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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장기 말소 의거와 운수 좋은 날> 표지
 <일장기 말소 의거와 운수 좋은 날> 표지
ⓒ 현진건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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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진건은 어떤 사람인가? 김윤식과 김현이 공저로 펴낸 <한국문학사>는 그를 "한국 단편소설의 아버지"로 정의했다. 국가보훈처의 독립유공자 공훈록에는 "일장기 말소 의거의 직접 책임자"로 기술되어 있다. 

현진건을 단순히 소설가로만 규정하는 것은 그에 대한 올바른 소개가 못 된다. 일장기 말소 의거를 일으켜 투옥과 고문을 겪고, 동아일보에서 강제로 해직당해 궁핍과 울분 속에 살다가 43세 이른 나이에 타계한 이력을 생략하면 그의 삶 절반 가량이 날아가버린다.

물론 독립유공자로만 여겨서도 안 된다. '운수 좋은 날', '고향', '빈처', 'B사감과 러브레터', '술 권하는 사회' 등 주옥같은 작품을 남긴 "한국의 모파상(장덕순, <한국문학사>)" 현진건에게서 우리나라 근·현대문학 초기의 뛰어난 소설가라는 명함을 삭제할 수는 없다.

현진건은 뛰어난 소설가이자 독립유공자 

현진건은 걸출한 민족문학 작가이자 1936년 일장기 말소 의거를 일으킨 독립유공자이다. 그 두 가지를 빠짐없이 거론해야 현진건의 정체성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된다. 그런 점에서, 현진건학교가 펴낸 <일장기 말소 의거와 운수 좋은 날>은 현진건이 어떤 사람인지 잘 설명해준 책으로 여겨진다.

'일장기 말소 의거'라는 제목이 붙은 책의 제1부는 '시로 쓴 일장기 말소 의거(박지극)', '소설로 쓴 일장기 말소 의거(정만진)', '일장기 말소 의거 87주년 토론회 발표문(최영)'으로 이루어져 있다. 박지극 시 '뫼비우스의 띠'를 읽어본다. 

두 바퀴를 돌아야 제자리로 온다

1시간 11분 29초
반환점을 돈 시간이었다

1936년 8월 9일
어디? 독일 베를린
제자리에 돌아온 시간
2시간 29분 19초 올림픽 신기록
누가? 손기정
손군 1착 남군 3착

1936년 8월 12일 밤 동아일보사 옥상
누가? 기자 이길용 부장 현진건
뫼비우스의 띠를 잘라 하늘을 향해 세운다

해발로 치면 21.0975km
반환점 돌아오면 42.195km

일장기를 말짱히 지우고
우승자가 돌아왔다


일장기가 말소된 신문이 배포된 때는 8월 13일이지만 인쇄 공정에서 일장기를 말소한 시점은 8월 12일이다. 그래서 시는 "1936년 8월 12일 밤 동아일보사 옥상"으로 표현했다. "손군 1착 남군 3착"은 당시 호외들에 나오는 표현으로, 남군은 3위를 차지한 남승룡 선수를 가리킨다.

'운수 좋은 날'이라는 제목이 붙은 책의 제2부는 '정연지 화가가 그림으로 형상화한  운수 좋은 날, '현진건 원작 단편 운수 좋은 날', '김미경 교수가 중문으로 번역한 운수 좋은 날'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진건 원작 단편에 어려운 어휘마다 뜻풀이를 달아둔 것이 이채롭다.

현진건과 이상화는 유년기 벗이자 평생 동지   

현진건은 1900년, 이상화는 1901년에 태어났다. 현진건의 아버지 현경운과 이상화의 큰아버지 이일우는 교육계몽운동 동지였다(이상화의 아버지 이시우는 이상화가 7세 때 타계). 이상화는 현진건의 추천으로 '백조' 동인이 되었고, 두 사람은 1943년 4월 25일 같은 날 나란히 세상을 떠났다.

그러므로 <일장기 말소 의거와 운수 좋은 날>에 이일우의 '조카 이상정을 그리워하며'가 실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이일우는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 조카 이상정이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근심걱정에 사로잡혀 '금릉의 군사 소식을 듣고 조카 이상정을 그리워하다[聞金陵兵事憶姪相定]'라는 시를 썼다. 

