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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나종호씨는 미국 예일대학교 의과대학 정신의학과 교수입니다.[편집자말]
미국 배우 매튜 페리의 사망 소식을 보도하는 AP통신
 미국 배우 매튜 페리의 사망 소식을 보도하는 AP통신
ⓒ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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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인기 시트콤 <프렌즈>에서 챈들러 빙 역으로 활약했던 매튜 페리(Matthew Perry)가 지난달 28일 사망했다(관련 기사: 미 시트콤 '프렌즈 '챈들러 역 매튜 페리, 54세로 사망 https://omn.kr/267dl ).

많은 사람에게 웃음과 행복을 안겨주었던 그의 죽음 앞에서 미국의 오피오이드 전염병(opioid epidemic)이 얼마나 비극적인지를 다시 한번 깨닫게 된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졌지만, 미국은 지난 20년간 오피오이드(아편계 진통제, 헤로인, 펜타닐을 두루 아우르는 아편계 마약류)와의 전쟁 중이다. 1999년에 16000여명에 이르던 약물 과다복용 사망자 수는 2021년과 2022년 연달아 한 해 10만 명 이상으로 급증했으며, 그중에서 75퍼센트 이상은 오피오이드과 연관된 죽음으로 알려져있다. 또한, 미국 18-45세 사망원인 1위는 펜타닐(합성 오피오이드의 한 종류) 과다복용으로 인한 죽음이다. 

'오피오이드 에피데믹'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 배경

첫째, 상황은 '퍼듀'라는 거대 제약 회사의 탐욕에서 시작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수많은 다큐멘터리/드라마가 있는데('Dopesick', '죽음의 진통제', 'Heroin(e)', 최근에는 'Painkiller'라는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퍼듀 제약회사는 1996년, 옥시콘틴이라는 아편계 진통제를 시장에 내보이며, 거짓 광고(다른 아편계 진통제와 달리, 중독에 빠질 확률이 1퍼센트 이하 수준일 정도로 중독성이 낮다)를 포함한 공격적 마케팅을 시작한다.

그들은 영업사원을 전국 각지의 의사들에게 보냈고, 미국에서 가장 통증이 심한 지역들(러스트벨트를 비롯한 전통적으로 노동직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곳들)에 더 집중적으로 마케팅 노력을 쏟아붇는다. 

둘째, 미국 통증 학회(American Pain Society)의 잘못된 의제 설정. 이 아편계 진통제였던 옥시콘틴이 출시된 시점에, 'American Pain Society'라는 통증 학회는 병원에서 환자들의 상태를 모니터링하기 위한 필수적인 네 가지의 활력징후(vital sign)인 체온, 혈압, 맥박, 호흡수, 외에 '통증'을 다섯 번째 바이탈 사인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발표한다.

이에 따라 병원들에서는 지속적으로 환자들의 통증을 모니터링하게 되었고,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들의 통증을 줄여주는 것이 치료의 우선순위가 된다. 이는 우연치고는 기막힌 타이밍에 때마침 출시된 옥시콘틴을 비롯한 다양한 아편계 진통제의 처방이 급격하게 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해당 학회는 오피오이드 에피데믹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비판에 직면했고, 결국 2019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셋째, 의사들의 방심. 앞선 1번과 2번이 진행되는 환경에서, 의사들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용량의 아편계 진통제를 환자들에게 30일치씩 처방하기 시작했고, 처방 지시를 따르기만 했을 뿐인 환자들은 퍼듀의 광고와는 달리 많은 수가 오피오이드에 중독되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악랄하게 돈을 번 의사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대다수의 의사들은 환자를 도우려는 선의를 가지고(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의 통증을 줄여주려는) 처방을 했을 것이고 실제로 환자를 돕고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넷째, 처방전 진통제에서 불법 마약으로의 이동. 지난 2000년대 초반 오피오이드에 중독된 수많은 환자들을 목격하기 시작한 의료계에서 그제야 문제를 인지하고 약물 처방을 줄이기 시작했지만, 이 시점에서 가장 큰 미국의 사회 문제가 나타나 이 사태를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킨다. 바로 마약에의 접근이 너무 쉽다는 것이었다.

더 이상 의사들에게 진통제를 처방받지 못하게 된 환자들, 혹은 의료비가 비싼 미국에서 처방전 진통제를 받는 것에 부담을 느낀 환자들은 1/10 가격에 얻을 수 있는 같은 아편계의 불법 마약인 헤로인으로 넘어가게 된다. 

다섯째, '죽음의 마약' 펜타닐의 유행.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는 '좀비 마약'이라고 알려진 펜타닐이 미국에 퍼지기 시작한다. 펜타닐은 처방전이 필요한 아편계 진통제보다 50-100배 더 강력한 합성 아편계 약물로, 극미량으로도 호흡을 멎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의료적으로는 몸에 붙이는 패치 형태로 사용한다. 의료용 펜타닐이 아닌 불법 마약으로서의 펜타닐이 널리 퍼지면서, 오피오이드 과복용 사망자수는 급격하게 증가하게 된다.

그렇게 마약이 퍼진 미국의 현재는 어떨까. 최근에는 더 심각한 것이, 펜타닐도 모자라 거기에 각종 타 마약을 합성한 마약이 거래가 되고 있다. 한국다큐멘터리 촬영으로 유명한 필라델피아 켄싱턴 거리의 영상에 보이는 약물 중독자들은, 많은 경우 자일라진(동물 마취제)이 함유된 펜타닐을 사용한 것이라 한다. (관련 기사: '좀비 거리'로 유명한 미 켄싱턴에 봉사활동을 가다 https://omn.kr/25aoi ).

