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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츠 유어 팁."

외국인 손님이 계산대 앞에서 내게 20달러를 건넨다. 난 우물쭈물한다. 이걸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스물. 내 첫 아르바이트는 국제공항 옆의 호텔 레스토랑 서버였다.

이전까지 검은 머리 한국인만 봐왔던 내게 다양한 인종의 외국인은 충격이었다. 또한 흥미였다. 난 조식 쿠폰을 받는 과정에서 말 한 마디라도 붙여보고자 각국의 언어를 열심히 메모했다.

서양인 방문객이 요리의 재료가 소(Beef)인지 돼지(Pork)인지 물어볼 때 당당하게 "카우(Cow)"라고 잘못 답하기도 하고, 일본인 샐러리맨에게 일본어로 필요한 것을 물어보자 도리어 그쪽에서 한국어로 더듬더듬 답하려 노력하기도 한다.

필리핀 사업가는 함께 나눈 스몰 토크가 맘에 들었는지 방에 올라가 자기 회사 USB를 기념으로 준다. 소소한 에피소드는 내 일을 사랑하게 만든다. 일할 때면 손님들을 관찰한다. 서양인 손님이 소금과 후추를 찾는 듯하다. 먼저 영어로 물어보고 가져다 주자 그는 고마워한다. 처음으로 나가는 길에 '돈'을 건넨다. 난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팁 문화가 없어요."  

최근 국내의 한 베이글 카페에서 '팁박스'를 계산대에 놓아 논란이 일어났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팁문화에 노출된 것은 이번만이 처음은 아니다. 고깃집에서 알바한 친구는 손님들에게 받은 팁으로 동료들과 회식을 하기도 했다. 중년 남성들도 고급 횟집이나 고깃집을 가면 종종 종업원에게 만 원씩 건네곤 한다.

다만 우리나라에서 팁은 '땡잡았다' 정도의 인식이지, 이것으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까지 닿지는 않는 듯하다. 당연히 임금은 기업이 보장해야 할 노동의 권리이지, 이것을 팁으로서 개인의 도덕적 가치에 떠넘기는 것을 상상치 못하기 때문이다.

딱히 법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더라도 여론의 거부감에 팁박스를 거두어야 했던 베이글 카페처럼, 우리에겐 분명 '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왜 그럴까.

팁에 대한 부정적 인식
 
팁박스
 팁박스
ⓒ Sam Dan Tru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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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호의에 보답하는 행위가 꼭 돈 뿐일까?'라는 물음이다. 우리는 종종 서비스 제공자에게 아무 이유 없이 호의를 받을 때가 있다. 두 달 전, 은행에 계좌를 만들러 갔다 곤란한 일이 생겨 은행원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다. '이정도로 친절할 필요가 있나?' 싶었는데, 그녀가 작게 속삭였다.

"저 취업 준비 때 생각 나서요. 동생 같아서 그래요."

순간 은행원에서 언니로 바뀌어 보인 그녀는 문제를 해결하자마자 다시 직원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고맙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나는 그 후 은행의 '칭찬합니다' 게시판에 글을 썼다.

또 한 날은 속초 시장에서 할머니가 혼자 하시는 닭강정 집을 갔다. 주문을 하고 길가에 서서 땀을 뻘뻘 흘리자, 할머니는 덥다며 에어컨이 있는 안방으로 날 안내해주었다. 맛도 뛰어나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맘으로 구글 리뷰에 장문의 리뷰를 썼다.

일본 호텔에 보조배터리를 놓고 왔을 때도,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물건을 가지고 있다가 전해줄 수 있는 온갖 방법을 찾는 직원들에게 당황스러움과 감동을 함께 느꼈다. 결국 국제 우편으로 배터리는 보낼 수 없어 폐기를 부탁했지만, 네이버 일본 카페 등에 해당 호텔의 서비스를 후기로 남겼다.

이처럼 온라인 소통에 익숙한 세대들은 소정의 팁 이외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보답한다. 직접적인 금액으로 나타나진 않지만, 그들에게 인사 고과나 매출 상승 등의 간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중세시대에는 서비스의 보답으로 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돈'이었을 수 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둘째는 '팁이 사적 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본다. 세상엔 공적 관계가 사적 관계로 넘어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단골 가게 종업원이 친구가 되거나, 헬스 트레이너가 마라톤 동료가 되거나, 학원 보컬 선생님이 뮤지컬 관람 파트너가 되는 상황 등 말이다.

내게도 이런 에피소드가 있다. 2016년 홋카이도에서 에어비앤비를 묵은 적이 있다. 일본인 대가족이 운영하는 가정집이었는데, 처음에는 단순한 호스트와 게스트 사이였다. 이후 맘에 들어 다시 방문하자 그들은 내게 "우리집에 처음으로 2번째 온 손님" 타이틀을 붙여주었다.

그들은 역까지 차로 태워주거나 과일을 챙겨주는 등의 호의를 베풀었다. 이후 한국에도 가족 모두가 놀러 와 내가 최선을 다해서 명동 가이드를 해주었다. 어느 순간 그들은 내게 방값을 받지 않았고, 나는 7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들과 교류하는 친구가 되었다.

아직까지 나는 '정'의 영역 안에
 
일본에어비앤비
 일본에어비앤비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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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에 대만 여행을 갔을 때도, K-POP을 좋아하는 현지 게스트하우스 직원이 한국말로 말을 걸어오거나, 일본 이자카야 점원과 친해져 LINE을 주고받기도 했다. 만약 이때 그들의 호의를 '팁'으로 환산했다면, 그 자체로 서비스의 거래는 끝났을지도 모른다. 혹은 그들은 단순한 선의 혹은 호기심이었을지라도, 내 쪽에서 '팁을 위한 서비스'인지 고민했을 수 있다.

그 자체로 우리의 관계는 경직된다. 처음으로 받을 뻔한 20달러의 팁. 내가 고개를 젓자 외국인 손님은 "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이곤 떠났다. 솔직히 아쉬운 맘이 든다. 그 정도 받는다고 아무도 뭐라하진 않을 텐데. 하지만 돈을 받기엔 내 친절은 단순한 재밋거리였다. 게다가 그들과 다른 언어로 대화하고, 또다른 곳의 얘기를 들려준 것만으로도 내겐 큰 보상이다.

친절에는 정확히 숫자로 계산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팁'과 '정'. 호의의 그레이존에 서 있는 나는 아직까지는 '정'의 영역 안에 발을 디디고 싶다.

태그:#한국팁문화, #일본팁문화, #미국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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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snflsnfl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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