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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노동자의 과로를 막기 위해 지정된 ‘택배 없는 날’에 쿠팡이 끝내 동참을 거부한  지난 8월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쿠팡 배송 캠프에서 택배 노동자가 배송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를 막기 위해 지정된 ‘택배 없는 날’에 쿠팡이 끝내 동참을 거부한 지난 8월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쿠팡 배송 캠프에서 택배 노동자가 배송 준비 작업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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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염으로 연이은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 온열질환으로 쓰러진 물류 노동자의 산재 사망 이후 물류 노동자의 노동환경이 다시금 중요한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하지만 전국의 물류 노동자들은 여전히 쪼개기 계약으로 인한 고용 불안정, 현장 내 빈번한 사고, 장시간·야간 노동, 온열질환, 휴게시간 및 휴게공간 부족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다.

유난히 더웠던 올해 여름,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37도 찜통 쿠팡 물류센터'에 대한 폭염 대책을 요구하며 지난 8월 1일 하루 파업에 돌입했다. 7~8월 폭염기 실내온도가 33~35도일 때 매시간 10~15분의 휴식 시간을 줘야 한다는 노동부의 가이드라인(산업안전보건규칙 566조)이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권고사항일 뿐 사업주를 강제할 의무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부에서 투쟁에 나섰다. 물류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실내 온도 37도를 견뎌야 한다는 사실에,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주었다. 폭염이 한풀 꺾이고 다가온 추석 연휴에는 물류 노동자의 노동환경은 더욱 열악해진다. 밀려드는 물류로 앉아있을 새도, 숨 돌릴 새도 없이 일을 해야 한다. 연휴 시기 부상률은 18%나 증가한다.

앞서 언급한 쿠팡 물류센터의 사례처럼 물류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과 관련한 사회적 이슈에 비해 물류·유통사를 강제할 수 있는 장치는 부재하다. 현재 물류 노동자에게 필요한 건 안쓰러운 시선이 아닌 현장의 직접적인 변화다. 정부·지자체·의회는 권고사항 뿐인 물류 노동자 보호조치를 보여주기식으로 양산할 게 아니라 물류 노동자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수용해 물류·유통사를 강제하고 관리·감독해야 한다. 

대전 물류 산업 육성, 물류 노동자 없이는 반쪽짜리

이에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본부 소속 조합원들은 대전시에 물류단지 안전대책 마련 및 노동환경 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특히 대전은 2020년 남대전물류단지를 재정비하고 쿠팡을 유치했고 최근에는 '북대전 종합물류단지 조성계획'을 발표하는 등 물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하지만 물류 노동자의 노동조건에 대한 책임은 어디에서도 언급되지 않고 있다. 물류 산업 확장에만 혈안이 된 모습이다.

지난 8월, '대전광역시 물류단지 개발 및 활성화 지원 조례'가 시행됐다. 기업이 물류단지를 인허가 받기 위해 최소 4년 소요되던 기간을 6개월로 단축하는,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이다. 물류·유통사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물류 현장 안전성에 대한 숙고가 필요한 시점에 약 3년 6개월에 해당하는 단축은 엄청난 혜택을 부여한 것이다. 동구청장 또한 주기적으로 '남대전 물류단지 기업인 협의회'의 요구사항을 듣는 간담회를 진행한다.

이처럼 대전시는 대전을 물류·유통 기업의 입맛에 맞게 바꿔나가는 데 거리낌이 없다. 그러나 위 조례를 비롯해 대전시가 발표하는 물류단지 관련 계획에 노동자는 어디에 있을까? 물류 노동자는 여전히 배제돼 있다. 물류 노동자의 안전하게 일할 권리, 노동환경 개선은 논의조차 되고 있지 않다. 현시점 물류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지자체에 부여되는 책임과 정반대 행보를 보인다.

대전시의 물류 산업 확대 계획의 방향이 기업에는 이윤을, 물류 노동자에게는 희생을 가져다주지 않으려면 물류 현장의 조건을 바꿔야 한다.

물류와 인원이 추가로 많아지는 이 시기, 현장 시설물의 위험 요소를 사전 점검해야 하며 작업량 폭증에 대한 규칙적이고 충분한 휴게시간을 부여해야 한다. 또한 휴게공간 마련 여부와 건강이상자 발생 시 즉시 작업중지 및 의료시설 연락 체계에 대한 대처가 마련돼야 한다. 물류 노동자의 화재·지게차 사고, 장시간·야간 노동으로 인한 건강장해, 냉동창고 또는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근골격계 질환 및 압착사고 등에 대한 유해·위험요인을 없애기 위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는 인력 부족으로 인한 고강도 노동, 실질적으로 저임금으로 인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환경이 바뀌어야 한다. 또 똑같은 노동을 하면서 '특수고용노동자'라는 위장 자영업자로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내몰려 있는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노동권을 보장해야 한다. 이 내용이 실질적으로 현장에 적용될 수 있도록 대전 물류단지 안전대책 마련·노동환경 개선에 대한 대전시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고, 물류·유통사에 대한 관리·감독을 시행해야 한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를 막기 위해 지정된 ‘택배 없는 날’에 쿠팡이 끝내 동참을 거부한 지난 8월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쿠팡 배송 캠프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택배 노동자의 과로를 막기 위해 지정된 ‘택배 없는 날’에 쿠팡이 끝내 동참을 거부한 지난 8월 14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쿠팡 배송 캠프에서 택배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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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전종합물류단지를 시작으로 노동조합 바람을

지자체의 중요성을 강조했지만 사실 현장을 바꾸는 첫 시작과 끝은 노동조합이다. 지자체가 알아서 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남대전종합물류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과 함께 요구하는 게 중요하다.

물류단지 사용자 간에는 일정한 협의회가 있고, 지자체와의 정기적 간담회를 진행하며 임금, 노동조건, 노동환경을 통제한다. 그에 반해 물류 노동자는 노동조합 조직률이 저조하며, 단기간 계약직으로 여러 업체를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물류 현장에 노동조합이 필요하다. 비슷한 노동환경에서 물류 노동을 하는 노동자들이 함께 모여야 노동조건을 바꿀 수 있다.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본부 소속 조합원들은 지난 6월부터 남대전물류단지에서 일하는 노동자를 대상으로 노동조합 가입을 홍보하며 간식을 나눴다. 노동 실태 설문조사를 하고, 이를 바탕으로 남대전종합물류단지 노동자의 요구를 만들어 물류·유통사를 강제하고 지자체에 관리감독을 촉구할 계획이다. 남대전종합물류단지를 시작으로 대전 물류단지 전체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권리를 찾기를 바라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대전지역본부 허성실 조직국장입니다.


태그:#공공운수노조, #물류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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