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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계발서며 청춘지침서를 읽지 않던 시절이 있었다. 읽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무용하고 해가 되는 독서라고 여겼다. 소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는 책들로부터 지식과 지혜보다는 자만과 오만, 위선과 편협함을 만나는 때가 잦았던 탓이다.

계발과 지침이란, 통상 쓰는 이가 읽는 이보다 낫다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말로 그러한가. 어느 상황에선 나아보이는 이가 다른 상황에선 전혀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지는 않던가. 이런 류의 책에서 말하는 낫고 못함의 기준이란 대개 사회적 지위와 벌이에 한정된다. 그러나 삶의 복잡다단한 면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오로지 세상을 지위와 벌이의 틀로 바라보는 게 편협하게 느껴지곤 하는 것이다.

저자가 성공한 시절과 뒤따르는 이들이 놓인 상황이 다르다는 점을 무시한 채로 저의 성공방법이 언제고 통용되리라 믿는 건 어리석음이다. 사회가 가진 모순과 오류를 도외시한 채 책임을 개인의 태도와 역량으로 돌리는 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그러나 매우 드물게도 이 같은 고정관념을 깨뜨리는 책을 만나게 된다. 삶으로부터 길어올린 지혜를 꾸밈없이 전하는 책이 이따금씩은 있는 것이다. 정식 출판되지 않은 편집본이 입소문을 탈 만큼 화제의 책이었고, 정식 출간된 올해에는 베스트셀러 자리에서 내려올 줄 모르는 2023년 출판계의 화제작 <세이노의 가르침>이 바로 그러한 책이다.


2023년을 휩쓴 초유의 베스트셀러
 
책 표지
▲ 세이노의 가르침 책 표지
ⓒ 데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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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진 것처럼, 이 책은 일반에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자산가의 글이다. 순자산만 천억 원대에 이른다는 큰 부자가 저를 추앙하는 이들이 모인 인터넷 카페를 비롯해 언론, 잡지 등에 십 수 년 간 기고한 글을 묶었다.

저자에 대해 알려진 건 그리 많지 않다. 베이비붐 세대인 1955년생으로 그 시절 많은 이들이 그러했듯 넉넉하지 않은 형편 속에서 자라났다는 것, 온갖 일을 마다 않고 성실히 살아 큰 부를 일궈냈다는 것, 젊은 시절 삶을 비관해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일이 있다는 것, 고등학교 때부터 사업을 시작해 보따리장사부터 과외, 입시학원, 번역, 화장품 판매, 의류업, 음향기기업, 투자 등 폭넓은 경험을 가졌다는 것 등이다. 책에는 이 같은 경험으로부터 배운 다방면의 지식이 폭넓게 담겨 독자를 흥미로운 독서로 이끈다.

출판을 염두에 두지 않고 써내려간 쪽글 모음집이다 보니 하나의 주제로 꿰어 설명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세상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가 여러 글 가운데 그대로 묻어나고, 그 태도가 상당히 일관성이 있어 글쓴이가 어떤 이인지를 충분히 상상하며 읽어 내려갈 수 있다.

경험이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침이 없는 법이다. 폭넓은 경험을 가진 이답게 다방면에서 풍부한 배움을 얻었고, 그 가운데 오늘의 세상에도 쓸모 있는 가르침을 전하는 대목이 적지 않다. 아마도 이야말로 호기심을 자아내는 배경이며 큰 부자가 직접 쓴 글이란 점과 함께 이 책이 성공에 이른 결정적 계기가 되었으리라 판단한다.

지난 십 수 년 간 한국사회는 다른 어느 곳보다 큰 폭으로 변화했다. 저축이 권장 받던 세상에서 투자를 않으면 뒤떨어진 이 취급 받는 세상으로, 평생 직장을 구하던 시대에서 수시로 직장을 옮기는 세상으로, 공무원이 인기를 끌던 세상에서 그렇지 않은 세상으로 말이다. 이밖에도 아주 많은 가치가 힘을 잃고 또 얻는 과정이 삶 곳곳에서 펼쳐졌다. 같은 세상이지만, 더는 같지 않은 이 세상으로부터 무엇을 향해 어떤 태도로 살아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이가 허다하다.

