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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커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요?" '후쿠시마의 아이'였던 한 소녀가 던진 이 질문을 기억합니다. 12년이 지나 성인이 되었을 그 소녀는 엄마가 되어 있을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발전소가 있는 마을에 사는 ‘그들’은 안녕할까요? ‘그들’의 삶, 일상, 활동과 목소리를 따라 ‘우리’로 얽힌 사람들, 그 인연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연결될까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의 답을 찾아 원불교환경연대 탈핵기록단이 한 달에 한 번, ‘그들’과 ‘이웃’을 만나러 갑니다. 누군가가 외치는 “전기는 눈물을 타고 흐른다”라는 말들을 곱씹다 보면 어느 지역의 문제, 그들만의 문제라고 덮어두지는 못할 겁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와 마음을 잠깐만 내주세요.[기자말]
8월 24일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가 시작되기 전 후쿠시마현 후타바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8월 24일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가 시작되기 전 후쿠시마현 후타바 바다는 정말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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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8월 24일 오전 12시 방류 직전 후쿠시마현 후타바의 바다 모습이라고 합니다.. 이렇게나 날씨가 좋았군요... 정말 죄송합니다..."

8월 끝자락 퍼붓는 비를 뚫고 오하라 츠나키씨의 집을 방문했다. 광주 구도심 아담한 주택 집에는 백일홍, 석류가 붉은 향을 피워내고 있었다. 보이차로 눅눅함을 달래고 8월 24일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당일 개인 SNS에 올린 사과의 글에 관해 물었다.

"역사문제에 관심이 많은 일본 사람들이 한국에 오면 과거 식민 지배에 대해 일본 정부를 대신해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저는 동의하기 어려웠어요. 개인의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자기만족인 것 같아서 불편하더라고요. 그런데 후쿠시마 오염수가 바다에 버려지는 날은 너무 슬펐고 나도 모르게 '정말 죄송하다'라는 말이 나오더라고요. 어쨌든 저는 일본 사람이잖아요. 탈핵운동에 참여하는 일본인으로서 해양투기를 막지 못해 진심으로 죄송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바다에 사는 뭇 생명들에게 정말 미안했어요."

지난 2023년 8월 24일 일본정부와 도쿄전력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를 시작했다. 스리마일, 체르노빌에 이어 최악의 핵발전소 사고가 난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발생한 고농도 방사성 오염수를 30년 동안 바다에 버리겠다는 것이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의 계획이다. 일본 정부는 다핵종 제거설비(이하 ALPS)가 모든 핵종을 걸려 줄 것처럼 선전했지만 삼중수소와 탄소-14와 같은 방사성 물질은 걸러내지 못한다. 결국 삼중수소를 제외한 29 핵종에 대해 측정·평가해 바다로 내보낸다.

탈핵신문 2023년 6월 12일자 '오염수 해양투기에 중대한 결함있다' 제하의 보도에서 미국 민간연구조직 에너지환경연구소 소장 아르준 마크히자니(Arjun Makhijani) 박사는 "도쿄전력이 탱크에 보관된 오염수 실태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미흡한 정보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지적한다.

마크히자니 박사는 10개씩 나눈 오염수탱크 그룹마다 1회당 30L씩, 각 탱크가 가득 차기 전 마지막 일정량에서 1회만 채취하는 바람에 샘플은 전체 탱크 수량의 20%밖에 안 된다고 주장한다. 탱크 내 축적된 침전물의 농도와 양이 샘플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했다는 말이다. 

이뿐만 아니다. 1차 해양투기계획에 따라 지난 8월 24일부터 17일간 총 7800t의 핵오염수가 바다에 버려졌다. 2차 해양투기를 앞두고 지난 9월 21일 도쿄전략은 핵오염수 측정·확인용 탱크 C군 방류 전 시료 분석 결과 2차 해양투기 분 보관 탱크 내 오염수에서 탄소-14, 세슘-137, 코발트-60, 아이오딘-129 등 4종의 방사능 핵종이 '미량 검출됐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측정 평가 대상 핵종(29종)의 고시농도 비율 총합이 0.25로 기준치인 1 미만이므로 예정대로 바다에 투기할 것을 예고하고 있다.

