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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후면 추석 명절이다. 전통적으로 국내 정치에서 명절은 매우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에 어떤 정치적 메뉴(이슈)가 온 가족이 모이는 밥상에 올라오느냐에 따라 각 정당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마 이번 추석에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 이슈가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가 될 것이다. 이 자체로 국민의힘에는 긍정적인 측면이, 더불어민주당에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가능한' 제삼자의 관점에서 이번 정치적 이슈를 보며 한국 정치가 왜 후진적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물론 정치라는 것이 개인의 가치관에 기반한 선택의 문제이기 때문에 중립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지만, 이번 이슈에 내재된 두 가지 측면을 통해 보다 큰 맥락에서 한국 정치가 얼마나 후진적인지 말하고 싶다. 하나는 한국 정치는 시민에게 투명하지 않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실력 있는 정치 신인이 진입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왜 그러할까?

정치란 무엇일까?

먼저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과연 정치란 무엇일까. 개별적으로 각기 다른 정의를 할 수 있지만, 시민인 유권자들에 의해 선거로 운영되는 국내 정치의 기본 속성은 '전쟁'이다. 각기 다른 정당이 존재하고, 정당별로 선거를 통해 유권자에게 더 많은 선택을 받은 쪽이 정권을 가져가는 전쟁인 것이다. 특히 0.1%라도 많은 득표를 얻은 쪽이 100%를 가져가는 한국의 선거제도 하에서는 그야말로 '전쟁'이다. 불과 몇 세기 전까지 왕권을 두고 처참하게 서로 죽이는 왕위쟁탈전, 다른 민족을 침략해 그 민족을 통치하려는 민족 혹은 국가 간 전쟁의 속성이 바로 지금의 정치인 것이다. 

그러나 과거 전쟁과 현재 정치는 다르며 달라야 한다. 크게 수단과 환경의 측면에서 다르다. 먼저 수단의 측면에서, 과거 전쟁에서 무기는 칼, 총, 대포 등이다. 그러나 현재 정치의 무기는 말과 글이다. 과거 전쟁이 단순히 칼과 같은 무기를 활용해 물리적 힘으로 상대를 죽이면 이기는 게임이었다면, 현재 정치는 합리성에 기반한 말과 글이 무기가 되어 상대를 제압하는 게임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말과 글을 활용할 수 있는 언론과 공론의 장이 매우 중요하다. 

다음으로 환경의 측면에서, 과거 전쟁에서는 아군과 적군만이 존재하며 싸움의 룰과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상대를 죽이면 되는 단순한 게임인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는 정당들 또는 정당에 속한 개별 의원들이 말과 글로 싸우는 모든 현장을 관전하는 시민들이 있고, 이 싸움에는 최소한의 룰인 법이 있다.

이를 두고 전자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것이며, 후자는 법치라고 명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물리적인 이유로 이 싸움의 현장에 있지 못하는 시민들을 위해 언론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과거 전쟁과 달리 현재 정치를 보다 쉽게 생각해 보면, 정치인은 링 위에 올라가 있는 파이터이며 그 파이터가 쓸 수 있는 무기는 말과 글, 감성이며, 이들을 보며 싸움의 승패를 결정짓는 사람들이 투표권을 가지고 있는 시민들인 것이다.

또한 대의제 민주주의 하에서 모든 시민들이 이 싸움 현장에 있을 수 없기 때문에 이 싸움을 보다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는 것이 언론이다. 마지막으로 그 싸움이 보다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소한의 역할을 하는 것이 심판(법)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가결이라는 정치적 이슈는 링 위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재명이라는 개인과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검찰이 싸우는 기형적인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고 지속되고 있는 싸움의 국면이다. 링 위에서 싸워야 할 여당이 검찰의 발표만을 가지고 오히려 심판을 부추겨 상대를 체포하겠다는 것이 현 상황의 본질인 것이다.

즉, 링 위의 심판이 되어야 할 검찰이 대통령과 여당을 관중석에 앉히고 본인이 직접 링 위에서 말도 글도 아닌 법(압수수색, 기소권)이라는 칼을 혼자 들고 아무 무기도 없는 상대를 난도질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 정치가 후진적인 2가지 이유 

정치적 유불리와 상관없이 이 같은 현상은 크게 2가지 측면에서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다. 첫째,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 정치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과거 전쟁과 달리 현재 정치는 유권자인 시민들이 보는 링 위에서 정당과 정치인들이 말과 글 그리고 감성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전쟁이다. 시민들은 그것을 보고 어느 쪽을 지지할지를 정하게 되며, 심판이 되어야 할 법은 혹여 일어날 수 있는 반칙을 제어하는 최소한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다.

