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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곽규현씨는 고교 교사로 33년 근무 뒤 올해 2월 은퇴했습니다.[편집자말]
수능이 다 지나가고 고3 학생들에게는 모처럼 자유로운 시간이 찾아왔다. 그동안의 학습 부담에서 벗어난 해방감에 홀가분한 일상을 맞이하고 있을 것이다.

일선 고교에서는 수능 이후 교육 프로그램에 따라 일과를 운영하고 있으나, 교과 학습은 모두 끝난 상황이라 고3 학생들은 일과 중에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다. 방과 후에는 더 자유롭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다. 고3 학생들은 이 시간들을 어떻게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지 한 번쯤 생각해 봐야 되지 않을까.

나는 지난 세월 오랫동안 교직에 몸담았던 교육자로서 졸업생들의 사례를 이야기해볼까 한다. 졸업한 제자들의 수능 이후의 시간 활용 경험담을 직접 들어보기 위해서 오랜만에 연락을 취했다. 연락을 받은 제자들은 갑작스러운 옛 스승의 전화에 다소 의아한 듯하면서도 모두 반겨주었다. 다들 활기차게 생활하고 있어서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일인 지난 16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여고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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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 고3 때를 회상해보면, 수능 뒤 학교 일과 중에는 여유롭게 보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방과 후에는 어떻게 보냈는지 자세히는 몰라서 속속들이 물어봤다. 대부분 아르바이트를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집에서 쉬는 등 비슷한 활동으로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몇 명은 알차게 시간을 활용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류센터 알바, '어른들이 무시하는 것 같았다'는 제자

우선 제자 A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 닿았다. 그는 2학년 때 우리반 부반장이었으며, 내가 맡은 경제동아리의 부장을 했던 학생이었다. 대학도 경제학과에 지원해 지금 경제학도로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그는 수능 직후 아르바이트를 하기 위해 일자리를 알아보았으나 여의치 않아서, 친구 몇 명과 함께 K 물류센터 일용직으로 일했다고 한다. 저녁 6시부터 시작해 다음날 새벽 3시까지 일하고 일당으로 10만 원을 받는 일이었다. 물류센터에서 택배 물건들을 분류해서 상차하는, 단순하고 반복적인 일을 매주 3회, 그렇게 3개월 동안 일했다고 한다. 그래서 받는 임금은 주급 30만 원~40만 원 정도였다고.

밤시간인데 졸리거나 힘들지는 않더냐고 물었더니, 수면 패턴이 일하는 시간에 맞춰져서 그렇게 잠이 오지는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노동 강도가 세고 겨울철이라 일하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더 기억에 남는 것은, 당시 고3이라며 어리다고 어른들이 자기들을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한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어른들 틈에서 무시당해 섭섭했던 경험이 그의 마음 속에 상당히 강하게 남아 있는 듯했다. 이제 갓 사회로 나온 고3 아이들에게는 노동 현장에서 만나는 어른들이 생각 없이 함부로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나쁜 추억으로 강하게 각인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제자 A는 '세상에서 돈을 버는 게 힘들다'는 것을 처음으로 마음 깊이 깨달았다고 한다. 물류 아르바이트를 통해 밤시간에 일하면서 또 주변 어른들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으며, 사회에서 돈 벌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느낀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그에게는 적지 않은 인생 공부가 돼준 것 같았다.
 
지난 10월, 한 우편물류센터에서 택배 분류작업을 하는 작업자들 모습(자료사진).
 지난 10월, 한 우편물류센터에서 택배 분류작업을 하는 작업자들 모습(자료사진).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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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A는 그 뒤 K 물류센터에서 받은 돈으로 친구들과 국내 여행을 다녔다고 덧붙였다. 평상시에 잘 가지 않았던 지역인 광주를 비롯한 호남지방을 구경하고, 포항 영일만 바닷가를 거닐고, 경주 역사 유적지를 둘러보며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는 여유로움을 즐겼다고도 한다. 자신이 노동해 번 돈으로 친구들과 여행하면서 즐겁게 보낸 시간이 살아가면서 두고두고 회상되는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여행을 하고 남은 돈으로는 대학 입학 이후 생활비에도 보태 썼다고 하니, 자녀의 이런 모습을 보는 부모님께서도 아마 대견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격증 필기 공부, 재능 기부로 동네 아이들 가르치기도 

