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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를 여행중이다. 지난 11월 23일,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 주의 암석 사막을 트레킹했다.[편집자말]
산 리노 마을의 작은 성당, La mision de San Ignacio de loyola
 산 리노 마을의 작은 성당, La mision de San Ignacio de loyola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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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리노(San Lino) 마을은 산 프란시스코산맥(Sierra de San Francisco)의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앞에 붉은 너덜겅이 아침햇살에 더욱 붉어 보인다. 화산암 너덜겅의 정상 중앙에 흰 십자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사람이 올라갈 길이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틀 뒤 아내가 먼저 용기를 냈다. 내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작은 성당, La mision de San Ignacio de loyola 마당에서 서성이는 동안 아내는 벌써 산의 중턱에서 점으로 보였다. 아내를 뒤따랐다. 바위와 선인장 사이에 십자가로 난 길이 있었다. ​

고도가 높아질 때마다 산 리노는 물론 산 이그나시오(San Ignacio) 읍내까지 오아시스 마을의 윤곽이 드러났다. 산 이그나시오강(San Ignacio river)의 흐름을 따라 자란 야자수 밭이, 그리고 그 야자수 푸른 숲을 따라 점점이 집들이 자리 잡은 모습까지...
 
오아시스 마을인 산 리노
 오아시스 마을인 산 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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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덜겅 너머의 암석사막
 너덜겅 너머의 암석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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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아래에는 과달루페 성모(Virgen de Guadalupe)님이 모셔져 있다. 아내는 십자가를 돌아 내려와 너럭바위에서 좌선 중이다. ​

너덜겅 너머의 정상은 평평한 고원의 사막으로 이어져있다. 가부좌를 푼 아내가 물었다. "함께 내려갈래요?"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정상에 올라온 김에 사막을 걸어보고 싶었다. 아내는 하산하기 전 몇 가지 경고를 했다. ​

"바위와 바위틈이 좁고 깊어요. 핸드폰을 놓치면 꺼낼 수가 없어요. 방울뱀을 만날 수도 있어요. 일찍 내려오세요."
"동물들은 우리보다 계절 변화를 더 잘 알아요. 겨울인데 동면에 들어갔겠지."​


하지만 사진을 찍다가 스마트폰을 깊은 바위 사이에 떨어트리면 그것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만큼이나 곤란하겠다, 싶었다. 이즘의 여행에서 스마트폰을 잃으면 여행을 중단해야 할 만큼 심각해진다. 카드 결제정보를 비롯해 낯선 곳의 필수적인 지도와 우버 호출 등 각종 필수 앱과 개인 사이트에 로그인하기 위한 인증코드, 한국의 공과금 납부까지... 여권만큼이나 중요한 위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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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올라온 아내는 트레킹 대신 좌선을 택했다.
 먼저 올라온 아내는 트레킹 대신 좌선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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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수로 선인장조차 말라가고 있는 암석사막.
 탈수로 선인장조차 말라가고 있는 암석사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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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곧 길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았다. 홀로 십자가를 대면하고 너덜겅과 사막의 경계를 따라가다가 마른 모래흙이 드러난 곳을 따라 사막 안으로 들어섰다. 눈 아래의 마을이 사라지자 일순 적막이 나를 에워쌌다. 눈높이로는 반대편 끝을 가늠할 수 없고 오직 하늘과 땅의 극명한 대비만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종류의 식물들은 바위틈에서 겨우 싹을 낸 다음 부피생장을 극도로 줄인 듯 작았다. 겨우 줄기를 낸 식물들은 온통 가시로 무장하고 있다. 가시가 돋은 선인장 큐티클조차 손톱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호흡과 광합성을 위해 필수적인 잎은 비가 거의 오지 않은 이 극한의 땅에서 탈수와 싸워야 한다. 표면적을 가장 적게 하는 방법은 가시로 탈바꿈할 수밖에 없다. ​

식물과 스치기만 해도 날카로운 가시가 옷을 찢거나 옷을 뚫고 들어와 피부를 찌른다. 두어 번 피부가 찢기고 나니 나무에 가까워지는 것조차 두렵다. 가시는 자신을 노리는 여러 초식동물들뿐만 아니라 나 같은 잡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에도 효율적인 방식이다. ​

눈에 보이는 식물 가시는 조심스럽게 피할 수는 있다. 발밑의 신발을 뚫고 들어오는 가시는 경우가 다르다. 평평한 맨땅이라고 밟은 땅에 박힌 가시는 눈에도 띄지 않는다. 크록스가 내가 가진 유일한 신발인 상황에서 그 동안 가볍고 편안했던 장점이 최악의 단점으로 바뀌었다.

발포수지의 특성상 발 아래의 모든 가시가 스펀지에 바늘이 꽂히듯 신발에 박혀서 발바닥을 찌른다. 긴 가시는 바로 피부를 뚫고 들어온다. 신발에 박힌 채 부러진 가시는 바위 모서리를 밟을 때 마다 솟아올라 못이 박힌 형구처럼 발바닥 구석구석을 찌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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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들어갈 때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사막을 들어갈 때는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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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체를 찾아 사막위를 선회중인 독수리
 사체를 찾아 사막위를 선회중인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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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한 마리가 푸른 잎 사이를 날아 모습을 보여주었다. 절로 막혔던 숨이 터지듯 '휴' 소리가 났다. 내 숨에 내가 놀란다. 모든 생명이 살아남기 위한 몸짓으로 지어진 형상 사이를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가혹함이 숭고함의 뿌리 같다. 나비는 나를 한 바퀴 돌아 사라졌다. 이 외롭고 적막한 곳에서는 나비가 동료가 된다. ​

나의 동력이었던 모든 욕망이 사라졌다. 더 이상 앞으로 내 디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너덜겅을 향해 돌아섰다. 푸른 하늘에 검은 움직임이 보였다. 산 아래에서 높이 보였던 독수리였다. 그가 여전히 비행 중인 것을 보니 아직 오늘의 첫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것 같다. 아직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사체가 되어주지 않은 것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내가 식재료가 되어주는 것일 성싶다.​

스마트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자크로 잠갔다. 내가 올라왔던 길은 너무 멀리 있다. 길을 포기하고 마을 방향으로 난 너덜지대를 하산길로 택했다. 체중이 실린 크록스가 바위의 특정 부위에 닿을 때마다 빼지 못한 가시가 발바닥을 찔렀다. 발바닥이 바위에 닿지 않도록 네 발로 산을 내려왔다. 빨간 털을 가진 작은 새 한 마리가 바위 위를 기고 있는 낯선 길짐승을 내려다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바하칼리포르니아반도, #멕시코여행, #사막트레킹, #산리노, #산이그나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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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다양한 풍경에 관심있는 여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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