이것이 투명한 정치인데, 지금 링 위에는 심판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검찰과 이재명이라는 개인만 있고, 이마저도 유권자인 시민들이 볼 수 없는 압수수색과 취조만을 하며 심판이 선택한 정보만을 유권자들에게 제공하는 형국이다.

이 같은 정보의 불투명성으로 인해 시민들은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더욱이 언론은 검찰이 선택한 정보만을 다수의 시민들에게 전하고 있어 문제다. 과거 한국 정치에서 투명성을 말하면 돈봉투와 관련된 경우가 다수였지만 이제는 정보의 불투명성이 한국 정치의 후진성을 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실력 있는 정치 신인이 등장하기 어려운 정치구조다. 정치도 교육, AI 등과 같이 하나의 직업군이다. 이에 말, 글 그리고 감성이라는 능력(물론 이 외에도 많은 능력들이 필요하다)을 가지고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인재들이 필요한 곳이다.

그러나 이같이 검찰이 나서서 정치적 이유로 특정 정치인은 물론 주변 사람들까지 몇 년간 압수수색하고, 지속적으로 검찰에 출석시키는 장면을 언론이 취재하게끔 만든다면 과연 어떤 개인이 정치라는 직업군에 들어올 수 있겠는가. 이 같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정치라는 직업군에 뛰어들 수 있는 사람들은 본인이 사법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다양한 관계로 자신을 정치적 이유로 수사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는 사람들 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정치적 이유로 수사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할 정도의 부와 권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정치에 필요한 역량을 가지고 있어도 정치에 도전할 수 없게 된다. 혹자들은 그 사람이 문제가 있으니까 검찰이 그렇게 조사를 하는 거라고 할 수도 있지만, 검찰이 지금과 같은 정치적 이유로 특정 개인을 조사하면 5천만 인구 중에서 그 누구도 자유로울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에서는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꿈꾸는가?

비록 이같이 후진적인 한국 정치를 보면서도 실낱같은 희망을 가져본다. 정치의 영역에서 검찰은 최소한의 역할을 하되 유권자들이 실력 있는 정치인이 누구인지 마음껏 알아볼 수 있는 장이 마련되길 바란다. 유권자에게 0.1%라도 적게 선택되면 100%를 잃어야 하는 소선거구제 하의 참혹한 전쟁에서도 그들의 실력(말, 합리성, 감성)을 제대로 확인할 수 있는 한국 정치가 되길 바란다. 이런 환경이 되어야 시민들이 정확하게 선택할 수 있고, 돈도 없고 권력이 없어도 실력 있는 정치신인들이 등장할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경험했던 한 가지 경험을 공유하고 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2014년 스웨덴의 고틀란드에서 매년 개최하는 정치 페스티벌에 참여한 적이 있다. 7박 8일 동안 진행되는 이 행사는 스웨덴 7개 정당이 하루씩 담당해 '정치'라는 주제로 정치인들과 시민들이 한 자리에서 즐기는 행사다.

고틀란드라는 아름다운 섬에서 반바지, 반팔 차림의 장관, 정치인들이 차를 마시며 동네 옆집 아저씨, 아줌마와 같은 시민들과 토론하는 것도 흥미롭고, 누구나 특정 주제를 가지고 포럼을 열 수 있다는 것도 흥미롭고, 매일 저녁은 당 대표가 나와 1시간가량 연설을 하며 정당의 방향을 설명하는 것도 흥미로웠다.

그러나 그 가운데 가장 나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연설을 마치고 당 대표가 트럭에 마련된 간이 스튜디오에서 1m 앞에 시민들이 있고 생중계로 전국에 방송되는 인터뷰하는 장면이었다. 이때 그 당 대표에게 질문하는 아나운서는 어떠한 질문도 미리 알려주지 않았고, 중간중간 바로 앞에 있는 시민들이 민감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생방송으로 중계되는 이 날 것 그대로의 인터뷰가 충격적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즉 실력 없는 리더는 절대 흉내도 낼 수 없는 장면인 것이다. 

이 같이 한국 정치도 유권자인 시민들이 직접 그 정당과 정치인들의 실력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뒤에서 미리 질문지를 다 받는, 투명하지 않은, 링 위에서 심판이 되어야 할 검찰이 직접 칼을 휘두르는 정치가 아니라 정당과 정치인들이 실력으로 공정하게 겨룰 수 있는 그런 정치 말이다.

정말 이재명 당 대표에게 검찰이 제기하고 있는 법적인 문제들이 있다면 이를 두고 이재명 대표와 김기현 대표 혹은 윤석열 대통령과 제대로 토론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 모든 것을 다 오픈하고 정정당당하게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태그:#이재명, #체포동의안, #한국정치, #후진성, #더불어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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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박민중입니다. 생일은 3.1절입니다. 정치학을 전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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