가 말하기를 '집은 풍경과 어울려야 한다'라고 했으니까 말이다. 물론 나의 고향은 주변으로 100미터쯤 걸어가야 이웃이 나타나는 외딴 농촌 마을이라서, 주변으로는 온통 논이나 밭, 소나무 숲뿐이지만.
 
엑셀에 집이 어떤 공간으로 구성되었으면 하는지를 정리했다. 여기에 손으로 그린 평면도도 추가해보기도 했는데, 아직 책방을 만들고 싶은 꿈은 보류 중이다. 예산 부족,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고!
▲ 집이 갖고 싶은 공간 정리 엑셀에 집이 어떤 공간으로 구성되었으면 하는지를 정리했다. 여기에 손으로 그린 평면도도 추가해보기도 했는데, 아직 책방을 만들고 싶은 꿈은 보류 중이다. 예산 부족,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고!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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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보고 난 후, 건축사님은 어떤 집을 갖고 싶은지 질문을 던지셨고, 고향 집의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질문에 대답을 했다. 내가 원하는 집은 어렵지 않았다. 엄마는 집이 너무 커지는 것은 싫다고 하셨지만, 가족들이 고향에 찾아오고 싶을 때는 대가족이 머물 수 있어야 했고, 집을 주로 쓰게 될 나와 엄마의 공간은 적당한 거리를 갖게 하고 싶었다.

이런 생각들을 말하며, 그동안 정리했던 자료들을 보여드렸다. 건축사님은 참고할 수 있도록 자료를 메일로 보내라고 하셨고, 첫 번째 설계는 3주 내에 받아볼 수 있을 거라고 대답해 주셨다. 이때만 해도, 설계가 쉽게 끝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

그날 내가 설명했던 집의 공간은 이런 식이었다. 집 짓기의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다가 철근 콘크리트로 정했지만, 일반적인 철근 콘크리트의 평지붕이 아니라 경사지붕이 있는 '집' 같은 외관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지붕이 없으면 자칫 카페처럼 느껴질 것 같았다.

집을 주로 사용하게 될 엄마와 나의 공간은 층을 두어 분리할 예정이었고,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으니 굳이 2층의 높이가 필요할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2층에서 기대하는 일출과 일몰의 풍경을 포기할 수 없었다.
 
가족신문은 충실하게 '짓고싶은 집'의 상상을 구체화 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것은 2019년 4월에 발행된 소식지 5호에서 상상한 1층의 공간들이다. 최종적으로는 많이 바뀌긴 했지만, 중요한 공간들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 가족신문 5호에서 소개한 1층 평면도 가족신문은 충실하게 '짓고싶은 집'의 상상을 구체화 시키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것은 2019년 4월에 발행된 소식지 5호에서 상상한 1층의 공간들이다. 최종적으로는 많이 바뀌긴 했지만, 중요한 공간들은 그대로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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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내부의 공간 차례다. 아빠의 고향 집이 단층으로 지어진 25평의 농가주택이었고, 엄마도 너무 큰 집은 싫다고 하셨으니, 1층의 평면은 99제곱미터(30평)면 충분하다고 느껴졌다. 1층은 엄마의 방을 중심으로 동생들이 집에 들를 것을 생각해서 손님방과 조금은 넓은 거실이 있으면 되겠다고 생각했고, 부엌은 가족의 공용 공간으로 열려 있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제일 신경 써서 설명했던 공간은 1층의 목욕실이다. 엄마가 온천 여행을 좋아하셔서 몇 번 모시고 갔던 적이 있는데, 예전에 일본에서 만났던 작은 온천탕을 집에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해가 갈수록 여행을 힘들어 하시는 것 같아서, 좋아하는 온천을 집안에 들이기로 한 것이다.

나만의 공간 2층  
2019년 5월호에는 2층의 평면을 설명했다. 천정까지 가득채워진 책장과 뒷쪽의 소나무숲이 바라다보이는 통창, 그리고, 어린왕자의 테라스라고 이름지은 일출/일몰 테라스도 끝내 살아남았다.
▲ 가족신문 6호에서 공유했던 2층의 평면 구상 2019년 5월호에는 2층의 평면을 설명했다. 천정까지 가득채워진 책장과 뒷쪽의 소나무숲이 바라다보이는 통창, 그리고, 어린왕자의 테라스라고 이름지은 일출/일몰 테라스도 끝내 살아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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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은 나만의 공간이다. 제일 필요한 것은 갖고 있는 책들을 정리할 수 있는 천정까지 책장으로 채워진 벽과 뒤쪽의 소나무 숲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공간뿐이었다. 33제곱미터(10평) 정도의 열린 스튜디오 형태여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침실은 격리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침실과 화장실은 벽으로 구분할 예정이다.

2층을 크지 않게 만들고 보니, 외부 테라스가 무척이나 넓어졌는데, 어린 왕자처럼 의자를 옮겨가며 해가 뜨고 해가 지는 풍경을 바라볼 예정이다. 정말 멋지지 않은가?
 
한참 봄이 가득한 5월의 어느날 고향집을 찾았다. 낮은 1층의 집 너머로 붉게 물든 노을이 아름답다. 여기서, 딱, 한 층만 더 높이를 얻을 수 있다면, 일출과 일몰을 모두 즐길 수 있을 듯 하다.
▲ 일몰 맛집의 풍경을 기대하며, 한참 봄이 가득한 5월의 어느날 고향집을 찾았다. 낮은 1층의 집 너머로 붉게 물든 노을이 아름답다. 여기서, 딱, 한 층만 더 높이를 얻을 수 있다면, 일출과 일몰을 모두 즐길 수 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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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집의 밑그림을 그리는 설계라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일터에서 새로운 과제를 시작할 때에도 마찬가지인데, 밑그림이 잘 그려져야 앞으로의 일들이 덜 힘들게 된다. 일이 시작한 다음에 바꾸려면 꽤나 노력이 들어가지만, 처음에 계획을 세울 때 충분히 고민한다면 실수를 줄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나도 가능하면 설계를 확정할 때까지 시간을 오래 쓸 예정이었고, 설계도가 뚫어질 때까지 노려보며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미리 마음속으로 경험해 볼 예정이었다. 집 짓기를 결심한 후, 수많은 공간들을 상상해 보았으니, 밑그림을 그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언제나처럼 기대는 기대일 뿐 현실이 될 수 없었다. 설계에 시간을 충분히 쓰더라도, 겨울이 되기 전에 공사를 시작할 수 있을 거라던 기대는 이미 틀어지고 있었다.

태그:#집짓기의즐거움, #설계하기, #원하는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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