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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늙지 않고도 집을 지을 수 있겠는데! 나를 즐겁게 하는 유일한 일이야!"

요즘 내가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그렇다. 나는 집을 짓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공사를 시작한 지 2개월이 지났고, 설계를 시작한 지는 10개월이 지났으며, (집을 짓기로) 결심한 지는 60개월이 넘었다.

이렇게나 오랜 시간을 마음속에서만 기대하던 일인데, 점점 현실이 되는 지금을 걱정보다는 설렘으로 맞이하는 것이 행복하기만 하다. 주변에서는 여전히 '집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라며 겁을 잔뜩 주고 있지만, 작년 12월에 공사를 시작한 이후 나는 그저 좋기만 하다.

새해도 되었으니, 이런 즐거움을 계속 확인하고 기억하기 위해서라도, 나의 집 짓기, 그 즐거움의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한다. 앞으로 공사 기간이 4개월도 더 남았고,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벌어질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설렘을 되새길 수 있다면 조금은 덜 불안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불안에만 잡아먹히지 않는다면, 나란 사람은 꽤나 현재를 즐길 수 있기에.

집 지을 결심
 
고향의 시골집은 30년 전에 아빠가 지으신 벽돌집이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집 곳곳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너무 추웠다. 아빠가 지으신 집을 다시 짓는 것은, 아빠를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함인데, 아빠가 서운해 하실까?
▲ 아빠가 지으신 부모님의 집 고향의 시골집은 30년 전에 아빠가 지으신 벽돌집이다. 그리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집 곳곳이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했고, 여름엔 덥고 겨울엔 너무 추웠다. 아빠가 지으신 집을 다시 짓는 것은, 아빠를 더 오래 기억하기 위함인데, 아빠가 서운해 하실까?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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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짓기로 결심한 것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오래전이다. 학교를 마치고 2002년부터 독립생활자가 되었지만, 도시의 아파트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사랑스럽지 않았다.

밥벌이를 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내게 집은 '사는 (buy) 것'이 아니라 '사는 (live) 곳'이었고, 모두가 공중에 떠 있는 사각형의 공간(아파트)을 사들일 때에도, 내 마음속에 끝내 그리운 것은 어릴 적 동생들과 구슬치기를 하던 고향의 집이었다.

게다가, 마흔을 훌쩍 넘겼음에도 사회가 명명한 정상적인 가족도, 제대로 된 정착지도 가지지 못한 채 살아가는 독거 중년에겐, 집은 실체 없는 이상향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끝내 놓아버리지 못한 이상향은, 이제 곧 현실이 된다. 집념으로 일으켜 세운 2023년의 나 자신이 대견할 뿐이다. 

본격적으로 집을 짓겠다고 생각한 것은 가족신문을 만들기로 결심한 2018년의 겨울이었다. 고향의 부모님 집을 다시 짓는 일이니, 엄마나 동생들의 의견을 듣는 게 중요했고 매달 발행되는 신문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놀랍게도 가족신문은 단 한 번의 누락도 없이, 5년 2개월, 62호까지 발행되었답니다).
 
가족신문을 통해 가족들과 나누고 싶던 이야기 중 하나는 집짓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공간으로 채워 넣을 것인지를 상의하기로 했는데, 처음의 계획인 2022년 10월은 지키지 못했네요.
▲ 가족신문 1호의 집짓기 기사 가족신문을 통해 가족들과 나누고 싶던 이야기 중 하나는 집짓기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공간을 만들고 싶은지, 어떤 공간으로 채워 넣을 것인지를 상의하기로 했는데, 처음의 계획인 2022년 10월은 지키지 못했네요.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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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의 가정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동생들은 시종일관 관심이 없지만, 5년을 끝없이 떠들어서인지, '새집은 필요 없다'라며 완강하시던 엄마의 반대도 점점 누그러졌다.

이제 실행만 하면 되는데, 쉽지 않았다. 누구를 만나든 '집 짓기 10년 노화설'을 필두로, 집 지으면서 겪게 될 수많은 불안을 휘저어대니, 마음 어딘가의 용기를 끄집어 내는 것은 어렵기만 했다. 이렇게 시간만 하염없이 흘렀다.

'2024년 9월 말까지 숙소를 비워주시기 바랍니다.'

