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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월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상세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8월 24일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2024년 예산안 및 2023~2027년 국가재정운용계획 상세브리핑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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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상속세가 제일 높은 국가이고, 38개국 중 14개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지난 10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 과정에서 추경호 경제부총리가 상속세 개편을 주장하면서 한 말이다. 

추 부총리는 통계를 비틀어 인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삼성전자 세금 감면의 수혜가 이재용 회장에게 집중되는 게 아니냐는 질문에 "국민연금이 삼성전자의 최대주주나 마찬가지"라며 국민 전체에게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다. 사실과 거리가 있다. 국민연금의 지분은 7.68%에 그치지만, 삼성생명의 지분은 8.51%고, 이재용 일가의 우호지분을 합산하면 20.46%이며 무엇보다 외국인 지분율은 50%를 넘나든다(관련 링크). 

유류세 인하의 당위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유류세가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라고 주장한다. 역시 사실이 아니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세율 인하 전 비교 가능한 OECD 23개국 중 휘발유 유류세는 20위, 경유는 15위였다. 

사회적 영향력이 있는 인사가 인용하는 비틀린 지표는 지속적으로 진영의 논거로 회자되어 논쟁을 오염시키기 때문에 주의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번 '상속세 OECD 최고' 발언도 역시 그렇다. 

대한민국 상속세율이 OECD 최고? 정답은 '모른다'

대한민국은 OECD 국가 중 상속세가 가장 높은 국가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른다'. 명목최고세율 기준으로는 높다고 말할 수 있지만, '최고'라고 단언할 수는 없다. 실제 부담하는 세금을 기준으로 한 실효세율로 보면 명목세율에 비해 대폭 하락하는데 이와 관련해서는 국가간 세제가 워낙 상이해서 신뢰할 만한 비교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선 상속세 명목최고세율 비교를 보면 대한민국이 OECD 최상위권인 것은 맞지만 '최고'는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이 지난 2021년 5월 발표한 자료 <국제비교를 통한 우리나라 상속세제 개편방안>을 보면 상속세 명목최고세율 기준으로 대한민국은 공동 4위로 나타난다(벨기에 80%, 프랑스 60%, 일본 55%, 독일·한국 50%). 부가세나 주식할증 등 다른 옵션을 고려해도 60%로 4위다(스페인 81.6%, 벨기에 80%, 일본 66%, 프랑스·한국 60%).

한국이 OECD 최고가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경우 대주주 할증이 붙을 때 명목최고세율에 한정하면 일본(55%)을 제치고 1위가 된다.   

반토막나는 실효세율

그러나 이런 방식의 비교가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명목은 명목일 뿐이다. 현실의 과세제도에는 수많은 공제와 감면이 존재해서 실제 납부하는 세금은 크게 낮아지는 경우가 많다. 

경제단체와 경제지, 경제부총리가 되뇌는 상속세 최고세율 60%도 실질을 따져보면 반토막이 난다. 2022년 국세통계연보 기준 상속세 최고세율 적용 대상자는 756명인데, 다수가 최고세율 구간에 걸쳐 있는 것이 확실한 상속세 납부자 상위 10% 1245명의 실효세율은 39.2%(과세표준 9.3조 원, 결정세액 3.6조 원)로 20% 이상 뚝 떨어지고, 각종 공제를 감안한 실제 신고상속재산 기준으로 하면 29.2%(신고재산 12.4조 원, 결정세액 3.6조 원)로 절반 이하로 떨어진다. 

상속세 전체로 확장해 보면 과세표준을 분모로 하는 실효세율은 31.4%(과세표준 15.6조 원, 결정세액 4.9조 원)이고 신고재산 기준으로는 18.5%(신고재산 26.6조 원, 결정세액 4.9조 원)로 떨어진다. 이것조차도 '과세되는 유산'에 한정한 것이다. 전체 상속재산(96.1조 원)을 기준으로 세율을 계산해 보면 세율은 5.1%에 그친다. 

정리하자면 추경호 부총리나 경제신문의 '상속세 OECD 최고' 발언 앞에는 '자식에게 기업을 물려주는 경우 상속세 명목최고세율'이라는 조건 문구가 생략되어 있는 것이고, 이는 정확히 대한민국 0.01% 재벌들의 고민에 대한 것이다. 

상속세에만 적용되는 선택적 글로벌 스탠더드

다수 국가에서 상속세가 없거나 저율과세하는 건 틀린 이야기가 아니다. 그러나 이런 국가들도 부의 쏠림과 대물림을 막기 위한 강력한 장치들을 갖추고 있다. 

예컨대 복지국가의 대명사인 스웨덴은 2005년 상속세를 폐지했다. 그러나 스웨덴의 세금 부담이 낮다고 누구도 생각지는 않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스웨덴의 조세부담률(국내총생산대비 조세부담수준)은 대한민국보다 1.5배 높다. 최저세율 32%에 연소득 6800만 원부터 최고세율 52%로 과세하는 소득세율은 헉 소리가 날 정도다. 

스웨덴은 상속세를 폐지하고 자본이득세를 도입했는데 상속 자체에는 과세하지 않지만 주식을 처분하면 차익의 3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 대한민국은 어떤가? 멀쩡하게 도입하려 했던 금융투자소득세조차도 기약 없이 유예하는 나라다. 대주주양도세가 있긴 하지만 스웨덴에 비해 세율이 낮은데 윤석열 정부는 이것마저도 느슨하게 만들기 위해 운을 떼는 중이다. 

상속세 개편이 글로벌 스탠더드일 수는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형편없이 낮은 소득세율, 자본이익에 대한 과세는 왜 글로벌 스탠더드가 적용되지 않는 것인가? OECD 뒤에서 세 번째인 사회복지지출 비율은 어떤가? 스웨덴처럼 상속세를 폐지해야 한다면, 왜 스웨덴 재벌 발렌베리 가문이 부담하는 사회적 요청도 함께 이야기하지 않는 것인가.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산별협약이 노동자 94%의 임금을 결정하는 체계는 어떤가. 왜 글로벌 스탠더드까지도 '선택적'인가.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부를 조직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구성원 인민의 몫이다. 열심히 일군 재산이나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부조리하게 느껴질 수는 있다. 그리고 힘이 있는 이들은 여론과 정치를 움직일 수 있고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그들이 뜻하는 대로 제도화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태어난다는 헌법의 이상은 어떤가. 사회적 특수계급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공동체의 규칙은 어떻게 되는가. 이미 대한민국은 상위 10%가 자산의 60%를, 하위 50%가 자산의 5%를 소유하는 나라다. 글로벌 스탠더드의 가면을 쓴 정부의 상속세 완화 주장이 걱정되는 이유다. 

태그:#상속세, #추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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