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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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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공익 신고한 걸 후회합니다."

매출액 기준 업계 2위, 설계사 수 1만5000여명의 초대형 보험대리점(GA)인 글로벌금융판매의 사기 영업 행태를 공익 신고한 장아무개(44세)씨는 초췌한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지난 2021년 4월 <오마이뉴스>가 관련 사안을 연속 보도한 뒤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지만, 금융감독원도, 국세청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관련기사]
- "은행 이자 10배 준다" 보험대리점의 사기 영업 https://omn.kr/1sp8z
- 불법계약에 당한 소비자들, 보험료만 날렸다 https://omn.kr/1spam

지난 2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만난 장씨는 "2020년 5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금감원에 글로벌금융판매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상 사기, 보험업법 위반을 고발했지만, 현재까지 단 한번도 제대로 된 회신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 

국민신문고에서 '금감원이 조사할 것'이라고 안내한 이후에도 금감원으로부터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한 장씨. 참다못한 그는 수 차례 금감원에 직접 연락해 관련 자료를 모두 제출하겠다고 했지만, 3년6개월이 지난 현재까지도 금감원은 자료 수용을 거부하고 있다. 

장씨는 지난 2021년 <오마이뉴스>를 통해 글로벌금융판매의 사기 판매 행태를 고발했다. 회사가 보험회사(원수사)로부터 거액의 수수료 수익을 챙길 수 있는 종신보험 등을 저축보험으로 속여 팔면서 법인 계약자에 보험료 중 일부를 이자 형태로 지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같은 유사수신행위 등으로 인해 전체 보험상품에 대한 보험료 인상이 발생해 보험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국세청 역시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장씨는 2021년 7월과 2022년 6월 각각 글로벌금융판매가 보험설계사들을 통해 불법적인 소득(거짓 계약)을 올리고, 그 소득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방식으로 탈세 중임을 제보했었다. 

녹취록, 통장 사본도 제출했지만..."증거 부족"이라는 국세청
 
올해 11월2일에서야 국세청은 "탈세 혐의의 구체성이 미약하거나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미흡해 즉시 과세에 활용하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관련 녹취록과 통장 사본, 계약서 등을 모두 제출했음에도 증거 부족을 이유로 사안을 외면한 것이다.
 올해 11월2일에서야 국세청은 "탈세 혐의의 구체성이 미약하거나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미흡해 즉시 과세에 활용하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관련 녹취록과 통장 사본, 계약서 등을 모두 제출했음에도 증거 부족을 이유로 사안을 외면한 것이다.
ⓒ 제보자 장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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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올해 11월2일에서야 국세청은 "탈세 혐의의 구체성이 미약하거나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미흡해 즉시 과세에 활용하기는 어렵다"고 답변했다. 관련 녹취록과 통장 사본, 계약서 등을 모두 제출했음에도 증거 부족을 이유로 사안을 외면한 것이다. 

답답한 마음에 장씨는 지난해 6월 감사원도 찾았지만, 올해 8월에야 회신을 보낸 감사원은 해당 제보를 금감원으로 다시 돌려보낼 뿐이었다. 장씨는 "당시 감사원 담당자는 '금감원이 어떤 증거 자료도 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조사를 했다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며 "그런데 최근 돌아온 답변은 너무 허무했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도 상당 기간 소요됐다. 장씨는 "<오마이뉴스> 보도 이후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에도 제보했는데, 첫번째 수사관은 상당히 적극적이었다"며 "'글로벌금융판매의 간판을 내리게 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는 "그러다 지난해 12월쯤 경찰이 글로벌금융판매를 압수수색했는데, 그 뒤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사관이 교체됐고, 이후로는 수사가 지지부진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올해 3월에서야 사내 안양지역본부인 '피알총괄'의 대표 김아무개씨를 비롯한 5명이 검찰에 송치됐다. 장씨가 지난 2021년 9월 국민권익위원회에 해당 사안을 공익 신고한 지 1년6개월 만에 받아든 결과였다. 

장씨는 "담당 기관인 금감원은 조사조차 하지 않는데, 수사기관에선 생각보다 빠르게 처리해 너무 억울하고 화가 났다"고 말했다. 국내 보험사들의 대부분의 상품을 취급하는 GA의 불법 영업으로 전체 보험소비자가 피해를 보고 있는 상황. 그런데도 영업정지 등 제재를 가할 수 있는 행정기관은 오랜 기간 이를 방관하고 있어 답답하다고 장씨는 호소했다.  

