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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는 올해의 과학계 인물 중 하나로 '챗GPT'를 선정했단다. 그만큼 정보를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는 시대. 이제는 지식을 쌓기 위해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고들 한다. 교육기관으로서 대학이 언제까지 유의미할 수 있을까?

그 답을 엿볼 수 있는 수업이 있다. 전공지식이 아닌 '나 알기'를 강조하는 수업을 해 온 안정임 서울여자대학교 언론영상학부 교수의 수업이다.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나를 더 잘 알게 되었어요.'

수업 방식도 참신하다. 일단 4-5명씩 조를 짠 뒤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수업이 끝나면 최소 3장 분량의 리포트를 작성해 제출해야 한다. 여기서 자신에 대해 솔직하게 쓰지 않으면 어김없이 점수가 깎인단다. 그는 말한다.

"이론은 중요하지 않아."

그래서 물었다. '그럼 뭐가 중요하죠?' 지난 12일 안 교수를 만났다. 

나는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정말 그럴까
 
인터뷰를 하고 있는 안정임 교수
 인터뷰를 하고 있는 안정임 교수
ⓒ 이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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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아는 거."
 

안 교수의 답은 간단했다. 그는 모든 수업에서 '나 알기'를 강조한다.

"자기에 대해서는 당연히 안다고 생각해서 관심이 없어요. (나를 알고 믿게 되면) 용기도 좀 나지 않을까요? 남들 다 하지 않는 거라도, 나는 이게 너무 좋으면 해볼 수도 있잖아요."

그는 '선생'이라는 직업을 갖게 되면서 '나를 제대로 알기'가 중요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됐다고 한다. 

"(선생이 되고 만난) 학생들을 보면 다 똑같은 이유로 울어요. '어떻게 하면 좋겠냐, (나 말고) 남들은 다 잘하는 것 같다'고요. 그런데 여기엔 그냥 '잘해야 된다'는 것만 있지 왜 잘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은 별로 없어요. 자기에 대한 질문이 없는 거죠."

처음부터 이론 수업을 안 한 건 아니다. '나 알기' 수업에도 시행착오는 있었다.

"애들이 그냥 앉아서 필기하고 그런 건(수업은), 잘 들었나 안 들었나 확인할 수 있는 게 시험 밖에 없어요. 시험을 잘 봤다고 해서 수업을 다 이해한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아무리 얘기해도 들리지 않을 수 있으니 그럼 수업으로 약간의 강제를 하자, 그랬죠. 시키면 해야 하잖아. 수업에 어떻게 녹일까를 고민하기 시작했죠."

방식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책을 선택했다. 제일 먼저 시작한 수업은 <미디어독서와토론>이다. 학생들은 매주 책 한 권을 읽고 리포트를 쓴다. 수업 시간에는 책과 관련된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 교수는 학생들의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는다. 독서 토론과 같은 수업이지만 '단순 서평 금지, 줄거리 언급 금지, 사회비평 등 논설 형식의 글 금지'가 규칙이다.

"정해진 답은 없어요. '네 얘기를 써, 너에 대해 질문하고 스스로 답해봐' 그거예요. 다음에 하는 게 조별 토론. 자기가 쓰고 말하고 나면 깨닫더라고요. 비슷한 나이 때 고민하는 부분이 다 비슷한데, 학생들끼리 이야기하게 만들 공간이 필요하다고 봤어요. 그러면서 서로 힘이 될테니. 공감과 위로, 선생은 절대 줄 수 없죠. 사람의 힘이죠."

그렇게 매주 제출하는 30개의 리포트를 꼼꼼히 읽고 일일이 피드백을 남겨준다. 
 
"피드백이 제일 힘들어요. 읽으면서 메모 달고 또 읽으면서 메모 달고. 이렇게 적으면 학생들이 상처받을까 신경을 많이 쓰니까 한 3개 하면 힘들어서 좀 쉬었다가 다시 하고 이렇게 해서 며칠씩 걸려요."


그러다 보면 학생들의 이름,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했다. 

"막 애써서 기억하는 건 아니예요. 수업에서 매주 자기 이야기를 하니까 자연스럽게 (이름이) 외워져요. 미디어독서와토론 수업은 문장 만드는 구성만 봐도 (누군지) 보이죠. (리포트를 보면) 학생들과 대화를 하는 느낌이예요."

지식 전파? 배움은 알아서, 선생은 가이드하는 사람
 
수업에서 학생들은 꼭 자신의 경험, 나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자료사진).
 수업에서 학생들은 꼭 자신의 경험, 나의 이야기를 나눠야 한다(자료사진).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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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까지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정성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인연이 닿아서 가이드를 해줄 수 있는 거죠. 배우는 거는 자기가 스스로 배우는 거예요. 특히 학부 차원에서는 전문 지식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학생들의 인생을 세워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그걸 고민해야죠. 수업이 끝나면 (강의평가에) '힘들었지만 많이 성장했다'고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게 좋아요. 내가 뭘 해줬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가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반대로 열심히 피드백을 해줘도 태도가 거의 변하지 않거나 오히려 더 나빠지는 학생들도 있다. 성장한 학생들조차도 한 학기가 지나면 원래대로 돌아가기도 한다. 그럼에도 안 교수는 '나 알기 수업'을 포기하지 않는다고.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을 테니까. 내 안에 힘이 없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잖아요. 기준이 없으면 갈팡질팡하게 될테고, 세상에 나가면 힘든 선택이 많아질테니 학교에서라도 체급을 올려놔야죠. 조금이라도 안에 씨앗을 심어놔야죠." 

안 교수는 학생들이 단단하게 크길 바란다. 그렇기에 학생들이 조금이라도 빨리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을 시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면담을 오는 학생들에게 휴학을 권한다. 

"다지는 시간이 필요해요. 근데 휴학할 때도 아르바이트 하고, 여행 가고, 자격증 따고, 공부하고... 그런 휴학이 아니라 자기를 내버려 두고 쉬어보라는 거예요. 그것도 대단한 용기거든요. (이렇게 말해도) 알아듣는 학생은 한 10%, 20% 정도 되려나. 나중에 생각이라도 나면 다행이죠. 금방 뭐가 보이지는 않아요, 그래도 하는 거죠."

곧 퇴임을 앞두고 있는 안 교수는 자신이 해 온 '교육'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쯤 스스로에 대한 질문을 시작하면 (졸업 뒤) 평생 얼마나 단단하게 되겠어요. 나는 그걸 확신해요. 이게 진정한 스펙이고, 내 교육의 핵심입니다. 여러분, 나를 아는 건 내 나이에도 중요해요.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했잖아요. 이 말이 최고의 명제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죠. 나를 알아야 나를 사랑할 수 있어요." 

태그:#나알기, #안정임, #서울여대교수, #소크라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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