제자 B는 2학년 때까지만 해도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 사업체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일을 배워서 이어받겠다는 생각이 많았었다. 그런데 3학년이 되면서 생각이 바뀌어 우선 자기가 해 보고 싶은 일을 해 보고, 여의치 않으면 아버지의 사업을 배우겠다고 진로를 수정한 모양이었다. 제자 B가 하고 싶은 일은 요리였다. 생각이 바뀐 그는 2년제 대학 조리과로 가서 요리사 자격증을 따고 요식업종에 취업하여 일을 익히다가, 어느 시기가 되면 직접 음식점을 개업하겠다는 미래를 계획하고 있었다.

그래서 고3 수능 이후에는 요리사 자격증 취득을 위한 준비를 했다고 한다. 먼저 필기시험을 보기 위해 수험서를 사서 꾸준히 봤다고 했다. 학교와 집에서 틈틈이 수험서를 보고 기출문제와 모의고사를 풀어보면서 대비하여 한식과 양식 조리기능사 필기시험을 모두 합격했다. B는 두 개의 필기시험 모두를 끝까지 잘 해냈다며 스스로 뿌듯해하는 모습이었다.

양식은 요리 학원에 다니면서 실기 연습도 했다고 한다. 제자 B는 특히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잘 어울려 놀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와중에 제법 두꺼운 조리기능사 수험서까지 공부했다고 하니, 철이 많이 들었구나 싶었다.

또 다른 제자 C는 이웃 학부모의 부탁으로, 수능 이후 오후 시간에 자기가 사는 동네 공부방에서 초등학생들 학습을 도와주었다고 했다. 국어와 영어, 수학, 과학 같은 교과 학습을 지도하며 재미도 있었지만, 아이들이 말을 잘 듣지 않거나 교과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때는 가르치는 게 정말 힘든 일이라는 걸 느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선생님들께 새삼 존경스럽고 감사했다'고 몇 번이나 강조했다.

제자 C는 그림에 소질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그림 그리기도 지도했다고 덧붙였다. 자신이 가진 재능을 아이들에게 베푸는 일종의 '재능 기부' 활동을 한 것이다. 초등학생들에게 교과 학습과 그림 그리기를 도와주면서 가르치는 보람과 동시에 어려움도 같이 알게 되지 않았을까. 제자들의 여러 이야길 듣다 보니 못본 새 각자의 자리에서 많이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적 자양분이 돼줄 시간 
 
여행 가방(자료사진).
 여행 가방(자료사진).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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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 A는 노동 현장을 경험하고 자신이 번 돈으로 여행하고 생활비에도 보탰다. 제자 B는 요리사 자격증 필기시험 공부를 하고, 실기 연습도 하며 자기 미래를 대비했다. C 또한 이전엔 배우기만 했다면 이제는 자기가 받은 걸 남에게 베풀며 새롭게 깨달은 게 많아 보였다.

다들 수능 이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낸 것 같다. 그때의 경험들이 알게 모르게 내면화되어 그들이 앞으로 살아가는 데 정신적 자양분이 될 것으로 믿는다.

지금 고3 학생들은 졸업 이후 대학으로 진학하든 사회로 진출하든 성인으로 접어드는 길목이라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 이 길목에서 자칫하면 일탈의 길로 빠질 수도 있고, 잘 준비된 성인으로 넘어갈 수도 있다.

건강한 성인이 되기 위해 수능 이후 지금 이 시간들을 허비하지 않고 각자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이나 취미를 즐기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또는 자기 개발의 시간으로 활용해도 좋을 것이다. 무엇을 하든지 몸과 마음을 다해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태그:#수능이후활동, #수능이후시간, #고3수능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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