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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9월 2~7일, 씨알재단(이사장 김원호)이 주관한 '일본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에 참석하고 왔습니다. 관동대학살은 1923년 일본 관동대지진 때 일본 관헌과 민간인들이 재일조선인을 무참히 살해한 사건을 말합니다. 학살 당한 대부분이 먹고 살 길을 찾아 현해탄을 건넌 일용직 노동자에, 부두 하역 잡부들, 그리고 그 식솔들이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씨알(민초)이었을 뿐인데...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납니다. 그 원혼들을 달래기 위해 치른 5박 6일간의 추모제 동행기를 쓰고자 합니다.[기자말]
(* 지난 기사, 사냥감의 이름은 '조센징'에서 이어집니다)

저는 요즘 진한 흡인력의 무언가에 의해 이끌려 가는 느낌입니다. 저항할 수 없는 큰 에너지가 어딘가로 저를 데려가며 전에 경험하지 못한 경이로운 일들을 경험하게 합니다. 전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하지 않던 말을 하며, 행동이 담대해집니다. 돌아보면 제가 이번에 일본을 가게 된 것도 제 의지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5월 말, 호주에서 두 달을 머물고 돌아온 후 갑자기 일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도 간절히, 맹렬히. 한 달 한 달 벌어 먹고사는 제 형편에 아무리 가까운 나라라 해도 해외 여행은 언감생심임에도. 호주에야 아이들이 있으니 어떻게든 가야 하지만.

무엇보다 저는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른 취미도 없고, 음악도, 그림도 감상에 서툴고 방구석에서 오직 책 읽는 것만 좋아합니다. 그런 제가 애인이라도 둔 듯이 일본에 가고 싶다는 열망에 끄달렸으니...

그 뜬금없는 열기의 정체는 관동대학살로 희생된 6661명 원혼의 부르심이었던 것 같습니다. 현해탄을 건너와 우리를 만나달라는. 우리를 기억해 달라는. 우리를 기록해 달라는.
 
희생자들의 넋전을 고이 모시고 추모하는 씨알재단 가족들
 희생자들의 넋전을 고이 모시고 추모하는 씨알재단 가족들
ⓒ 장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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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씨알재단 김원호 이사장님과 매주 글쓰기를 하고 있습니다. 벌써 4년째입니다. 김 이사장님의 후반 인생 실천 계획 중 하나로 글쓰기가 있는 거지요. 글쓰기와 독서는 시니어들의 로망이라는 말도 있듯이, 글쓰기는 저와 하고, 독서는 어느 번역가와 영어 원서 읽기로 하시죠.

8월 중순 경 수업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일본을 가야해서 9월 첫 주는 수업을 못 할 것 같은데..."
"아,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
"씨알재단 주관으로 관동대학살 100주기 추모제를 열게 되었거든. 관동대학살이라고 들어봤나요?"
"물론이지요. 아, 그 행사를 씨알재단에서..."
"100년 만에 첫 제사를 지내는 거지요."


나도 모르게 불쑥, 정말이지 나도 모르게 "저도 가면 안 될까요?" 하는 말이 툭 튀어나왔습니다. 마치 밥 먹다 입에서 밥알이 튀어나오듯.

"아, 그래요?" 하시더니 그 자리에서 사무국장에게 전화를 하시는 이사장님. 식사 중 뒤늦게 일행이 나타나자 주방을 향해 "여기 짜장면 한 그릇 추가요~" 하는 분위기로. 발권을 위해 당장 여권(사본)을 보내달라는 사무국장.

그렇게 해서 급작스럽게 일본행이 성사된 것입니다. 돌아보면 그것은 '생명'을 보듬는 일이었습니다. 일본땅에서 무참히 짓밟혔던 100년 전 조상들의 생명을 돌아보라는.

그렇게 추모제에 합류한 후 감상문 정도로 쓰려던 글이 자꾸만 부피가 커지고 있습니다. 주변에서 관동대학살에 관한 이런저런 자료를 제게 가져다 주시기 때문이죠.
 
관동대학살로 희생된 조선인 원혼들의 넋을 담은 종이인형들
 관동대학살로 희생된 조선인 원혼들의 넋을 담은 종이인형들
ⓒ 신아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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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기사에 계속됩니다)

덧붙이는 글 | 제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태그:#관동대학살, #관동대지진, #씨알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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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생. 이화여대 철학과 졸업. 저서 『스위스 안락사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좋아지지도 놓아지지도 않는』 『강치의 바다』 『사임당의 비밀편지』 『내 안에 개있다』 등 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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