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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시작, 입동과 소설이 지나면서 주부들의 마음은 바빠온다. 일 년 동안 가족들 밥상에 오를 김치를 담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맘때쯤이면 만나는 이웃끼리도 "김장은 하셨나요?"라고 물어볼 정도로 우리 생활에 김장은 중요한 식문화다. 주부들도 김장을 하고 난 다음에야 겨울 준비를 끝낸 듯 마음이 홀가분하다.

요즈음 젊은 세대들은 김치 담글 시간도 없이 바쁘게 살기 때문인지 많이 사 먹고살지만 우리 세대는 김장을 빠트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나는 올해로 결혼 55년 차, 그 많은 세월 동안 한 번도 김장을 빼놓지 않고 해 왔다. 그렇게 사는 줄만 알았다. 그게 습관이 되어 지금까지 김장을 하면서 살고 있다. 

딸들을 늘 직장 일이 많아 바쁘다. 아직은 자식들에게 도움을 주고 살고 싶다. 내가 김치를 담가 주지 않으면 사서 먹거나 다른 방법이 있겠지만 지금은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강이 허락이 되어 기쁜 일이다.
 
어제 남편과 함께 김장하기
▲ 김장하기 어제 남편과 함께 김장하기
ⓒ 이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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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십이 넘은 노부부 두 사람이 김장을 했다. 나이 팔십인 나와 곧 있으면 팔십 중반도 넘는 남편이 놀이처럼 함께 했다. 다른 때는 옆에 사는 동생이 김치 버무리는 일을 도와주었지만 동생은 아들 딸 사는 곳에 출타를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남편과 함께 둘이서만 김치를 담갔다. 사실 우리 둘은 김치를 즐겨 먹지 않는다. 먹는 음식도 나이와 함께 비례한다. 나이 들면 치아도 부실 하고 매운 것도 잘 먹지 못한다. 그런데도 김장을 하는 것은 혹여 딸들이 김치를 사서 먹을까 싶어 김장을 해서 김치 냉장고에  가득 채워놓는다.  

조금 힘은 들어도 아직은 해줄 만해서 김장하는 일도 기쁘다. 자식을 향한 사랑이 없으면 김장은 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그동안 살아왔던 날들, 당연했던 일상도 나이 팔십이 되고서야 하루하루가 그렇게 고맙고 소중할 수가 없다. 밝은 햇살 아래 빨래를 너는 순간조차도 눈물나게 고맙고 감사하다. 나이 들면서 느끼는 감성들이 이토록 남다르다.

사실 지금 하는 김장은 일도 아니다. 나는 수돗물도 없었을 때 샘에 가서 배추를 씻어오거나 그도 아니면 시골 냇가에 가서 얼음을 깨고 배추를 씻어다 김장하는 모습을 보고 차랐다. 지금은 주문만 하면 배추를 씻어 배달까지 해주니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지... 양념만 준비해서 김치를 버무리면 되니 많이 힘들지는 않다.

김장 김치는 배추김치, 총각김치, 파김치, 돌산 갓김치 골고루 담가 놓는다. 딸만 있는 우리 집은 친정이 마치 김치 공장처럼 엄마 김치 주문이요, 하면 언제나 가져다 먹을 수 있도록 해 놓는다.

남편과 나는 김치 담그는 것도 놀이처럼 한다. 남편을 불러 내가 못하는 일을 남편에게 도움을 청한다. 양념 더 넣어 주기, 배추 옮겨 주기, 뒷정리 등 해야 할 일이 많다.

"여보, 우리는 둘이서 김장도 할 수 있고 얼마나 감사해요."

혹여라도 귀찮다고 할까 봐 나는 미리 남편에게 최면을 건다. 웬만하면 요양원 생활도 할 수 있는 나이지만 우리는 스스로 생활을 하고 자식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도 행복한 일이다. 행복은 생각하기 나름이라서 늘 감사를 외치고 산다.

김치를 담아 김치 냉장고에 가득 채우고 나니 부자가 된 느낌이다. 일 년 내내 우리 가족의 밥상에 오를 김치들, 김치를 먹으며  서로의 사랑도 기억할 것이다. 내가 언제까지 김장을 할 수 있을지, 그건 알 수 없다.

삶은 순간순간 있음이다.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라고 한다. 삶이 녹슬지 않으려면 부지런히 움직이고 정신이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살기를 염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김장,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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