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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균 노동자의 죽음 이후 5년이 흘렀습니다. 5주기를 맞아, 각자의 자리에서 기억하는 김용균과 안전한 일터에 대한 고민을 담았습니다. 다시 5년 뒤에는 모두가 안녕하기를 바라며 김용균에게 보내는 편지를 싣습니다.[기자말]
2018년 12월 11일 충남 서부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빈소
 2018년 12월 11일 충남 서부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용균씨 빈소
ⓒ 지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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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11일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 기자회견장에서 김용균 동지의 비보를 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5년이 흘렀네요. 그날 늦게 귀가한 나에게 아들 녀석이 이렇게 물었지요.

"아빠 웬 술을 이렇게 많이 마셨어?"

늘 그렇듯 장난치며 얼버무리려 하려는데 마침, TV 뉴스에서 용균이의 사고 소식이 방송되고 있었어요. 나는 참지 못하고 그대로 엉엉 울어버리고 말았죠. 아내와 딸과 아들에게 용균이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 이후 우리 집에서는 세월호와 용균이 관련 뉴스가 나오면 무조건 채널을 돌리게 되었지요.

왜 그리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났을까 돌이켜 보니... 세월호 사건 때는 자식 같은 어린 학생을 지키지 못했다는 책임감에 슬퍼했다면, 용균이는 자식 같기도 한 동지여서 슬픔과 분노가 겹쳤던 것 같아요.

그 자욱한 석탄 가루와 귀청을 울리는 컨베이어의 소음과 한 치 앞도 보기 힘든 어둠 속에서 랜턴마저 고장 나 휴대전화 불빛 하나로 혼자 작업을 해야만 했던 용균이…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이유로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며, 목숨을 위협받는 막장 같은 근무 환경을 감수해야 했던 용균이...

어느 집회에서 용균이 어머니가 "그렇게 지옥 같은 작업 현장을 알았다면 절대 보내지 않았을 거다"라고 절규했어요. 보면서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죠. 내 자식과 후배들이 어떤 직업에서든 마주할 위험이고 현재 우리가 일하고 있는 현장에서 늘 경험하는 차별이라는 것이 더 슬프고 분노하게 했었죠.

"옛날에 동네 우물에서 아이들이 놀다가 빠져서 다치거나 죽으면, 동네 사람들이 다시는 아이들이 빠지지 않게 조치를 했다. 더 이상 용균이와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안된다, 일하다 죽는 노동자가 없어야 한다."

용균이 어머니 김미숙 동지의 외침을 들으며 다짐했습니다. 그래! 막아보자, 막아내자!

우리가 싸울 수 있었던 원동력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에서는 정규직 전환을 목표로 투쟁했어요. 벌써 4년 6개월이네요. 지금은 많이 아쉽지만 자회사 전환을 목전에 두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는 일하다 죽지 않는 노동 현장을 만들기 위해 '비정규직 이제그만 1100만 비정규직 공동투쟁'과 함께 중대재해 기업 처벌법을 제정을 요구하는 여러 시위를 벌였고, 국회 앞 단식 농성과 서울 도심을 가로지르는 오체투지 투쟁 등을 함께 했지요. 하지만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지요.

비록 누더기이지만 법률이 제정되어 노동현장의 안전이 조금이나마 나아지리라 기대했었죠. 그러나 현실은 새로운 평가표, 각종 양식, 점검표, 지적 사항 등 실질적이고 근본적인 조치보다는 사고 시 경영진의 책임 회피를 위한 수많은 서류만 넘쳐나고 있어요. 기존업무에 다수의 문서 업무까지 추가되어 안전에 대한 인식 자체를 부정하는 기류까지도 발생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니 아직도 수많은 노동 현장에서 일상을 지키기 위해 출근했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누더기 중대재해 처벌법마저도 개악하기 위해 윤석열 대통령까지 나서서 자본의 일방적인 요구를 수용하려 하고 있으니, 우리는 더 강력한 투쟁으로 이들의 중대재해 처벌법 개악 시도를 저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다짐은 미완성이기에 용균이를 기억하며 1100만 비정규직 동지들과 함께 싸우고 함께 승리해야 합니다.

김미숙 동지의 외침은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투쟁에도 강력한 명분으로 자리 잡았었고, 우리의 비정규직 철폐 투쟁으로 더 이상 일터에서 일하다 죽어가는 노동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할 수 있다는 사명감까지 더 해졌어요. 그게 우리가 가열차게 싸울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지요.

비정규직은, 기득권층의 오만한 자본과 그와 결탁한 부패한 권력이 노동자의 노동력을 싸게 쓰고, 노동자를 쉽게 부리고, 쓸모가 없어지면 쉽게 버리고, 문제가 생기면 책임까지도 전가하는 반인륜적인 추악한 욕망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 놓은 기형적인 고용구조입니다.

비정규직 철폐 투쟁은 제2, 제3의 김용균의 죽음을 막는 것이고, 비정상을 정상으로, 비상식을 상식으로, 불공정을 공정으로 바로잡는 것입니다. 또한, 노동자를 돈을 벌기위한 생산적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타락한 자본으로부터 노동자의 자존심을 지켜내는 행동입니다. 양회동 열사가 목숨으로 지켜낸 노동자의 자존심은 세상을 구성하는 근간이 되어야 하고, 노동자는 세상의 기둥이 되고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노동자가 중심이 되는 세상은 우리의 딸과 아들이 좀 더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 수 있는 세상입니다. 김용균 동지는 자본이 중심이 아닌, 노동자가 반드시 세상의 중심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이유를 알려 주었습니다. 용균이를 잊지 않을 것이며, 불행한 용균이를 만들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며, 딸과 아들에게, 내가 아는 모든 이에게도 용균이를 기억하자고 할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기억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한국가스공사 비정규지부 사무국장입니다.


태그:#김용균, #5주기, #일하다죽지않게, #김용균에게보내는편지, #오늘도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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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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