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 바하칼리포르니아를 여행중이다. 지난 11월 23일,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 주의 암석 사막을 트레킹했다.[편집자말] |
큰사진보기
|
▲ 산 리노 마을의 작은 성당, La mision de San Ignacio de loyola |
ⓒ 이안수 | 관련사진보기 |
산 리노(San Lino) 마을은 산 프란시스코산맥(Sierra de San Francisco)의 언저리에 자리하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눈앞에 붉은 너덜겅이 아침햇살에 더욱 붉어 보인다. 화산암 너덜겅의 정상 중앙에 흰 십자가가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 사람이 올라갈 길이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이틀 뒤 아내가 먼저 용기를 냈다. 내가 마을을 한 바퀴 돌아 작은 성당, La mision de San Ignacio de loyola 마당에서 서성이는 동안 아내는 벌써 산의 중턱에서 점으로 보였다. 아내를 뒤따랐다. 바위와 선인장 사이에 십자가로 난 길이 있었다.
고도가 높아질 때마다 산 리노는 물론 산 이그나시오(San Ignacio) 읍내까지 오아시스 마을의 윤곽이 드러났다. 산 이그나시오강(San Ignacio river)의 흐름을 따라 자란 야자수 밭이, 그리고 그 야자수 푸른 숲을 따라 점점이 집들이 자리 잡은 모습까지...
정상 아래에는 과달루페 성모(Virgen de Guadalupe)님이 모셔져 있다. 아내는 십자가를 돌아 내려와 너럭바위에서 좌선 중이다.
너덜겅 너머의 정상은 평평한 고원의 사막으로 이어져있다. 가부좌를 푼 아내가 물었다. "함께 내려갈래요?"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정상에 올라온 김에 사막을 걸어보고 싶었다. 아내는 하산하기 전 몇 가지 경고를 했다.
"바위와 바위틈이 좁고 깊어요. 핸드폰을 놓치면 꺼낼 수가 없어요. 방울뱀을 만날 수도 있어요. 일찍 내려오세요."
"동물들은 우리보다 계절 변화를 더 잘 알아요. 겨울인데 동면에 들어갔겠지."
하지만 사진을 찍다가 스마트폰을 깊은 바위 사이에 떨어트리면 그것은 바다에 빠뜨리는 것만큼이나 곤란하겠다, 싶었다. 이즘의 여행에서 스마트폰을 잃으면 여행을 중단해야 할 만큼 심각해진다. 카드 결제정보를 비롯해 낯선 곳의 필수적인 지도와 우버 호출 등 각종 필수 앱과 개인 사이트에 로그인하기 위한 인증코드, 한국의 공과금 납부까지... 여권만큼이나 중요한 위치가 되었다.
아내는 곧 길 모퉁이를 돌아 보이지 않았다. 홀로 십자가를 대면하고 너덜겅과 사막의 경계를 따라가다가 마른 모래흙이 드러난 곳을 따라 사막 안으로 들어섰다. 눈 아래의 마을이 사라지자 일순 적막이 나를 에워쌌다. 눈높이로는 반대편 끝을 가늠할 수 없고 오직 하늘과 땅의 극명한 대비만이 눈에 들어왔다.
모든 종류의 식물들은 바위틈에서 겨우 싹을 낸 다음 부피생장을 극도로 줄인 듯 작았다. 겨우 줄기를 낸 식물들은 온통 가시로 무장하고 있다. 가시가 돋은 선인장 큐티클조차 손톱이 들어가지 않을 만큼 단단하다. 호흡과 광합성을 위해 필수적인 잎은 비가 거의 오지 않은 이 극한의 땅에서 탈수와 싸워야 한다. 표면적을 가장 적게 하는 방법은 가시로 탈바꿈할 수밖에 없다.
식물과 스치기만 해도 날카로운 가시가 옷을 찢거나 옷을 뚫고 들어와 피부를 찌른다. 두어 번 피부가 찢기고 나니 나무에 가까워지는 것조차 두렵다. 가시는 자신을 노리는 여러 초식동물들뿐만 아니라 나 같은 잡식동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는 것에도 효율적인 방식이다.
눈에 보이는 식물 가시는 조심스럽게 피할 수는 있다. 발밑의 신발을 뚫고 들어오는 가시는 경우가 다르다. 평평한 맨땅이라고 밟은 땅에 박힌 가시는 눈에도 띄지 않는다. 크록스가 내가 가진 유일한 신발인 상황에서 그 동안 가볍고 편안했던 장점이 최악의 단점으로 바뀌었다.
발포수지의 특성상 발 아래의 모든 가시가 스펀지에 바늘이 꽂히듯 신발에 박혀서 발바닥을 찌른다. 긴 가시는 바로 피부를 뚫고 들어온다. 신발에 박힌 채 부러진 가시는 바위 모서리를 밟을 때 마다 솟아올라 못이 박힌 형구처럼 발바닥 구석구석을 찌른다.
나비 한 마리가 푸른 잎 사이를 날아 모습을 보여주었다. 절로 막혔던 숨이 터지듯 '휴' 소리가 났다. 내 숨에 내가 놀란다. 모든 생명이 살아남기 위한 몸짓으로 지어진 형상 사이를 한 발 한 발 내딛다 보니 가혹함이 숭고함의 뿌리 같다. 나비는 나를 한 바퀴 돌아 사라졌다. 이 외롭고 적막한 곳에서는 나비가 동료가 된다.
나의 동력이었던 모든 욕망이 사라졌다. 더 이상 앞으로 내 디딜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너덜겅을 향해 돌아섰다. 푸른 하늘에 검은 움직임이 보였다. 산 아래에서 높이 보였던 독수리였다. 그가 여전히 비행 중인 것을 보니 아직 오늘의 첫 끼니를 해결하지 못한 것 같다. 아직 누군가가 자신을 위해 사체가 되어주지 않은 것이다. 그가 바라는 것은 내가 식재료가 되어주는 것일 성싶다.
스마트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자크로 잠갔다. 내가 올라왔던 길은 너무 멀리 있다. 길을 포기하고 마을 방향으로 난 너덜지대를 하산길로 택했다. 체중이 실린 크록스가 바위의 특정 부위에 닿을 때마다 빼지 못한 가시가 발바닥을 찔렀다. 발바닥이 바위에 닿지 않도록 네 발로 산을 내려왔다. 빨간 털을 가진 작은 새 한 마리가 바위 위를 기고 있는 낯선 길짐승을 내려다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