"일본정부가 2021년 4월 13일 후쿠시마 제1핵발전소에서 발생하고 있는 방사능 오염수 해양투기를 결정하면서 '오염수는 충분히 정화한 후 기준치 이하로 희석해서 바다로 보내기 때문에 안전하다'는 궤변을 늘어놓았어요. 희석한들 방사성 물질의 총량은 같잖아요. 핵 오염수가 정말 안전하다면 여태까지 탱크에 저장해 놓을 필요도 없었어요. ALPS로 걸러서 애초부터 농업용수든 수영장을 채우는 물로 사용하든 일본 국내에서 요긴하게 사용하면 돼요. 해양투기 말고도 육상 장기 보관이나 콘크리트로 고체화하는 방법도 있지만, 국제사회와 일본 국민들에게 온갖 거짓을 동원해 가장 쉽고, 값싼 선택을 한 거예요."

민간기업인 도쿄전력은 2023년 총 4차례에 걸쳐 모두 약 3만1200톤(삼중수소 총량: 약 5조 베크렐)을 바다에 투기할 계획이다. 탱크에 보관하고 있는 총량 134만 톤의 2.3%에 해당한다. 그러나 매일 90∼100톤씩 핵오염수가 추가로 발생하고 있다. 도쿄전력과 일본정부는 향후 30~40년에 걸쳐서 해양 방류를 하겠다고 하지만, 불가능한 계획이며 실체로는 100년 이상 걸릴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미야노 히로시 일본원자력학회 폐로검토위원장은 9월 19일 아사히신문과 인터뷰에서 "핵연료 잔해(데브리)가 없는 일반 원전도 폐기에 30∼40년이 걸리는데, 후쿠시마 제1원전에는 지금도 핵연료 잔해가 880톤이나 남아 있다"라며 "원자로를 폐기하는 폐로(廢爐)의 시간이 얼마일지 현재로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라고 우려했다.

핵오염수를 보관한 탱크 부지를 사고 원자로에서 반출한 핵연료 잔해 보관 장소로 활용하겠다며 핵오염수 바다투기를 결정한 도쿄전력의 계획은 2051년까지 녹아내린 원자로와 핵연료봉 그리고 콘크리트 잔해 등이 모두 제거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전제가 틀렸으니 답도 당연히 틀릴밖에.

"일본 정부는 일본 국민을 향해 경제적인 면에서도 해양투기가 가장 타당한 방법이라고 주장하는데 이미 그 논리도 무너졌어요. 2016년 일본 경제산업성 산하 워킹그룹 '삼중수소수 테스크 포스'가 도출한 계산에서는 해양투기에 드는 비용은 최대 34억 엔이에요. 그런데 해저터널 등 공사비 약 430억 엔, 소문 피해 대책 비용 약 300억 엔, 어업인 지원기금 500억 엔 등으로 현시점에서 벌써 총 1200억 엔(한화 약 1조 원)을 넘었어요. 애초 예산의 13배인 거죠. 기간이 늘어날수록 비용도 늘어날 거고요."

핵오염수 해양투기가 후쿠시마 핵사고 수습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던 국제사회를 향한 주장은 자국민들에게는 가장 싼 방법으로 설득되고 있었다. 그마저도 속임수이지만 말이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 본질은 핵발전
 
지난 8월 31일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해양투기 반대집회’에 모인 탈핵대회 참가자가 ‘핵발전이 문제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지난 8월 31일 열린 ‘후쿠시마 오염수해양투기 반대집회’에 모인 탈핵대회 참가자가 ‘핵발전이 문제다’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탈핵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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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운동이 반일감정으로 연결되는 것이 어쩌면 더 위험할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식의 접근방식이 오염수 문제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죠. 처음에는 걱정되는 부분도 많았지만, 오염수 반대 집회에서 조금씩 '탈핵'이라는 구호가 들리기 시작했어요. 오염수 문제로 한·일 일반 시민들 사이에 안 좋은 감정이 만들어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고 오히려 역효과라고 생각해요. 오염수 문제를 한·일 국가 간의 갈등 문제로 바라보거나 정권 비판의 수단으로만 이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의 본질은 핵발전소예요. 한국도 일본도 핵발전을 추진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니 한·일 양국 시민들이 공통의 문제의식으로 함께 손잡고 극복해 나가는 과제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후쿠시마 오염수 해양투기를 '핵 테러'라고 하는데 인류가 '핵'을 다루는 것 자체가 '테러'이지 않을까요?"