역시, 용기는 환경이 만들어내는 거다. 회사 규정상 직원에게 제공되는 숙소의 만기일이 1년 앞으로 다가와 있었고, 경고의 힘은 그동안 마음속에 물결을 일으키던 '집 짓기의 불안'을 순식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머릿속에서는 이미 이사 날짜를 기준으로 집 짓기와 설계에 필요한 시간을 계산하고 있었고, 아무리 늦어도 '23년 봄에는 시작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작전의 시행일이 결정되니, 더 이상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부랴부랴 통장 잔고를 확인하여 예산을 점검한 후, 인터넷이나 건축 잡지를 통해 눈여겨보았던 건축사무소들 몇 군데에 연락해 보았다. 집을 지으려면 설계가 제일 중요하다고 했으니, 건축사를 먼저 찾아볼 생각이었다.

"어디에 지으실 건데요? 예산은 어떻게 되세요?"
"굳이 저희랑 하실 이유가 있으실까요? 지역 업체와 상의해 보시죠."


대부분의 이메일에는 회신이 없었고, 가끔 전화를 받게 되면 '내가 과연 돈이 되는 건축주인가'의 느낌으로 취조당하기 일쑤였다. 가뜩이나 집을 짓는 경험이 처음이라 모든 게 불안한데, 간신히 습자지만큼의 두께로 가려놓은 마음을 쿡쿡 쑤셔대는 불쾌한 경험이 대부분이었다.

평소 친분이 있는 지역의 건축사와도 상의를 해 보았지만, 고향인 충남 서산까지의 거리가 만만치 않아 작업하기 어렵겠다며 난감해 했다. 이러다가 결국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한여름 밤의 꿈처럼 끝나는 게 아닌가 걱정하던 차, 그동안 몇 번 문자로 상담했던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일단, 오세요. 와서 얘기나 한 번 해보시죠!"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언제쯤 시작할 수 있는지를 30분쯤 얘기했을까, 나는 처음 만난 담당자가 내민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나는 '23년 3월 4일에 집짓기 계약을 끝냈고, 이날은 나의 마음에서만 살아있던 이상향을 현실로 끌고 오는 기념일이 되었다. 나는 이날의 미팅이 계약으로 이어질 줄 짐작하지 못했겠지만, 노련한 상담 담당자는 이미 계획이 있으셨겠지?

10년 늙지 않고 잘 끝내기
 
시공사와 계약을 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월별로 어떤 일들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계약서에 포함되지 않은 항목들이 많았고,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 집짓기 일정 계획 및 해야 할 일들 시공사와 계약을 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월별로 어떤 일들을 해야 할지에 대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계약서에 포함되지 않은 항목들이 많았고, 이것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걱정이 많았습니다.
ⓒ 이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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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날 내가 서명한 계약서는 모두 두 건이었다. 하나는 건축 설계에 대한 것이었고 나머지는 집의 시공에 대한 계약이었다. 이번에 집을 지어보면서 알게 된 것이지만, 집을 짓는 것은 꽤나 복잡한 과정들의 종합예술이고, 내가 해결한 것은 그 수많은 것들 중 새로 지어지는 집에 대한 설계와 시공, 이 두 가지뿐이었다.

고향의 시골집을 다시 짓기 위해서는, 기존 건축물에 대한 철거, 시공 허가, 토목공사와 사용 승인 등 너무도 많은 것들이 남아 있었다.
   
계약서를 손에 들고 제일 먼저 한 일은, 집 짓기를 위해 챙겨야 하는 일정과 해야 할 일을 엑셀로 꼼꼼하게 정리한 것이었다. MBTI로는 절대적으로 즉흥적인 P의 성향이라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만 발휘되는 손톱만큼의 J가 필요할 만큼 중요한 사건이니 말이다. 

나의 집 짓기는 이렇게 우당탕탕 시작되었고 10개월이 흘렀다. 그 사이 7개월의 설계 기간을 거쳤고, 살고 있던 집의 철거, 측량, 건축 허가를 끝낸 후, 작년 12월부터는 집 짓기의 첫 삽을 떴다.

지금부터는 그 사이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기록해 보기로 한다. 물론, 10년 늙지 않고 잘 끝내는 것이 먼저겠지만. 여러분, 응원해 주실 거죠?

태그:#집짓기의즐거움, #건축계약, #집짓기의불안, #집짓기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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