여담이지만, 실제로 펜타닐이 한국에서 '좀비 마약'이라고 불리게 된 원인은 바로 이 펜타닐과 자일라진이 합쳐진 "트랭크(Tranq)"라 불리는 약물로 인한 걸음인 "트랭크 워크(Tranq walk)" 때문이다. 그러나 통상 펜타닐만으로 그런 걸음을 보이진 않는다. 그리고 최근 펜타닐 과복용으로 사망한 자들의 혈액에서 자일라진이 함께 검출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절망적인 미국의 상황... 한국이 배워야 할 점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년이 많아지고 있다.
 우울감을 호소하는 청년이 많아지고 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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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절망감이 기저에 깔린 사회에서 불법 마약, 혹은 처방에 의한 마약류가 퍼지는 것은 '이미 불이 난 집에 장작을 지속적으로 던져 넣는 것', 혹은 '기름을 끼얹는 것'과 같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실제로 미국 아팔라키아 산맥 일대는 오피오이드 전염병, 즉 마약 사태의 가장 큰 피해지역이며, 오피오이드는 지역 경제의 붕괴와 맞물려 절망에 빠진 젊은이들에게 들불처럼 퍼져갔고 수많은 목숨을 빼앗아갔다. 

나는 최근 한국의 10~20대의 자살률 증가와 마약 사용의 증가 또한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대로 상황을 방치할 경우 한국 또한 많은 젊은이들을 잃을 수 있다. 가령, 현재 한국에서는 젊은이들이 펜타닐 패치를 이곳저곳에서 처방받아 이를 흡입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저에 절망감과 무망감이 널리 퍼진 한국 청소년, 청년들에게 펜타닐을 비롯한 마약은 독약이 될 수도 있다.

둘째, 의사들의 처방 방식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 앞선 미국의 실패에서 배울 수 있듯이, 대다수의 의사들은 선의로 환자들에게 처방을 하지만, 마약 청정국인 나라의 처방 방식과 그렇지 않은 나라의 처방 방식은 달라야 한다.

즉 처방하는 약물이 다른 향정신성 약물, 혹은 마약과 함께 복용될 때의 잠재적 효과에 대해서도 고려를 하면서 처방을 해야 한다. 가령, 펜타닐을 비롯한 아편계 진통제가 벤조디아제핀계 혹은 졸피뎀과 같은 약물과 함께 복용될 경우에 차후 과다복용으로 인한 호흡정지에 이를 가능성이 더 높아지게 된다. 

셋째. 미국에서처럼, 환자의 통제 약물(한국의 향정신성 약물과 유사한 약물들) 처방 기록을 검색할 수 있는 온라인 프로그램인 PDMP(Prescription Drug Monitoring Program) 사용을 한국에서도 하루빨리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본다.

한국에도 이미 유사한 프로그램과 앱은 있지만 그 사용률이 1% 미만일 정도로 미미하다고 한다. 미국에서 오피오이드 에피데믹을 막기 위해 개발된 이 프로그램만 잘 사용해도 닥터 쇼핑을 통한 처방전 약물 오남용을 막을 수 있다.  

매튜 페리의 고백, 안타까움으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지난 10월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1990년대 인기 TV 시트콤 '프렌즈'의 주연 배우 매튜 페리의 임시 추모비가 지난 10월 30일 미국 뉴욕 맨해튼 베드포드 스트리트에 세워져 있다.
 지난 10월 2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된 1990년대 인기 TV 시트콤 '프렌즈'의 주연 배우 매튜 페리의 임시 추모비가 지난 10월 30일 미국 뉴욕 맨해튼 베드포드 스트리트에 세워져 있다.
ⓒ 연합뉴스/로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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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펜타닐이 '좀비 마약'이라 불리고 있지만, 펜타닐은 '죽음의 마약'이라 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하지만 굳이 펜타닐까지 가지 않더라도, 처방전이 필요한 아편계 진통제, 혹은 다른 향정신성 약물 중독으로도 사람의 인생은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실제로, 매튜 페리가 중독된 약은 제트스키 부상 뒤 의사가 합법적으로 처방한 바이코딘(타이레놀과 아편계 진통제가 결합된 약물)이었다. 

물론 매튜 페리는 오피오이드에 중독되기 전에 이미 알코올에 중독이 되어 있었지만, 오피오이드에 중독되면서 술은 오히려 마시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알코올 중독이 이미 있는 사람이 마약에 더 중독되기 쉽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들에 의해 밝혀져있으며, 음주에 매우 관대한 한국의 문화에서 이 또한 시사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페리는 2022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십 년간 동료 배우들과 동고동락했던 <프렌즈> 종방 당시에도 자신은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마약에 중독되어 있었던 그 당시, '나는 속으로 죽어 있었다(I was dead inside)'라고 말했다. 

부디 그의 죽음이 단순히 슬픔을 넘어 그가 자서전을 통해 주고 싶었던 것처럼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줄 수 있었으면 한다.

한국에서의 마약 중독이라는 쓰나미를 막기 위해서는 사회 각 분야의 잠금 장치들이 잘 작동하는 것이 중요하며, 여러 장치 중 하나만 작동하지 않더라도 파국에 이를 수 있다는 것, 의료계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그것이 매튜 페리의 죽음으로 실감하게 된 미국사회의 실패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 생각한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브런치에 실린 글을 일부 보강한 내용입니다.


태그:#챈들러, #마약, #펜타닐, #오피오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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