일본인으로 한국에서 15년 동안 환경운동, 탈핵운동에 몸담아 온 오하라씨는 후쿠시마 핵발전소 오염수 해양투기는 한국과 일본 정부의 핵발전 부흥정책의 하나라고 강조한다.

"미국과 소련이 군비경쟁에 한창이었던 냉전 시기 핵보유국들의 핵실험은 세계적으로 2000회가 넘었어요. 중·저준위핵폐기물 해양투기도 1993년 금지되기 전까지 계속됐었고, 핵 재처리 관련 시설에서도 대량의 오염수가 바다에 버려졌어요."

군사적 핵도, 평화를 가장한 핵발전도 인류가 핵을 사용하는 한 핵테러는 이미 일상이라는 것이 오하라씨의 주장이다. 이번 후쿠시마 핵오염수 해양투기가 롯카쇼무라 사용후연료 재처리시설의 핵오염수 처리를 위한 전초전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이유다. 

핵발전은 태생부터 엄청난 양의 방사선을 품고 있다. 핵분열 에너지를 이용하는 순간, 방사능이 발생하고 기체나 액체 상태의 폐기물은 바다와 대기로 흘러간다.

오하라씨는 오염수 해양투기 반대운동이 한국의 핵발전소에서도 방사능 오염수가 통상적으로 바다에 버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계기와 공간으로 활용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뿐 아니라 핵발전을 운영하는 모든 나라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일이지요."

방사성 물질의 양이 얼마이든, 핵종이 삼중수소든, 세슘이든, 우라늄 136이든 '독'은 '독'이고 피해와 고통은 고스란히 국경을 가르지 않고 시민들의 몫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일본인 탈핵활동가 오하라씨
 
기후위기를 실감할 정도로 광주에도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 탈핵우산 속 오하라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기후위기를 실감할 정도로 광주에도 갑자기 폭우가 내렸다. 탈핵우산 속 오하라씨가 환하게 웃고 있다.
ⓒ 이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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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벽면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바닥까지 쌓인 책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다양했다. 한눈에 봐도 독서량이 상당했다.

"남편 책이에요."

남편 이야기에 한국에서 탈핵 운동하는 일본인 오하라씨가 바다 건너 한국까지 온 사연이 궁금해졌다.

"한국의 역동적 에너지가 좋았어요."

일본 단기대학에서 공부하던 오하라씨는 1995년 일주일 동안 홈스테이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첫발을 딛는다. 부산에서 서울까지 올라오는 동안 경험한 한국이 너무 재미있고 역동적으로 다가왔다. 가까운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역사도 잘 못 알고 있는 것도 있었고, 비슷하게 생겼는데도 사고나 행동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일본에서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어둡고 탁한 색이었는데 한국에 와보니 알록달록 에너지가 넘치는 것이 자유로움을 추구하던 저와 잘 맞더라고요."

일본에 돌아가서 '한국으로 유학 가겠다'라고 교수님께 말씀드렸더니 감정적으로 유학을 결정하면 안 된다"라며 먼저 직장생활을 권하는 바람에 교수님 말씀대로 단기대학 졸업 후 취직하고 섬유회사 영업 사무원으로 2년을 보냈다.

직장생활은 재미있었고 사회생활은 또 다른 배움을 주었지만, 공부에 대한 미련이 남았던 오하라씨는 교토에 위치한 리츠메이칸 대학 국제관계학부 3학년으로 편입한다.

"일본 대학은 3학년부터 세미나에 들어가요. 그리고 마지막 과정이 논문이지요. 세미나 주제를 고르는데 한국 근현대사를 연구하는 교수님이 계시더라고요. 이거다 싶었지요. 교수님도 엄청나게 반가워하셨어요. 저와 비슷하게 한국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분이었어요."