흔한 믿음을 돌려세우는 선명한 가르침

<세이노의 가르침>이 가진 커다란 미덕은 선명성이다. 책을 뚫고 비어져 나오는 글은 저자가 글쓰기에 특별한 솜씨를 갖고 있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강렬하게 전달된다. 특유의 거침없는 기질에 더해 단련된 성격과 자신감이 선명한 목소리를 이룬 것이다. 실생활에서 필요한 의사며 변호사를 대하는 법, 돈을 불리는 법, 배우자를 고르는 법, 전공과 직업을 정하는 법, 무엇보다 일을 대하는 자세 등에 대한 가르침은 그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진 이들조차 귀담아 들을 만큼 선명하고 조리가 있다.

가치가 무너진 시대, 이같은 선명성은 특별한 힘을 발휘한다. 이를테면 저자는 시종 제 일에 전념을 다할 것을 주문한다. 그저 열심히 하는 것을 넘어 '박박기는' 정도의 자세를 요구한다. 주5일제로 대표되는 삶과 업의 균형은 그에게 가당찮은 소리다. 성공이라는 목표를 세웠다면 주말이고 야근이고 마다않고 전력투구를 하는 것이 기본이란 이야기다. 그저그런 태도로는 성공에 이를 수 없고, 이 시대 아주 많은 이들이 그저 그런 노력으로 그 이상을 기대하며 비루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냐는 물음을 던진다.

누군가는 시대에 맞지 않는 얘기라 치부할 수도 있겠으나 부에 앞서 업을 이야기하는 태도만큼은 근래 보기 드문 귀한 자세가 아닌가 그런 생각에 이른다. 부를 좇는 이는 많지만 업을 생각하는 이는 적은 세상이 아닌가. 욜로족이며, 월급루팡 같은 신조어가 연달아 등장했던 지난 수년 동안의 한국사회를 돌아보며 중심이 되어야할 건 결국 업이란 말에 동감하게 되는 것이다.

지나친 단정은 아쉽지만, 솔직한 자세 돋보여 

이외에도 배울 점이 많은 책이다. 더없이 솔직한 자세를 견지하는 저자이기에 생각을 달리하는 대목도 유쾌하게 넘어갈 수 있다. 그는 그의 세상을, 나는 나의 세상을 사는 것이니 취할 부분만 취하면 될 일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글에 능하지 못함에도 대필 대신 직접 쓰기를 선택한 탓에 문장과 철자에서 모자람이 두드러진다. 적극적인 기질 탓에 쉬이 단정 짓는 태도가 곳곳에서 드러난다는 점도 아쉽다.

서평을 위해 아무렇게나 펼친 페이지마다에서도, 쉽게 작가가 편협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자는 금이나 보석을 싫어한다'거나 '인도가 가난한 이유는 힌두교 때문'이라거나 '여자들은 미남이 물건을 판다고 해서 지갑을 열지 않는다', '막노동자들 중 맡은 일을 최선을 다해 잘하는 사람을 보았는가?' 같은 곳. 이렇게 쉽게 반박이 가능한 주장을 필요이상 단정적으로 한다는 점이 그렇다.

그러나 그런 단점과 비할 수 없는 귀한 가르침이 곳곳에 담겨 있으니, 삶 가운데 멋진 선배를 가지고픈 사람이라면 읽어볼만한 책이다. 어른은 적고 꼰대는 많은 세상, 그럼에도 일단 책을 펼치면 어른의 면모를 발견하게 될 테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서평가의 얼룩소(https://alook.so/users/LZt0JM)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독서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태그:#세이노의 가르침, #데이원, #세이노, #자기계발, #김성호의 독서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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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기자.글쟁이. 인간은 존엄하고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을 간직한 사람이고자 합니다. / 인스타 @blly_kim /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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