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무개 왔다 감"

산에 있는 큰 바위에 뗀석기를 만들어 돌로 이름을 새겼다. 문화재도 아니고 의미도 없는 동네 뒷산 큰 바위에 그렇게 낙서를 했다. 동네 뒷산에 왔다 간 것이 뭐 그리 중요한 일이라고 자기 이름에 더하여 왔다 갔다는 동사를 첨부했다. 그렇게 새겨 놓은 이름이 큰 바위에 가득했다. 함께 간 친구들과 나는 우스갯소리로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개는 똥을 남기고, 사람은 낙서를 남긴다고 시시덕거렸다. 공부 좀 한다고 방귀를 뀌었던 한 친구는 울산에 있는 반구대 암각화도 선사시대 사람들의 낙서라고 우기며 낙서를 하는 죄책감에 역사적 근원도 없는 면죄부를 제공했다.

낙서의 역사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온갖 낙서가 있다고 한다. 너무나 유명한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라는 아주 옛날 사람이 쓴 피라미드 내부 벽에 있는 낙서부터 영어, 일본어, 중국어 등 각종 언어로 쓰인 현대인이 쓴 피라미드 외부 벽에 있는 수많은 낙서까지. 물론 여기에 글로벌 국가 한국어가 빠질 수가 없다. 한국어로 쓰인 낙서도 당연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피라미드에 결코 밀리지 않는 유적 이탈리아 콜로세움도 낙서로 몸살을 앓기는 마찬가지다. 2020년에는 30대 아일랜드 남성 관광객이 콜로세움에 자신의 이름 이니셜 두 글자를 6센티 정도 높이로 콜로세움 1층 벽면에 쇠붙이를 활용해 낙서를 하다 현장에서 체포가 되었다. 2015년에는 20대 미국 여성 두 명이 콜로세움 벽에 동전으로 각각 'J'와 'N' 이니셜을 새겨 체포됐고, 2014년에는 40대 러시아 남성이 벽돌 부근에 'K'를 새겨 2만 유로(한화 약 2800만 원)의 벌금을 낸 적도 있다고 한다.   2022년 6월 서울시 청계천에 설치된 베를린 장벽 일부에 스프레이로 그려진 낙서가 발견되었다. 이 베를린 장벽은 2005년 독일 베를린시가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실제 베를린장벽의 일부를 서울시에 기증한 것이었다. 1989년 독일이 통일되면서 철거된 뒤 베를린 마르찬 공원에 전시됐던 높이 3.5m, 폭 1.2m, 두께 0.4m인 장벽 일부였다. 당시 검거된 범인은 민족의식과 평화를 위한 예술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본인의 의류 브랜드를 가장 크고 눈에 띄게 그려 넣은 것을 보면 장사를 위한 '노이즈 마케팅'일뿐이었다.

낙서로 훼손되기 전 베를린 장벽에는 서독 쪽의 장벽면은 낙서로 가득했지만 동독 쪽 장벽면은 아주 깨끗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독일 통일 전 베를린 장벽의 서독 측에서는 시민들이 장벽에 마음대로 접근할 수 있어서 낙서가 넘쳐났다고 한다. 하지만 동독은 베를린 장벽에 대한 엄격한 통제로 인해 낙서가 없이 깨끗했다고 한다. 낙서라고 하지만 그 낙서는 서독인들과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들의 이산가족 상봉을 염원하는 인류애와 평화를 기원하는 메시지가 기록된 문화유산이었던 것이다. 범인은 이러한 베를린 장벽의 역사적 가치를 무시하고 영원히 훼손한 것이었다.  
베를린 장벽의 역사적 가치를 무시하고 영원히 훼손한 범인의 SNS. 그는 상업적 홍보를 위하여 낙서를 노이즈마케팅에 이용했다.
▲ 청계천 베를린장벽 낙서범의 SNS 베를린 장벽의 역사적 가치를 무시하고 영원히 훼손한 범인의 SNS. 그는 상업적 홍보를 위하여 낙서를 노이즈마케팅에 이용했다.
ⓒ 인터넷 커뮤니티

