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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책표지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책표지
ⓒ 헤르츠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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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발간된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는 용기에 관한 책이다. 섭식장애와 심리적 외상의 치유 과정에서 의지가 꺾였을 때 다시 일어설 수 있게 작은 변화를 만드는 용기 말이다.  '공시(공무원시험) 합격'과 '몸무게 45kg'만을 바라보며 20대 절반을 우울과 섭식장애로 보내다가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마음을 돌아보기 시작하고, 미술 심리치료를 통해 다시 자신의 참모습과 새로운 삶의 궤도를 찾아낸 정예헌 작가의 자기돌봄 에세이다. 

책에는 연애와 가족, 심리에 대한 이야기가 주로 나와있다. 잘못된 연애로 가스라이팅에 의한 폭력과 섭식장애를 직접 겪으며 심리적 외상을 입는 과정과 그 고통의 현장을 드라마틱한 글솜씨로 묘사하고, 심리적 외상에 의한 트라우마와 강박과 중독 극복 과정을 학술적 해석을 곁들여 고통을 극복하려는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도록 설명하고 있다. 외상 후 회복력과 성장하는 마음에 대한 보고서이다.

상처받은 이들에게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힘을 전달하고자 하는 정예헌 작가를 지난 11월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나다워지는 것'의 의미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저자 정예헌.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저자 정예헌.
ⓒ 정예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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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괜찮다. 지금 내 모습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 몸매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먹는 것, 남들이 자는 시간에 나도 잠드는 것이 간절한 꿈이었기에. (중략) 마른 몸매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것이 나를 나답게 했다. 결국 나의 목표는 '나다워지는 것'이었다" (책 247쪽)

- 섭식장애, 불안한 연애, 오랜 고시 생활 매우 힘든 20대를 보내셨는데 이 시기를 글로 쓰게 된 계기가 있나요?

"섭식장애로 한창 고통받던 시기, 커뮤니티에서 다른 이들의 게시물을 보며 같은 아픔을 느꼈던 적이 있어요. 하지만 저 또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었기 때문에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어 아쉬웠죠. 어느 순간 극복이라는 개념도 떠올리지 않을 만큼 좋아진 무렵에 제 이야기를 책으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서 섭식장애 커뮤니티에서 달리 해줄 수 있는 말이 없다는 안타까움과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던 것이 생각났어요. 아직은 미숙하고 부족하지만, 글을 통해 이제는 괜찮아질 거라고 진솔하게 위로할 수 있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 오랜 고시 생활 후에 부모님과의 관계가 투자자와 노동자의 관계로 변했다고 책에 서술하셨는데, 그게 슬프면서 한편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과 관계 개선을 원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이를 위해 해야 할 행동은 무엇일까요?

"심리학자 엘리스의 이론 중 '반드시~해야만 해'라는 생각을 하는 당위주의라는 것이 있어요. 그 대상은 나, 타인, 조건(상황이나 환경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기에 이 '반드시~ 해야만 한다'는 기대가 이루어지기는 어려운데요.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으면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을 때마다 좌절감과 그에 따른 부정적인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로 인해 관계도 악화될 수 있겠지요.

저도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부모라면 무조건 자녀를 사랑해야만 한다'라는 기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이고, 부모도 결국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러나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관계에 대한 기대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줄어들었습니다. 내가 연약함을 인정하고, 내가 연약하듯 타인도 연약할 수 있음을 받아들이기. 당위주의라는 올가미에서 나와 상대방을 풀어 줄 때 마음도, 관계도 개선될 수 있을 거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저자 정예헌.
 저자 정예헌.
ⓒ 정예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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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 고시 생활, 잘못된 연애 모두 하루빨리 정리해야 할 문제들인데 포기하기 힘든 이유는 내일은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인 것 같아요. 현실에서는 끝까지 도전하라는 메시지도 많고요. 포기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 상황을 나아지게 할 방법이 있을까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해결해야 할 대상이 타인이 되었건 상황이 되었건, 결국 변화하거나 주체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나 자신이니까요.

대상이 되는 문제를 내가 감당하고 해결할 수 있는지, 해결할 수 있다면 나의 어떤 능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다면 어떤 능력을 어느 정도 계발해서 해결 가능한지, 그렇게 하는데 내가 들여야 하는 시간과 노력이 어느 정도인지, 그렇게 노력해서 얻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인지 생각해 보는 것. 

또 지금 당장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면 잠시 쉬며 스스로를 정비하는 시간을 가진 뒤 재도전하거나, 다른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 것 모두 상황을 나아지게 할 방법들인데요. 기본적으로 스스로에 대해 먼저 알아야 상황 또한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전이별, 차분하되 단호하게... 변화는 비난이 아닌 사랑에서 온다"

- '안전 이별'이란 단어가 따로 있을 정도로 데이트 폭력이나 범죄가 심각하다고 생각됩니다. 공포심 때문에 헤어지고 싶어도 헤어지지 못하는 여성들이 있을 텐데, 가장 안전하게 이별하는 방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 상대를 만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만약 지금 교제하고 있는 상대가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다고 생각되어 이별을 고려하고 있다면, 관계를 지속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피해를 볼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두렵더라도 헤어지는 것을 결단하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이별을 통보할 때는 평정심을 잃지 않고 상대를 자극하지 않는 태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연인에게 공포심을 느끼게 할 정도로 폭력적인 성향을 보인 사람이라면 자극에 쉽게 반응하거나 흥분하여 돌발적인 행동을 할 위험이 있습니다. 갑작스럽지 않게, 하지만 단호하게 이별을 통보하고 심한 비난이나 공개적인 망신으로 상대방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또 범죄 증거가 있다면 삭제하지 말고 남겨 주시면 법적 절차를 진행할 때 도움이 됩니다."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저자 정예헌.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저자 정예헌.
ⓒ 정예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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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꺾일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꺾여도 그냥 가겠다고 마음먹고는 조금씩 마음이 회복되어 갔다" (10쪽)

- 책에 나오는, 음식 칼로리가 아닌 그 음식을 먹을 당시 감정과 왜 그렇게 느꼈는지 쓰는 '식단일기'가 특이합니다. 식단일기를 쓰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세요. 또 식단일기를 추천해 주고 싶은 사람들은 누구인가요?

"식단일기라고 썼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식단-감정 일기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식단일기를 적는 방법은 매일 그날 먹은 음식의 종류와 양, 그날 기억에 남는 감정적 사건을 적습니다.

칼로리가 아닌 감정적 사건을 기록하는 이유는 음식을 먹을 때 어떤 생각이나 감정들이 선행하거나 존재하는지 관찰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시간이 지나면 식단일기가 데이터가 되어줍니다. 전반적인 식습관을 비롯하여 어떤 음식을 어떤 상황에 먹게 되는지 감정과 섭식의 개인적 연관성 등도 이해하게 됩니다. 

처음에 시작이 어렵지만 두고두고 유용한 자료로 쓰게 되기 때문에 섭식장애를 겪고 있는 모든 분께 추천하고 싶습니다."

- 앞으로 작가로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

"읽는 사람의 삶에 변화를 불러오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변화는 비난이 아닌 사랑에서 온다고 합니다. 말뿐인 위로가 아닌, 끊임없이 성찰하고 제 삶에 먼저 적용하여 가장 좋은 것들을 모아 전달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제가 세상과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전할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 섭식장애와 심리적 외상을 이겨낸,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힘

정예헌 (지은이), 헤르츠나인(2023)


태그:#꺾여도그냥하는용기, #정예헌, #섭식장애, #심리적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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