悵望金陵思入微
슬프게 금릉을 바라보니 생각이 흐릿해지는데
紛紛離亂信書稀
끝없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편지마저 어렵구나
十年風雪常多病
십년 동안 바람과 눈 맞아 많은 병 앓았는데
萬里兵塵獨未歸
만 리 밖 전쟁터에서 아직 못 돌아오지 못하네
江上殘梅懷故國
강가에 남은 매화는 고국을 그립게 하고
天涯明月倚寒衣
하늘 끝 밝은 달은 차가운 옷을 걸치게 하누나
園中鳴鶴待君久
뜰에서 우는 학이 너를 기다린 지 오래란다
回袖翩翲須莫違
소맷자락 펄럭이며 돌아오는 일 잊어선 안 돼


금릉은 난징(南京)이다. 국내에서 독립운동 중 일제 경찰에 피체될 위기를 맞아 이상정은 25세 때 중국으로 망명했다. 그런데 죽었다는 소문이 큰아버지 이일우에게 들려왔다. 이일우는 이상화를 은밀히 압록강 너머로 보내 사실 여부를 확인한다. 결국 그 일이 탄로나 이상화는 일경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한다.

이일우는 1919년 만세운동 때 이미 일제의 취조를 당한 바 있다. 이상정의 행방을 알아내려는 일경의 조치였다. 일본경찰이 남긴 기록에 따르면 이일우는 '죽은 동생 아들 이상정은 원래가 방탕무뢰하여 항상 내가 감독은 하고 있으나 지금부터 한 달쯤 전에 가출하여 현재 행방을 알 수 없는 상태'라고 둘러대었다.

지금 이일우는 혼자서 독백한다. 집 뜰에서 학이 울며 너를 기다린 지 오래되었다. 조카야. 그 학이 누군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련다? 너의 어머니, 너의 동생들, 너의 큰어머니, 그리고 나까지… 모두가 목을 길게 떨면서 날마다 울고 있단다. 다치지 않고 살아서 힘차게 돌아와야 한다! 결코 그 점을 잊지는 않았겠지?

우리는 현진건과 이상화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나?

이일우는 시 마지막에 "소맷자락 펄럭이며 돌아오는 일 잊어선 안 돼"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는 과연 현진건과 이상화를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 <일장기 말소 의거와 운수 좋은 날>에 수록되어 있는 최영 시인의 '일장기 말소 의거 87주년 토론회 발표문' 일부를 인용해본다.

"우리는 현진건에 대한 예의를 전혀 갖추고 있지 못하다. 대구의 생가와 신혼집은 잔재도 없이 멸실되었고, 서울 부암동 고택도 파괴되었다. 현진건은 〈고향〉에서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하다고 했는데, 필자는 그의 생가도 고택도 문학관도 묘소도 없는 현실에서 '음산하고 비참한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을 똑똑히 본다."

이상화도 마찬가지이다. 문중 후손들이 사비를 들여 '상화 기념관'을 지었지만 중앙정부나 대구시가 만든 문학관은 없다. 나라 안에 문학관이 100곳 넘고, 친일파를 기리는 곳도 한두 곳이 아닌데, 독립유공자 현진건과 이상화를 추념하고 전시하는 국공립 공간이 전혀 없는 이 현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고 반문했다. 현진건은 "이런 사회에서 무슨 일을 한단 말이오?(〈술 권하는 사회)〉'라고 탄식했다. 그래도 우리는 <일장기 말소 의거와 운수 좋은 날> 같은 책이 발간되고 있는 데서 위안을 찾을 일이다.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덧붙이는 글 | 현진건학교 지음, <일장기 말소 의거와 운수 좋은 날>, 국토(2023년 9월 1일), 200쪽, 1만7천원.


일장기말소의거와 운수 좋은 날

정만진 (지은이), 국토(2023)


태그:#현진건, #박지극, #현진건학교, #이상화, #빼앗긴들에도봄은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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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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