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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이제까지 개인사 중심의 인물평전을 써왔는데, 이번에는 우리 역사에서, 비록 주역은 아니지만 말과 글 또는 행적을 통해 새날을 열고, 민중의 벗이 되고, 후대에도 흠모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 인물들을 찾기로 했다. 

이들을 소환한 이유는 그들이 남긴 글·말·행적이 지금에도 가치가 있고 유효하기 때문이다. 생몰의 시대순을 따르지 않고 준비된 인물들을 차례로 소개하고자 한다. [기자말]
6.25 한국전쟁을 거쳐 이승만의 포악한 독재시절 그리고 박정희의 잔혹한 군부독재 시절, 국민은 폭압과 배고픔의 암담한 시대를 살아야 했다. 어디에서도 희망의 끈이 보이지 않았던 때에 일군의 만담사들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직후에 신불출이 있었다면 해방 후에는 장소팔이 그 맥을 이었다.

TV가 없고 라디오가 정보유통의 큰 역할을 하던 시절이다. 사람들은 피곤한 일상을 보내면서 장소팔의 만담시간을 기다렸다. 라디오도 흔치 않아서 마을에 라디오 있는 집으로 모였다.

장소팔의 본명은 장세건(張世建)이다. 1922년서울에서 태어났다. 20살 때 연극배우로 데뷔하여 해방 후 조선창극단 등을 통해 만담사로 활동을 시작했다.

장세건이 장소팔로 이름이 바뀐 사연을 직접 그의 만담을 통해 들어보자. 만담은 동업자인 고춘자와 함께한 내용이다.

장 : 고춘자씨, 나한테 뭐 궁금한 거 없으셔?
고 : 궁금한 게 있어요.
장 : 뭔데?
고 : 그런데 하고 많은 이름 중에서 왜 장소팔이에요?
장 : 모르시지?
고 : 몰라요.
장 : 그 전에 우리 할아버님이 돌아가실 적에 우리 아버지에게 물려주신 큰 황소 한 마리가 있었어요.
고 : 어머! 큰 황소 한 마리가 있었구나! 그래서요?
장 : 그런데 우리집이 워낙 가난했거든.
고 : 저런!
장 : 우리 어머니가 날 배고 열 달 만삭이 되었건만 쌀 한 말, 미역 한 가닥, 살 돈이 없는거야. 그래 어머니, 아버지가 궁리 궁리 끝에 어쩔 수 없이 우리 아버지가 외양간에 매둔 소를 끌고 장으로 팔러 나가셨대요.
고 : 어머! 그래서 어쨌어요?
장 : 그때 내가 그 새를 못 참고 으앙, 하고 세상 구경을 하러 나왔지.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 아버지가 장으로 소 팔러 간 사이에 어머니가 나를 낳았다고 해서 장, 소, 팔!
고 : 네에.
장 : 그래서 내 이름이 소팔이고, 우리 형님은 중팔이고, 우리 아버지는 대팔이고, 우리 할아버지는 곰배팔이랍니다.
고·장 : 하하하! (심재근, <만담 100년사>)


장소팔과 고춘자 콤비가 국민에게 준 위로와 웃음의 공은 적지 않았다. 그가 2002년 4월 23일 별세했을 때 정부는 옥관문화훈장을 추서했고, 그를 아끼는 시민들은 2009년 12월 서울 중구 흥인동 성동공고 열 그의 고택 집터에 동상(좌상)을 세웠다. <거짓말 박사>라는 제목의, 역시 고춘자와 나눈 만담의 앞 부분이다.

장 : 거, 동네 인심이 이렇게 인색할 수가 있어?
고 : 왜요?
장 : 우리 집에 못 박을 일이 있어서 동네 집에 장도리를 좀 빌리러 갔지.
고 : 그래서요?
장 : 안 빌려줘요.
고 : 그래서 어떡하셨어요?
장 : 할 수 없이 우리집 장도리를 내다 썼지
고 : 에이. 여보쇼.
장 : 그쯤은 문제가 아녜요. 나보다 몇 천 배 인색한 사람 봤어요.
고 : 아니, 당신보다 더 인색한 사람이 있어요?
장 : 말씀 마쇼. 아, 어떤 날 밤에 내가 술에 거나하게 취해서 거리를 걸어오는데 어떤 집에 불이 났습디다, 그려.
고 : 어머나! 어쩌나 저걸! 그래서요?
장 : 활활 막 타더군. 때마침 내가 담배를 피우고 싶어 떡허니 보니까 라이타도 잃어 버리고 성냥도 떨어졌는지라. 아, 할 수 없이 그 불난 집 주인더러 미안하지만 담배 좀 붙이게 불 한 덩어리만 빌려주슈. 하니까 아, 뭐요? 하더니 벽력같이 따귀를 되게 후려갈깁디다.
고 : 아, 그럴 테죠.
장 : 참 인색하더군. 그렇게 많은 불에 한 덩어리쯤 주면 어떠냐 말야, 글쎄.
고 : 에이 여보슈.
장 : 따귀를 어찌나 되게 후려쳤는지 눈에서 불이 번쩍! 그 통에 붙이려고 담배를 눈에 들이대니까 눈썹이 확 타 버렸어요.
고 : 아이고, 거짓말 박사. (앞의 책)

 

태그:#겨레의인물10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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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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