"극단 선택 시도 여러번...신고 후 가족·지인 피해, 생활고 시달려"
 
답답한 마음에 공익신고자 장아무개(44세)씨 지난해 6월 감사원도 찾았지만, 올해 8월에야 회신을 보낸 감사원은 해당 제보를 금감원으로 다시 돌려보낼 뿐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공익신고자 장아무개(44세)씨 지난해 6월 감사원도 찾았지만, 올해 8월에야 회신을 보낸 감사원은 해당 제보를 금감원으로 다시 돌려보낼 뿐이었다.
ⓒ 제보자 장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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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 신고 후 장씨는 회사로부터 민사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보험상품 판매에 따라 얻게 된 수수료 수익을 반환하라는 내용이었다. 회사는 엉뚱하게도 장씨가 아닌 장씨의 가족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는데, 장씨가 회사 쪽 지시에 따라 가족 명의로 된 허위 설계사를 등록해 활동한 배경 때문이었다. 해당 소송은 1심과 2심에서 기각됐다. 

그런데 이를 통해 재판부는 글로벌금융판매의 이른바 '작성계약(위촉계약)'을 인정하게 됐다. 실제 설계사로 활동하지 않는 사람을 설계사로 등록하고, 실제 보험료를 내거나 보험금을 받지 않는 사람을 소비자로 등록해 보험사로부터 수수료를 챙기는 구조 중 일부를 법원이 확인한 셈이다.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동안 장씨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졌다. 공익 신고 전 회사를 나와 새 GA를 설립했지만, 회사 쪽 업무방해로 일감이 모두 끊겼다. 장씨는 현재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고, 그의 동업자인 최아무개씨도 보험업계를 떠났다. 

회사 쪽 지시에 따른 '작성계약'으로 장씨의 가족들도 피해를 보고 있다. 그는 "회사가 민사소송을 제기하면서 아버지는 그동안 일을 하지 못했다"며 "이후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는 연령이 됐는데, 설계사 허위 등록으로 소득이 잡히게 돼 연금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장씨의 고모 역시 재산상 피해 위기에 처해 이를 수습하느라 오랜 시간을 허비했다. 장씨의 말이다. 

"대리운전하면서 겨우 버티고 있는데, 잠도 잘 못 자고 힘들죠. 금감원에 전화하면 매번 기다리라고만 하고, 2년 반 동안 돌림노래처럼 저런 말만 듣다 보니 정신 이상도 왔어요. 극단적 선택을 여러 번 시도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니, 정부가 도움 줄 거라 믿었습니다. 그동안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피해만 주고, 저도 희망 없이 생활고에 시달리며 살고 있고요. 그래도 할 수 있는 방법은 다 해봐야죠."

금감원·국세청 여전히 '묵묵부답'..."금감원, 무능하거나 직무유기"

금감원과 국세청은 <오마이뉴스> 취재에도 관련 규정 등을 이유로 조사 진행 상황을 공개하지 않았다. 

지난 8일 금감원 보험영업검사실 검사1팀 관계자는 "소비자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그에 대한 회신을 하지만, 회사의 위법 사항을 고발한 민원에 대해선 개별적으로 회신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어 "그런 민원이 들어오면 검사 계획에 반영하고, 검사 결과 제재할 사항이 있으면 조치하고 있다"며 "제재 여부는 공시를 통해 확인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금감원 제재 공시의 경우 GA가 판매한 보험회사명과 보험상품명이 명시되지 않아 장씨가 고발한 사례에 대한 제재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장씨는 "검사 진행 상황을 알 수도 없는데, 이를 이후 공시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안내조차 받지 못했다"며 "올해 8월에야 감사원이 이를 금감원 감사실에 이첩했다고 알렸고, 이에 대해 금감원이 결과를 회신하도록 했다는데, 어떠한 답변도 받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국세청은 장씨 제보 관련 조사 진행 여부에 관한 <오마이뉴스> 질의에 "과세정보 및 탈세 제보 관련 사항의 타인 제공·누설을 금지하는 국세기본법에 따라 요청한 자료의 제공이 어려움을 양해해달라"고 답했다. 

글로벌금융판매는 해당 사안에 대해 장씨 개인의 일탈이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회사 관계자는 "장씨의 개인 일탈이지, 본사 차원에서 (보험업법 위반 행위를) 강요한 사실은 없다"며 "지점장 주관 내부통제 점검을 매월 시행하고 있고, 올해 금감원 내부통제 운영실태평가에서 2등급이라는 우수한 평가를 획득했다"고 밝혔다. 

공익 신고 이후 2년 6개월이라는 긴 기간 동안 조사를 뭉개고 있는 금감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는 "현재까지도 해당 GA의 영업방식이 불법인지 여부에 대해 결론을 내리지 않는 것은 금감원이 무능하거나,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지금이라도 조사를 조속히 마무리하고, 합당한 조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태그:#금융감독원, #금감원, #GA, #국세청, #감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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