관련사진보기

 
낙서의 이유

지난 12월 16일 국립고궁박물관 방향 경복궁 서쪽 담벼락에 스프레이로 낙서가 돼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붉은색과 푸른색 스프레이로 '영화공짜' 문구와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는 문구가 반복적으로 큼지막하게 낙서가 되어 있었다. 17일 밤에는 누군가 경복궁 영추문 왼쪽 담벼락 특정 가수의 이름과 앨범 제목 등을 써놓았다.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1차로 낙서를 한 10대의 남녀 범인들은 지인으로부터 "불법 동영상 공유 사이트를 경복궁에 낙서로 홍보해 주면 돈을 주겠다"라는 제안을 받고 함께 범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2차로 경복궁 담벼락을 훼손한 모방범은 자신의 블로그에 "난 예술을 했을 뿐"이라는 글을 올리며 현재까지 반성할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낙서를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먼저 자신의 이름이나 이니셜, 문구 등을 새김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남기고 싶은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란 가장 원초적인 이유가 있다. '○○ 왔다 감'과 같은 문구의 유치한 낙서가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또한 연인들의 사랑을 영원히 간직하기 위해 이름이나 문구를 새기는 경우도 많다. 

예전 일제강점기나 군사정권 시대에도 낙서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공중화장실에는 일제에 대한 욕설과 이완용에 대한 욕에 관한 낙서가 많았다고 한다. '여기는 이완용 식당', '천황 바보', '조선독립만세'와 같은 낙서를 통한 소극적이지만 강렬한 독립운동이 있었고 군사정권 시절에도 민주화를 갈망하며 군사독재정부를 규탄하는 낙서가 시내 곳곳에 몰래 출몰하곤 했다. 이는 언론과 자유로운 목소리가 통제되던 시대에 시민들이 할 수 있었던 저항의식의 상징이었다.  
12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방향 경복궁 서쪽 담벼락에 붉은색과 푸른색 스프레이로 낙서가 적혀있다.
 12월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방향 경복궁 서쪽 담벼락에 붉은색과 푸른색 스프레이로 낙서가 적혀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낙서는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오래된 문화 현상이지만, 문화재 낙서는 문화재의 가치를 손상시키고 파괴하는 범죄일 뿐이다. 한번 훼손된 문화재는 원래 형태로 복원하기는 어렵다. 원래 형태에 가깝게 수리하는 것일 뿐이다. 2008년 방화로 불탄 숭례문과 지금의 숭례문은 국보이며 이름은 같지만 엄연히 다르다. 2008년의 숭례문은 이미 불타고 사라졌다.

이번에도 경복궁 낙서 범인들에 대한 전문가와 시민들의 여론은 언제나 그랬듯이 강력한 처벌을 통한 재발방지로 수렴된다. 문화재보호법 제92조 제1항은 "국가지정문화재를 손상, 절취 또는 은닉하거나 그 밖의 방법으로 그 효용을 해한 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과거 언양읍성 성벽 약 70m 구간에 붉은 스프레이로 미국을 비하하는 내용과 욕설의 낙서를 했던 범인은 문화재보호법 위반과 공용 물건 손상 등 혐의로 기소됐고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다. 국가지정문화재는 아니었지만 앞서 언급한 '베를린장벽 훼손 사건'의 범인에게는 벌금 500만 원과 1500만 원 민사 배상 판결이 내려졌다.

아무리 처벌이 무겁고 엄청난 손해배상이 내려진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문화재를 훼손하는 사건은 벌어질 것이다. 법에 의한 강력한 처벌과 정부와 시민들의 감시도 '상업성에 물든 치기 어린 관종들의 일탈' 앞에는 무력해진다. 지금도 문화재가 있는 곳을 포함한 사회 곳곳에서 '관종'들은 버젓이 활동하며 '일탈'을 준비하고 있다. 그래서 참 어려운 문제다.

덧붙이는 글 |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함께 싣습니다.


태그:#경복궁낙서, #낙서의역사, #베를린장벽낙서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가는 이야기에 행복과 미소가 담긴 글을 쓰고 싶습니다. 대구에 사는 시민기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