고(故) 나카무라 하쿠지(中村福治) 교수는 오하라씨에게 한국 유학을 권하며 전남대를 추천한다.

"2000년이 5·18민중항쟁 20주년 되는 해였어요. 전남대로 유학 가면 한국의 민주화에 대해 배울 수 있다며 꼭 서울에 있는 대학이 아닌 전남대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오하라씨는 2000년 전남대 사회학과 교환학생으로 유학 생활을 시작한다. 사회학과 사회조사실습 수업에서 조별 과제를 위해 우연히 구성된 팀의 한 남학생과 오하라씨는 화순 한천면 등지를 돌며 1945년 이후 국군에 의한 양민학살 관련 사회조사를 했다. 자연스럽게 둘은 가까워졌고 결혼을 약속했다.

"자기 신념을 지키며 평생 운동하면서 살겠다는 이 남자가 멋있더라고요. 일본 대학에서 볼 수 없는 갈라파고스 희귀생물 같은 존재였어요."

남자친구는 졸업하고 공장에 취직하고 오하라씨는 일본으로 돌아가 나머지 학업을 마친 뒤 다음 해인 2002년 한국으로 돌아온다. 국경을 넘은 장거리 연애가 결혼으로 열매를 맺고 아이도 낳았다

"돈은 꼬박꼬박 벌어오더라구요.(웃음) 남편은 공장 노동자로 일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어요."

아이가 4살이 되었을 무렵 사회생활을 하고 싶어진 오하라씨는 2007년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에 공채로 들어간다.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남편과 주변 사람들도 사회 운동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그 사람들 삶이 멋지게 보이더라고요. 지금은 생각이 좀 달라졌지만, 그때는 그랬어요." (웃음)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에서 맡은 업무는 회원 관리와 회계, 소식지, 환경교육 등이었다. 애초 오하라씨가 생각했던 것과 업무 영역이 달랐고 외국인이 단체 활동가로 근무하는 것은 생각보다 장벽들이 많았다.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지만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선배 동료들로부터 배우며 많은 일을 해냈다.

"광주와 가까운 영광에 핵발전소 6기가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크게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었어요.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 엄청난 큰 충격을 받았어요. 가만히 생각해보니 내가 있는 광주에서 불과 35~50km밖에 안 되는 곳에 핵발전소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됐고 내가 사는 곳에서 탈핵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오하라씨는 후쿠시마 사고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실을 정확히 알고 싶었고,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한국에 알리며 본격적인 탈핵운동을 시작한다.

영광 한빛핵발전소에 대한 광주 시민들의 경각심이 높아졌고 연대기구 '핵없는세상광주전남행동'(아래 광주전남행동)이 만들어졌다.

광주전남행동에서는 시민들을 대상으로 거의 매년 탈핵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탈핵영화제도 열었고 탈핵 피켓팅과 서명운동 등도 꾸준히 진행했다. 또한 '한빛핵발전소대응호남권공동행동'과 연대해 한빛핵발전소 대응활동도 벌이고 있다. 오하라씨는 현재 광주전남행동 교육홍보를 담당하고 있다. 광주전남행동에서 나온 카드뉴스나 집회 웹자보를 보면 '잘 만든다' 싶었는데 오하라씨 작품이라니 놀랍고 반가웠다.

"2007년부터 2013년까지 7년 동안 광주전남환경운동연합에서 일하면서 일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정말 많이 배웠어요. 하지만 여러 환경운동 중에서도 탈핵에 특화된 활동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날이 갈수록 커지더라고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 매거진 '탈핵 잇_다'에도 연재됩니다.


태그:#탈핵, #탈핵 잇_다, #오하라 츠나키, #후쿠시마 핵오염수 바다투기, #핵없는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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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리고 연결된 삶을 그리며 오늘도 바쁘고 단절된 삶을 살아갑니다. 영광에 22년 살면서 '핵 없는 세상'을 염원하게 되었습니다. 하루라도 빠른 태양과 바람의 나라를 꿈꿉니다. 생태와 자연, 젠더와 영성에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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